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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교수의 DMZ와 인근지역 탐방 - (1)- DMZ에 남겨진 비극과 숨겨진 진실
이수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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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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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각종 나물 향과 깊은 맛의 된장국이 미각을 깨우는 조찬을 즐긴 뒤, 일행들과 전날 갔던 화천발전소 및 꺼먹다리 반대편 쪽으로 이동하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치열했던 화천 격전지로 알려진 수리봉(643 고지) 전투 전적비가 있는 산등성이까지 올라갔다. 한국전쟁 당시 화천댐 및 발전소 탈환을 위한 중공군 제58, 제60, 제151 3개 사단이 침공했을 때, 국군 6사단과 미군 제17연대 합동 작전으로 응수하여 21,550명의 적군을 사살하고, 2,617명을 생포했으며 그들이 가졌던 각종 무기류를 노획하였으므로 무훈사의 대전과를 올린 것을 기념하여 1957년에 육군 제2군단이 고지 사수 기념으로 전적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살상의 격전지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643고지 전투 전적비
그렇지만 적군의 사살 및 생포만 기록되어 있지 한국 측 희생자 수가 얼마였는지는 적혀져 있지 않다. 치열한 전투였다면 상대 사망자 숫자만큼 한국 측도 그에 비례한, 혹은 더 적을 수도, 더 많을 수도 있는 희생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한국 측 피해자의 기록도 명확히 해서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고귀한 생명들의 존재를 역사에 알리는 것이 더 이상의 참혹한 살상 구조를 막고 후손들의 우행을 저지하여 지혜로이 미래를 평화사회로 구축하는 중요한 교육적 자료가 될 것이다.

오랜 외세침입으로 지배당한 뒤, 고래 싸움(미․소 대국의)의 희생이 된 동족간이 서로 적군으로 대치하며 살고 있는 20세기 한반도 역사는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투성이다. 남북 분단 이후, 강한 민족주의의 슬로건 하에 쇼비니즘(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 애국주의나 국수적 이기주의-편집자 주)적 국가우선주의로 대한민국 형성기를 거쳐 왔으나 지금 우리는 국경이 낮아진 현실 속에서 글로벌리즘 사회를 견인하는 중요 국가 과제를 짊어진 채 선진민주국가의 과도기에 들어서 있는 셈이다. 이미 150만 명 이상의 다문화권 출신이 한국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나친 자민족 중심주의 혹은 자국 우월주의 땜에 형평성을 잃은 역사 기록이나 역사수정주의에 도취한 자국 미화 의식은 자칫하면 타문화권 출신이나 타민족 배타주의를 초래하여 사회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일방적인 기록 등은 조사 분석한 결과를 통하여 개선하고, 보다 냉철하게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정확한 기록 자세를 사회 전체가 공유하여, 국제사회에서도 통용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자료로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방식의 역사해법을 보여 세계의 규범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양구전쟁기념관 내에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 전시기념물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화천에서 파로호나 화천 전투 격전지 등을 재확인한 뒤, 가파른 산길을 따라서 북한강 상류를 올라 화천읍 동촌리에 있는 [평화의 댐]과 [비목 공원]쪽으로 이동을 했다. 1960년대 청년 장교였던 한명희가 녹슨 철모가 놓인 돌무덤을 보고 노랫말로 옮긴 것에 장일남이 곡을 붙인 가곡이 [비목]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비목 가사를 새긴 기념비가 세워진 비목 공원은 1995년에 대대적으로 조성되었고, 매년 6월에는 비목문화제(2013년6월에 18회)가 개최되었다.
다양한 평화 기념물(monument)이 설치된 [평화의 댐]에서, 비목 공원 쪽에 놓여진 [평화의 종]에서 일행들은 500원을 넣고 타종을 하고선 그 아래에 조성된 비목 공원 옆에 마련되어진 정자에 앉아서 ‘광대패 모두골’의 비목 연주를 들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연주를 하는 일행도, 듣는 우리도 모두 민족의 상흔이 남은 땅에서 현실을 추슬렀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비목 공원을 둘러보며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뒤,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히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2000년 6월에 개장된 양구의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다 보니 움푹 파진 듯한 해안면 전체가 마치 화채그릇(punchbowl) 같다고 당시 참전 중이었던 미군이 한 말이 그대로 별칭이 되어 펀치볼 지역으로 불리고 있단다.

펀치볼이라…
호젓한 산촌 마을에 붙여진 어울리지 않는 지명.
이 모순스런 호칭이 현재의 비무장지대를 말하는 듯 했다.
동족이 총구를 맞대던 혈전 속에 참전했던 미군의 영어 한마디가 그대로 지명이 되어 남아있으니… 조용한 마을에 붙여진 그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인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 격리된 듯한 마을 호칭에 조금 씁쓰레함을 느낀 것은 필자만의 편견 때문일까?

자그마한 동네 둘래길을 따라서 양구통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니 통일관 옆의 전쟁기념관이 보였다. 이 전쟁기념관은 양구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했던 9개의 격전들(도솔산, 대우산, 백석산,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가칠봉, 949고지, 펀치볼, 크리스마스 고지)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전쟁의 실상과 폐해를 상기시켜주는 각종 전시물이 입체적으로 상설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입장은 무료).
기념관 입구의 ‘지뢰조심’ 표시가 붙어 있는 철조망 등의 디스플레이가 비무장지대의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내부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총탄의 탄피나 철모(총알이 뚫은), 각종 총기류, 개개인이 적었던 메모 등의 유품과 참전 전사자 명단, 당시 뿌려진 전단지 등이 그 시대를 연상하게 전시되어져 있었다. 당시 사용되었던 총기류나 총탄 등을 보면서 비록 세월 속에 풍화되어가지만 이것들에 그 많은 사람들 목숨이 뺏겨졌다고 생각하니 총탄 하나하나마다 살고 싶어 하는 영혼의 외침이 깃들어 있는 듯한 착각조차 들었다.
 
   
▲ 핀치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살육의 장소, 이기적인 사욕과 명분이 될 수 없는 정당화의 모순, 광기어린 전쟁 구조…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미증유의 사람들이 죽어갔으나 그 생명들을 앗아간 책임을 추구할 곳도, 책임질 사람도 없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결코 전쟁이란 우행에 휘말려서는 안 될 것이고, 시민들이 그런 호전적 감정론의 흐름에 [절대 반전!]이란 의식으로 전쟁을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 선진국의 시민 의식임을 재삼 확인을 했다. 그래도 전쟁/분쟁을 도발하는 자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경시한다면 그런 호전주의자들을 지구 밖의 혹성으로 보내어 두 번 다시 지구촌을 훼손시키고 생활환경을 파괴시키지 않도록 범 우주적인 규제가 국제연합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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