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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허우적거리는 박근혜 정부
이준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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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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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구 / 서울대학교 교수(경제학부) ]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여섯 달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제민주화 문제도 그렇고 복지정책 문제도 그렇지만, 분명한 로드맵이 제시되지 못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이 나쁘게 돌아가자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원점으로 되돌아간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는 어느 정도의 학습기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데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옷 두 벌을 입고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 두 벌의 옷이란 다름 아닌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이다. 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신념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부르짖는다고 보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재벌과 보수언론의 친구이지 결코 서민들의 친구는 아니다. 다만 정치적 편의에 따라 몸에 맞지 않는 두 벌의 옷을 입기로 작정했을 뿐이다.

사실 5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은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구호가 아니었다. 그때는 신자유주의정책이 어떤 귀결을 가져오는지도 모르면서 정치인이든 대중이든 그 달콤한 약속에 정신을 잃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MB정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재벌프렌들리가 바로 성장을 뜻하며, 성장은 바로 복지로 이어진다는 헛된 믿음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충을 부르짖어 봤자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러나 MB정부 5년은 그와 같은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한 점 의문의 여지없이 보여주게 되었다. 친재벌정책은 재벌의 몸집을 불리는 데나 쓸모가 있었지 투자를 늘리고 성장을 촉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재벌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중소기업들은 간신히 연명해 나가기만도 벅찬 상황으로 내몰렸다. 감세정책이니 뭐니 해서 부자들에게 이익을 주어 보았자 성장이 더 빨라진 것도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을 통한 복지 확충 같은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뒤늦은 깨달음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로 터져 나오게 되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런 흐름의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발 빠른 변신을 시도했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서 이건 민주당의 공약이 아닌가라고 의심을 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변신 덕분에 그들은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화려한 승리를 거두기에 이르렀다. 정치공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번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그들의 예리한 관찰력과 발 빠른 변신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본질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 맞춰 입은 두 벌의 옷이 너무나 거추장스럽다는 데 있다.

만약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충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말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그들의 고민이 있다. 예컨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려면 재벌들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경제민주화가 ‘재벌 때리기’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재벌들 입장에서 볼 때 경제민주화로 인해 과거에 비해 더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헛된 기대다.

머뭇거리며 저항하는 재벌들을 경제민주화의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설득을 하는 측이 경제민주화가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제대로 설득이 이루어질 리 없다. 재벌과 보수언론은 서로 짠 듯 입을 모아 경제활성화가 훨씬 더 시급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무슨 말이냐고 반격을 가해 온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 반론에 거듭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와 상충되지 않는다.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최대한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경제민주화가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런 확신이 있어야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경제민주화 대열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과 새누리당에는 그런 믿음이 결여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거에 이기려는 의도에서 잠시 변신을 시도한 것이지, 그들의 본질적 신념까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을 들어 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복지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증세 없이 복지를 대폭 확충할 수 있다는 것은 헛된 믿음이다. 따라서 누구의 세금 부담을 늘려 복지재원을 충당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에 불가피하게 직면할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말할 때는 복지 확충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로 인해 자신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나오자마자 국민의 광범한 저항에 부딪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설사 세금을 좀 더 많이 내게 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복지 확충이 자신에게 더 큰 이득이 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이런 납득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복지 확대를 위한 어떤 증세안에도 찬성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민을 설득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설득하는 사람들이 복지 확충이 왜 바람직한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그런 확고한 신념이 없다는 데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장이 최선의 복지라고 부르짖던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문제의 본질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경제학의 평범한 진리를 무시했다는 데 있다.
경제민주화든 복지 확충이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난제 중 난제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공약으로 내세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표를 얻기에는 유리한 공약이었지만 뒷감당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약속대로 이행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 신념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편의에 따른 변신 때문에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최우선과제로 내세우게 된 것을 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리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멋진 춤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용두사미’라는 말이 나오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정부가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경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는 경제도 함께 비틀거리기 마련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5년 전 MB정부가 출범할 때는 상황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우왕좌왕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된 방향으로 확실하게 나아가는 것이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5년 전과 지금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다르다는 점만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국민에게 명백한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어느 선까지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더불어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에 옮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가능하지 못한 부분은 분명하게 정리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공연히 애매모호한 어법으로 공약을 모두 지킬 것 같은 발언을 거듭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길 따름이다.

박근혜 정부에게 또 한 가지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를 일거에 되살릴 묘방은 존재하지 않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747이라는 황당무계한 공약으로 경제의 체질을 약화시킨 MB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알묘조장’(揠苗助長)이란 말이 있듯, 손으로 벼를 뽑아 더 빨리 자라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경제를 억지로 활성화시킬 묘방은 없는 것이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쓸모없는 규제를 정리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확립하는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정도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급하다고 지름길을 가려다 길을 잃고 헤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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