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IN <오피니언>, 남재희 / 전 노동부장관 ]

민주화를 거치면서 한국의 ‘중간집단 교육’ 운동은 쇠퇴했다.
강원용 목사 이후 사회운동 방식을 생각해볼 때다.
아날로그 시대의 것을 계승하며 디지털 시대의 것을 개발해야 한다.

▲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오마이뉴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의식의 성장을 경험한 이총각은 그곳에서 원풍모방, YH무역, 반도상사 등의 많은 노동자를 만나 평생 동지의 연을 맺어갔다. 그에게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교육이어서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했다. 노래와 촌극 공연, 명상 등의 프로그램에도 함께했는데, 특히 그때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 조합원 연기를 하며 완전히 몰입했던 경험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1978년 권력과 결탁해 민주 노조의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분뇨를 뿌린,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 당시의 투사 이총각 노동조합 위원장이 최근 어느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기록의 일부다.

1970년대 민주정치가 형해화되던 박정희 정권 때, 강원용 목사의 크리스천아카데미는 교회·노동·농촌·여성 등의 분야로 나누어 이른바 중간집단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서울의 수유리 본부에서도 하고, 수원의 교육원에서도 실시했다. 이총각씨(여성이다)의 기록은 그 성과의 일부다. 그때 교육을 맡은 간사들도 막강했다. 한명숙(전 총리),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 이우재(전 국회의원), 김세균(서울대 교수), 황한식(부산대 교수), 장상환(경상대 교수) 등이다.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그 영향이 커지자, 1979년 중앙정보부가 이들 간사를 일망타진하는 이른바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이 일어났다.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은 1968년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연구서를 냈는데, 거기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각종 직능단체, 지역단체 등 중간 매개집단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때는 지방자치가 선거 없이 임명제일 때이다. 이 헨더슨의 중간매개집단 강화론에 자극을 받기도 해 강원용 목사가 민주화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중간집단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헨더슨은 미국 국무부 관리로 오래 근무해서인지 아주 중요한 노동조합 문제를 빠트렸다. 그러나 한국의 중간집단 교육에서는 오히려 이 노동자 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성공을 거두었다. 압력(작용)이 심하면 저항(반작용)도 커지는 법이다. 기독교의 사회참여운동이 기도한 중간집단 교육은, 점차 조여지는 권력의 압력 속에서도 모두 열의를 갖고 전개했다.

크리스천아카데미의 후신이 대화문화아카데미이다. 여기서도 전날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화운동과 사회운동을 도모한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의 이른바 민주화 이후 그러한 운동이 크게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압력이 약하니까 저항도 미약해지는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저항과 운동

그러나 지금 민주화되었다지만 어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KCIA)의 후신이 다시 정치에 개입해 공작정치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노동에 대한 무리한 조치나 언론에의 슬금슬금한 침해도, 특히 MB 정권에서 자주 발생했다.

명명백백한 침해까지는 아니고, 슬금슬금 진행하는 것이어서 경각심이 덜 일어나는 듯하다. 여하간 그런 사회 환경에서 사회운동은 크게 탄력을 받지 못하고 모호한 단계에 처한 것 같다. 어려운 때다. 운동의 위기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강원용 목사는 라인홀트 니버의 영향을 받았다. 또 그때는 사울 알린스키의 사회운동방법론이 영향을 미쳤다. 이제 니버나 알린스키 또는 강원용 이후의 사회운동 방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당면한 사회운동의, 운동정치의 테제는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놓고 생각해볼 때이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저항이나 운동을 말하기도 한다. ‘디지털 급진파’의 출현을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위키리크스 사태로부터 시작해, 최근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한 미국의 범지구적 감시의 폭로라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저항의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독일의 한 신문은 스노든의 폭로를 핵폭발에 비유했다. ‘내부자 고발’로 긍정적 의미를 크게 부여한 것이다.

운동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의 것을 계승하며 디지털 시대의 것을 새로 개발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돈 숭배와 시장의 압제가 인간의 삶을 억누르고 있다. 돈 숭배를 중단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더 일을 하라”고 촉구했다. 옳은 말이다. 어찌 그 일뿐이랴.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많고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