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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호전적 민족주의 미주한인의 정치력신장으로 깨야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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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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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 (재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KACE 상임이사
매년 8월15일을 우리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날’이라고 기념하고, 일본은 ‘패전 기념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당시의 정황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우리 한국이 이 날을 ‘광복의 날’로 정한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일본이 그날을 기념하는 일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8월15일과 9월2일의 차이

일본의 입장에서 일단, 15일이 패전일은 맞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쇼와 천황’의 육성이 처음으로 NHK라디오를 탔다.

NHK는 “본인은 세계의 대세와 대일본제국의 현상에 비추어 비상조치로 시국을 수습하고자 한다. 충실하고 선량한 국민들께 고한다. 본인은 제국정부가 미국. 영국. 중화민국. 소련, 4개국에게 그들이 제시한 공동성명을 수용하겠다고 통보하였다.”란 일본 왕의 육성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지금 대다수 일본인들은 1945년 8월15을 ‘쇼와 천황’이 ‘미·영·중·소 4개국의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한쪽이 끝났다고 해서 전쟁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전쟁 중인 쌍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보통 전쟁의 종료는 전투 행위를 중지하고 휴전조약을 체결한 뒤 평화교섭과 조인이란 절차를 거친다.
8월15일은 일본 왕이 시국을 수습한다거나 공동성명을 수용하겠다는 것을 발표한 그런 절차의 일부분일 뿐이다.

독일은 1945년 5월7일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패전을 맞이한 것과 같이 일본은 1945년 9월2일 도쿄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왕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전쟁이 끝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전문가들 중에 8월15일을 “종전일”로 대답하는 사람은 그래서 아무도 없다. 그들은 반드시 “9월2일”을 강조한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9월2일 항복문서에 조인한 뒤 라디오를 통해 이 날을 ‘전쟁 승리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에게 8월15일은 포츠담 선언을 수용한 날이고 9월2일은 일본이 패전국이란 것을 두 손을 들어서 인정한 날이다.
8월15일은 전쟁당사국들의 요청에 응하겠다는 대답을 한 날이고 9월2일은 패전국으로서 미국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한 날이다.

항복문서는 일본을 재기불능의 상태로 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항복문서의 주요 내용은 “① 일본을 미군의 군사관리 하에 두면서 공용어를 영어로 한다. ② 미군에 대한 위반은 군사재판에서 처분한다. ③ 통화는 미군발행의 군용 수표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굴욕 피하기 위해 ‘항복’ 대신 ‘종전’으로 쓴다

“일본은 망했다. 무조건 항복했다” 새로운 일본은 이 말에서 시작됐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항복’이 아닌 ‘종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전쟁에 패배한 굴욕을 애써 무시해 오고 있으며, 또한 그것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

일본이 패전 기념일을 9월2일로 하지 않고 8월15일로 하는 것은 이러한 교활한 궁리가 숨겨져 있다. 전범국가로서 반성이 없는 이유다.
일본의 역사가들이 8월15일에서 배울 것은 일본과 연합국간의 당시 관계상황일 뿐이지만, 9월2일은 일본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포츠담 선언에는 일본 정부를 전제하고 있지만, 9월2일 항복문서에는 일본의 전 국민을 미 군사정부하에 두고 있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 되었다. 도시가 한순간에 폐허가 되었다.
가공할만한 위력의 원자폭탄 투하를 보면서 8월8일 소련이 중립조약을 깨고 참전했다.
그래도 일본 군부는 ‘항복’인가 ‘항전’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즉시 정전을 주장하는 스즈키 수상 및 도고 외상 측과 항전을 주장하는 군부가 팽팽히 대립했다.

원자폭탄을 보고도 일본 군부는 미국에게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①천황의 지위를 유지해야하며 ②미군의 본토점령은 소규모 단기간으로 해야 하고 ③무장해제는 자발적으로 하며 ④전범 처벌도 일본이 자체적으로 한다”는 4가지를 고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트루먼 대통령은 “최종 목표가 조건부 항복이라면 전쟁할 필요조차 없다. 전쟁을 시작한 이상 무조건 항복 이외는 없다”라는 설명방식의 긴급명령을 맥아더장군에게 하달했다.

그래서 1945년 9월2일의 항복문서는 “일본의 모든 관청과 군부는 항복 후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문과 명령 및 지시를 그대로 따른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라는 단호한 명령체로 되어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 야욕

지난 8월6일 히로시마 피폭 68주년을 맞아 일본은 항공모함 “이즈모”의 진수식을 거행했다. “이즈모”는 전쟁당시 상하이를 포격했던 일본 전투함의 이름이다.
히틀러의 방식으로라도 헌법을 개정해서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노래하듯 주장하는 아소 다로 부총리가 진수식을 주도했다.

오늘의 일본에는 전쟁을 일으켰고 주변국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주었고 그러한 침략의 대가로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그날의 역사적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1970년대부터 그랬지만 일본은 원자폭탄의 피해국가임을 선언하고 군대보유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원폭의 피해가 워낙 엄청났기 때문에 패전국 일본은 가해자가 아님을 공언했다.

일본은 거의 반세기 이상 미국의 적국인 소련에 대한 전선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인식도 바꾸어 놓았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태를 미국의 안보전략이 한동안은 그것을 묵인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36년 동안 조선을 짓밟은 기억이 그들에겐 있을 리 만무하다. 일본의 호전적 민족주의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한국이 경제대국이고 선진국임은 확실하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엔 못 미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주변국가가 팽창하면 대한민국은 늘 고통을 당했다. 전범국가 일본이 재기했고 중국이 부상했다. 아시아 패권국가로의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과 군국주의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일본의 팽팽한 전선에 끼어있는 한국이 광복 68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독일을 보지 말고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유태인들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사과 하도록 만든 미국 내 유태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정치력 결집에 주목해야한다.

우리 민족이 ‘외침’이란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미주한인들이 미국에서 힘 만들기에 진력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미주한인들의 정치력의 성과물이 그런 것을 설명하고 입증해 주고 있다.
미주한인들이 한국으로 달려가지 않고 미국에서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복 68년을 맞이하는 이때의 독립운동은 정치력신장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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