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오피니언>, 이해영 /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

▲ 이해영 / 한신대 교수

얼마 전부터 ‘제주 이민’이란 말이 등장했다. ‘이민 안내서’까지 나돈다. 제주 올레가 히트상품이 된 것도, 전국적으로 힐링(healing·치유) 열풍이 분 것도 실은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을 게다. 살인적인 생존 경쟁에 지친 고단한 심신이 어디 좀 가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그 절박함 말이다.

그런데 이 ‘제주’로 상징되는 우리사회의 새 흐름의 맞은편에 전혀 다른 신드롬이 생겨났다. 바로 중국인·중국돈의 제주 점령이다. 제주를 방문하면 안다. 하늘길이건 뱃길이건, 또 도착해서 제주시내를 다니건 유명 식당을 가건 넘쳐나는 게 중국인 행렬이다. 이들은 코리안드림을 쫓아서 온 것도, 우리처럼 힐링를 위해 제주를 찾는 것도 아니다.

제주도는 중국인 관광객 하루 1만명 시대를 외쳐댄다. 여기에는 제주도의 ‘노비자’ 정책이 나름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제주도는 물류, 금융, 서비스까지 포함한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저 중국 관광객 ‘쪽수’가 관건이다. 그 먹이사슬 또한 기형적이다. 중국 현지 여행사가 모집한 관광객을 제주 현지 중국계 여행사가 1인당 얼마씩 주고 산다. 그러고 나서 그 지불액은 쇼핑센터 커미션으로 메꾼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의 공공재인 제주도의 천혜 관광자원이 중국의 저품격, 저가 휴양지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효과를 보더라도 중국 현지 여행사와 도내 중국계 여행사 사이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숙박업체와 쇼핑센터, 면세점인데 이 또한 중국자본이 진출 중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제주도 내 고용창출, 매출 증가 등 지역경제와는 전혀 분리된 일종의 ‘영지(enclave)경제권’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 영토 내에서 중국자본이 지배하고 이익을 챙기는 중국의 경제영토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중국돈 또한 제주 도처를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다. 현지인의 말을 들어 보면 시내 빌딩이건 땅이건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중국자본이 매집을 한다고 한다. 여기엔 제주 지방정부의 상술이 먹힌 탓이 크다. 이름하여 ‘투자이민’ 제도다. 5억원만 제주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살 수 있다. 우리 이웃이 꿈꾸는 소박한 제주 이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 경제특구 개발과 하이난섬의 부동산 폭등을 주도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 화교자본을 포함한 중국 부동산자본이 제주도로 몰리고 있다. 신고 기준으로만 봐도 규모가 금년 3월말 현재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최근 이들 중 하나가 서귀포의 전망 좋은 곳에 중국 부유층을 위한 초호화 영리병원 승인을 보건복지부에 신청한 사실이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우려 속에 그 결과가 어떨지 주목된다.

결국 제주의 중국붐은 개발독재시대에나 봄직한 양적성장 제일주의에 매몰된 지방행정, 중국 현지의 부동산투기 열풍, 해외관광붐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생긴 변태적 흐름일 뿐이다. 여기서 또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 한·중투자협정(BIT)이다. 2007년 개정된 이 협정에 따라 제주도를 비롯한 지방정부 역시 협정 당사자가 된다. 이 협정에 따라 제주의 중국자본에 대해 제주도민과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중국계 호텔에 예컨대 제주산을 사용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협정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투자이민 온 중국인 개인이나 투기성 개발이익을 노리는 중국 부동산 자본조차도 한국정부를 상대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최종적으로는 제주도민이 물어줘야 한다. 이 때 제주도민은 혜택은커녕 ‘묻지마 외자유치’의 부담만 떠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