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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단죄 못지않게 중요한 반민족 반민주 인명사전 제작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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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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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


   
▲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남의 글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경우 하나는 주요 현안 이슈에 대한 평소 나의 생각이 나만의 외람된 게 아니었음을 확인할 때다. 그런 사례가 특정 이슈에 대하여 특정 시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바로 새로운 공감대의 형성이며 여론 조성의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내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차츰 글을 읽어내려 가면 알 것이다. 나는 한 때 정치범으로 곤욕을 치른 인사들에 대한 최근 계속되는 재심, 무죄 판결, 국가 배상 보도를 보면서 몇 개월 전부터 이 글을 쓸 요량으로 있던 중 ‘한겨레신문’ 정남구 특파원의 칼럼(7월 12일자) ‘민주․인권유린 자 인명사전 만들자’를 읽고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먼저 칼럼 일부를 옮겨 보는 게 수순이겠다.

“그들이 겪은 고통이 그저 운이 없는 이들이 겪는 불행한 개인사인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고민스러운 것은 출세를 위해, 혹은 보신을 위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사람들을 어찌해야 하느냐다. 그들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권력을 찬탈한 이들에 빌붙어 고문으로 가짜 간첩과 혁명 분자를 만들어낸 전문가들, 그들을 전담하다시피 기소한 검사, 따져보고 말 것도 없이 그들에게 유죄 판결문을 복사하듯 찍어낸 판사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는 지금도 한국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이들이 있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와 정치에 개입하는 등 힘겹게 쟁취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친일사전을 만든 그 정신으로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이들의 인명사전을 만들자. 조사하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물려주자.”

그 신문은 지난 13일 시드니 출발 서울 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우연히 집어 읽었다. 인용문 가운데 서두의 ‘그들’은 민주화와 민주정권의 회복과 함께 한때 친북, 간첩, 반정부 활동으로 중형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재심을 받아 무죄 판정을 받은 재일동포들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연류 돼 사형 선고를 받고 13년간 복역했던 강종헌 씨다.

이게 생소하게 들리는 독자라면 아래 이름들은 어떤가?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면 대부분 잘 기억하는 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야당 정치인 조봉암 씨, 민족일보 발행인 조용수 씨, 타살 의혹을 밝히기 위한 묘지 개장이 유족과 관련 단체에 의하여 불과 얼마 전 실시된 장준하 씨다.

그 사이에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인사가 더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써 옥고를 치르고 나서 인생이 절단 난 피해자는 부지기수다. 국가는 재심의 기회를 통하여 이들에게 명예회복과 피해 보상을 해주고 있어 얼마 전부터 그에 대한 보도가 연재처럼 언론의 지면과 공간을 채우고 있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리고 이게 선례가 되었으니 다른 많은 피해자가 앞으로 줄줄이 알게 모르게 구제를 신청하고 받게 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피해자들이 넉넉한 금전 배상이나 보상을 받았으니 이제 그것으로 이 불행한 시대적 사건은 종지부를 찍게 되어야 하느냐이다. 각본에 의한 증거조작과 잔악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 그에 따른 엉터리 선고 공판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은 경찰, 각종 공안 요원, 판검사는 굿이나 보고 잠자코 있으면 되는 건가? 그럴 수는 없겠다.

인도주의에 대한 죄

이에 대하여 다음 한 두 가지의 거론이 가능하다. 첫째로 불법 수사와 고문에 가담한 인원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는데 그게 면책 사유가 되겠는가? 아니다. 국제연합 헌장과 그 기구 아래 선포된 여러 가지 원칙에 따라 거의 국제법과 국제관례가 된 이른바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ies)’ 정신을 생각해봐야 한다.

2차 대전 종료 후 실시된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그리고 마닐라 등 여러 지역 현장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유죄 판정을 받은 일본과 독일의 군인과 민간인 피고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극히 일부를 빼고는 모두가 상부 명령에 따라 움직인 하수인들이지만 그게 참작되지 않았다. 유태인 홀로코스트의 주동자들에 대한 시효 없는 처벌, ‘인종 청소’의 이름으로 코소보에서 행해진 학살과 학대 행위에 대한 국제적 처벌, 이른바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를 향하여 한 때 쏟아진 국민의 분노가 모두 그런 것 아닌가.

둘째로 국가가 직권 남용이나 태만으로 잔악 행위를 한 공무원을 대신하여 피해자에게 배상 및 보상을 했을 때는 당사자에게 추후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논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회한 일이다.

가해자들 가운데는 먹고 살기 위하여 자리를 떠나지 못한 딱한 말단들이 있었을 것이다. 요직에 앉은 대부분은 그것도 아니었다. 독재정권은 주요 인사를 충성을 우선으로 하고 충성한 자에게는 후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충성은 나라가 아니라 이른바 출세를 위해 하게 된다. 그 때 챙긴 기득권과 재력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는 기회주의자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내버려두고 국민의 혈세로만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 또한 크게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부질없는 탁상공론을 하고 있음을 잘 안다.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을 그려 그 불법, 부당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이 ‘누가 누구인가 (Who’s Who)’의 이름만이라도 밝히는 작업은 어렵겠지만 절대 필요하지 않겠는가. 전두환 씨 일가의 불법축재가 지금까지 큰 국가적 이슈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히 사법부를 이끈 판검사들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이들은 아무나 갈 수 없는 일류 법과대학 시절과 사법고시 준비를 거치는 동안 ‘사법권의 독립’을 금과옥조로(金科玉條)로 되 뇌이던 수재들이 아닌가. 그런 국가의 엘리트이며 동량재라면 정권의 시녀로 마구잡이 재판을 하느니 차라리 신성한 법복을 벗었어야 했다.

재심판결에서 한 재판장은 “당시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선배들에 대한 예우로는 몰라도 너무도 뻔뻔한 발언이다. 기록이 있을 테니 고의적인 재판이 명백한 경우 당사자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해야 옳다.

반민족, 반민주 행위

나는 불법, 부당 세력의 뿌리를 인명사전으로 밝히자는 주장을 2002년 출간한 저서 '언론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제4장 4인 ‘친일인명사전이 필요하다면 반민족, 반민주정권에 어용한 지식인의 인명사전도 만들어야지’ (pp. 96-101)에서 처음 했었다. 그 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몇 가지를 덧붙여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썼었다.

이것들을 아래에 요점만 추려 한 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 쓴 글에 대한 더 선명한 이해를 위해서다.

2002년은 고령과 병고에 시달리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 씨가 오래 살지 못할게 분명한 때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편하게 쉬게 두지 않았는가? 모두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 때문일 것이다. 친일인사들을 늦게나마 단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밀어서는 안 될 정권을 밀어 나라에 누를 끼치고,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가까운 과거 정치인과 법관과 지식인은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녀도 괜찮은가. 하나는 잘못된 정권이었지만 동족이니까 괜찮고 다른 하나는 외세니까 길게는 100년도 더 넘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것인가.

나는 지금 과거를 회상하는 역사물을 쓰고 있지 않다. 나의 관심은 경이적인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사회가 겪는 비리와 불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원죄인 잘못된 가치관이 해외 동포사회에 갈수록 더 확산되어 가는 현실이다.

입 달린 사람은 누구나 통일의 숙원을 말하지만 상대 정권에 대한 흡수든 몰락으로든 그 목표가 달성되자면 우리의 체제우위가 경제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와 국민행태, 특히 국민통합 면에서 확고부동할 때 가능할 텐데 지금과 같은 난맥상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그게 모두 제대로 못한 과거청산, 역사청산에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청산은 당사자들이 거의 전부 유명을 달리한 친일 인사들에만 있지 않다. 정신적으로 어쩌면 친일보다 더 심각한 폐해를 우리 사회에 안겨주었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불법과 편의로 챙긴 엄청난 기득권과 재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인물과 인사와 세력들, 즉 더 가까운 과거의 청산이다.

국내의 불순 세력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는 내부로부터의 침략이며, 결코 외부로부터의 침략보다 덜하지 않다. 친일인명 사전이 나와야 한다면, 반민족, 반민주 정권에 빌붙어 우리 사회의 기강을 흩으러 놓은 정치인, 법관, 학자, 언론인, 문학인, 예술인 등 저명했던 지식인, 심지어 기업인의 인명사전도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명사전은 출세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5.16으로 시작, 불과 얼마 전까지 맥을 이어온 군사정권의 공과에 대하여는 국론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당사자와 관련자들 대부분이 실세로 살아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 논쟁도 친일파들의 경우처럼 당사자들이 무덤으로 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될까.

군사정권의 폐해가 어떤 것이었나를 여기에서 일일이 쓸 수는 없겠다.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과 가족은 말할 것 없고, 그간 과거 정권 수뇌부의 인지 하에 공직자들이 저질렀던 천인공노할 많은 짓들이 보도를 통하여 속속 알려 졌었으니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뻔뻔스러운 일이다. 요즘 군사 정권과 그 연장이던 유사 정권 아래 유죄 판결을 받아 억울하게 누명을 써 옥살이를 했거나 다른 불리한 일을 당했던 사람과 사건들이 재심 결과 무죄가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그 당시 국가안보를 위하여, 예컨대 그렇게 안했더라면 나라가 망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지금도 그대로 일관되게 나가야 맞다.

국민의 혈세는 봉?

정부는 이들 피해자들에게 몇 천만에서 몇 십억의 거액의 보상금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원래 담당했거나 지시하여 엉터리 판결이나 수사를 한 경찰, 공안 요원 등 관리, 판검사의 이름도 밝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보상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전혀 없다. 이들을 추적해 본다면 대부분 내로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불법 정권을 만든 사람은 말할 것 없고, 그 속에 들어가 온갖 불법과 잔악 행위와 술수로 오래 가게 받들고 재미를 본 사람들, 그런 불의에 도가 트인 사람들, 그들이 기른 사람들, 아니면 그들의 자손들이 보수층이란 듣기 좋은 이름으로 지금도 각계각층의 주요 의사결정자 자리와 사회 원로 대접을 받으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면 어느 새로운 대통령이 뭘 어떻게 하겠다고 한들 사회가 달라지겠는가. 그들은 반민족 행위자인 점에서 친일파와 같다.

정권 말기마다 터져 나오는 무슨 무슨 `게이트'와 메가톤급 비리들은 그 연장선에 있다. 헌정을 시작한 지가 얼마인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 정치에서 기본인 양당제도가 확립되지 못한 것은 당에 남는 것이 불리하다든가 공천을 못 받으면 하루아침에 탈당하거나 다른 당으로 옮겨버리는 철새 정치인들의 행태 때문인데 모두 그때 배운 부도덕한 편의에 따른 정치 문화와 전통, 혼탁했던 사회풍토의 연장인 것이다.

그리하여 비교적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선의 결과 뽑힌 대통령 아래에서도 세상은 더 나빠졌다는 탄식이 들려오는 것이다. 경제는 잘하면 10년, 20년 안에 다시 세울 수 있지만, 한번 무너진 사회 기강은 100년이 걸려도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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