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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남을 것인가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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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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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 중국동포 ]


일본에서 여러 해 동안 생활하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잊고 살았다.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정신없이 일본어에만 매달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일본문화가 흠뻑 배게 되었고, 그렇게 그냥 ‘일본인’으로 살아갔다. 언어와 문자의 위력은 과연 대단한 것이어서 멀쩡한 조선족사나이를 어느 사이에 반쪽 ‘일본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너무나 변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없는 서글픔이 스며들며 스스로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느껴졌고 자책감도 찾아들었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있고 문자에는 그 민족의 영혼이 박혀있다. 그래서 언어를 잃고 문자를 잃으면 그 민족은 결국 동화되고 만다.

그 옛날 질풍노도와 같이 대륙을 치달리며 북방대평원을 호령하던 민족들도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버리게 되면서 나중에는 과거의 씩씩한 기상을 잃은 채 그림자처럼 배회하다가 어느 순간인가 사라져버렸다.

한 나라, 한 민족을 완전히 정복하는 최고의 수단은 언어와 문자의 말살이다. 때문에 정복국은 피지배국 민족의 언어문자부터 말살한다. 과거 제정(帝政) 러시아가 폴란드(뽈스까)에 대해 그랬고, 프러시아가 프랑스에 대해 그랬으며 일본이 조선에 대해 그랬다. 일제는 창씨개명까지 서슴지 않고 우리 민족을 말살시키기에 광분했던 것이다.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지켜내면 그 민족은 살아남는다. 그런데 언어만 있고 문자가 없다면 그 민족은 매우 위험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가 언어보다 더 중요하다.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튼튼히 지켜나가는 데는 한족들이 으뜸이 아닌가 한다. 중국내의 한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각지에 널려 사는 화인(华人),화교(华侨)들도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고수하는 데는 그 열성이 대단하다.

화인, 화교들은 그 나라 사람들과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능란하게 주재국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자기네들끼리만 있다 하면 무조건 한어로 대화한다. 한국의 화교들은 중국에서 간 조선족들을 상대할 때에도 이들을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항상 중국어로 말을 건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내 친구가 한번은 화교친구네 집에 초대받아갔었는데 소학교에 다니는 그 집 아이가 무심결에 영어로 제 엄마와 대화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엄마는 냉큼 아들애의 귀뺨을 치면서 화어(华语)로 말하라고 호통 치더란다.

그랬다. 그들은 주체의식이 뚜렷했고 자기의 철학을 갖고 살았다. 기나긴 중국의 역사에서 소수민족이 통치한 시간은 3분의 1이나 차지한다. 그랬어도 한인들은 그에 동화되기는커녕 역으로 이민족을 동화시켰다.

한인들은 자기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애쓸 뿐만 아니라 발양하기에도 진력한다. 세계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공자학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민족의식이 그다지 투철하지 못하다. 저출산으로 조선족어린이가 감소되는데다가 하나뿐인 아이마저도 한족학교에 보낸다. 관공서, 은행, 서비스업계의 조선족 임직원들도 고객이 조선족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어로 말한다. 게다가 타민족과의 통혼도 쉽사리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의 혈통, 우리의 문화를 전승(传承)해나가는 데는 참으로 힘겹고 숨 가쁘기만 하다.

중국내 조선족도 문제거니와 해외에 나간 우리 부모들 또한 책임이 크다. 자식들이 우리말과 글을 모르고 살아가는데도 걱정 없고 가슴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아이는 조선말을 몰라. 한족아이 다 됐어”라며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오호라, ‘대범’한 우리 부모들이여,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장국을 먹고 김치를 먹으면 조선족인가? 민족의 넋이 살아 숨 쉬고 민족의 얼이 간직돼야 조선족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모르면 그는 이미 조선족이 아니다.

명견(名犬)도 혈통이 있고 족보를 이어가는 세월인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이룬 총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민족이 소실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중에는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될 것도 변해있었다.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지키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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