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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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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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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주 <데스크칼럼> /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 최윤주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관계 속에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갑’과 상대적으로 열등한 지위의 ‘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지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세월이 흘러 자신 또한 누군가의 표독스런 시어머니가 되듯, 사회적인 지위와 처한 사안에 따라 갑은 또 다른 권력과 강자 앞에서 을이 되고, 을은 자신보다 낮고 약한 존재에겐 갑이 되는 먹이사슬 같은 악순환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경제구조 속에 놓인 인간사 모든 관계는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모든 불평등한 갑을 관계는 권력과 자본이라는 힘의 속성 안에서 움직인다. 권력을 누가 가졌느냐, 누가 자본을 많이 소유했느냐의 기준이 수직적인 종속관계를 결정짓는다. 높은 자, 강한 자, 힘센 자는 ‘갑’이고, 낮은 자, 약한 자, 힘없는 자는 ‘을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긋한 나이에 젊은 층들이 즐겨 있는 갭(GAP) 의류를 즐겨 입는다고 한다. 옷이라도 ‘갑’을 입자는 이유라는데, 풍자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갑을관계를 없앨 수는 없는 문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갑을관계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고용주와 고용인, 상사와 부하, 채권자와 채무자 등 경제적 관계에서만 갑을이 있는 건 아니다.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부인, 선생님과 학생, 선배와 후배 등에도 강자와 약자는 존재한다.

이민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소수민족의 설움은 힘없는 을의 입장을 떠오르게 한다.
착륙사고가 발생했던 아시아나 항공기 조종사의 이름을 아시아인을 비하시키는 허위이름으로 만들어 진짜인양 방송보도 했던 사건만 봐도 그렇다. 이번 방송 사고는 미국 내 저변에 깔린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서 한국인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소수인종이 겪는 차별적 대우는 일시에 용암이 분출되는 화산처럼 다수의 ‘을’을 들끓게 만들기도 한다.
짐머만 재판 이후 미국 내 100여개 도시에서 잇따르고 있는 대규모 시위가 대표적인 예다. 비무장 상태의 17세 흑인 소년에게 히스패닉계 백인인 조지 짐머만이 총격을 가해 살해했지만 법은 짐머만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논쟁의 핵심은 판결내용에 대한 찬반 문제가 아니다. 만약 피해자가 백인이었다면, 혹은 가해자가 흑인이나 유색인종이었다면 과연 어떤 결론이 내려졌을까 하는 것이다. 무죄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에 흑인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역사 속에서 을의 반란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특히 흑인들의 저항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늘 ‘죽고 사는 문제’였다. 누군가가 당한 차별이 내 일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뺏긴 목숨이 내 가족의 생명일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강경하고, 연대는 부럽도록 강하고, 그 힘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아시아나 항공이 방송오보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해당 방송국에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이웃과의 작은 분쟁에서 조차 침묵하는 불만은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나라가 미국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한민족 특유의 너그러움을 발휘하는 건 이 땅에서 통하지 않는다. 조롱과 비하의 의도가 명백한 인종차별적 행위에 대해 ‘너그러움’을 보이는 것만이 능사였는지 반문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소년이 목숨을 잃은 사건과 지역 방송국의 보도 오류를 비교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대처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당하기만 하는 ‘을’의 침묵으로는 불평등한 갑을관계, 부정적인 갑을문화를 타파할 수 없다.
자신의 자리와 대우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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