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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선학교 - <1>- 재일(在日) 조선학교의 역사 그리고 지금
조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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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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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육내용을 불문하고 고교 수업료를 무상화하겠다는 이른바 ‘고교무상화교육’ 방침을 발표했다. 이는 2009년 일본 민주당 정부가 중의원선거에서 ‘일본 전국 공립 고등학교에 대한 수업료 무상화와 취학지원금 지급’을 공약한 후, 2010년 4월부터 시행된 법률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문부과학성은 시행규칙에 외국인학교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일본정부는 ‘중대한 법령 위반 시 무상화 조치를 취소하고, 교육 내용에 문제점이 있을 경우 일본의 정치·경제 교과서를 교재로 하는 등 자주적인 개선을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규정을 마련해 재일 조선학교에 이를 적용했다. 한 마디로 일본의 교육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무상화 적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역사왜곡 내용조차도 조선학교에서 그대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단체들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 배제 반대와 2005년부터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UN인권위원회의 조선학교 차별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2011년 2월 다카키 요시아키(高木義明) 문부과학상은 재일 조선학교에 대해 수업료 무상화 방침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재일동포들에 대한 극단적 배척 행위가 만연되고 있다. 민족교육을 지양하는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배제로 조선학교의 상황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구촌동포연대(KIN, 대표 배덕호)와 프레시안은 이러한 조선학교 문제를 조명하고,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 상황, 대안 등을 모색하는 연속기획을 시작했다. 이에 본지는 8회에 걸쳐 연재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재일(在日) 조선학교의 역사 그리고 지금

[ 조선일 / 자유기고]


"조센징 김치냄새 난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여라". 10년 이상 일본사회와 인연을 맺어왔지만, 이보다 더한 폭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정부의 노골적인 조선인 차별이 잘 드러나는 예가 '조선학교'일 것이다. 한마디로 조선학교는 조선인을 길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인은 일본에 동화되거나 사라져줘야 하는 존재인데, 감히 일본 땅에서 버젓이 그 역사를 가르치고 말을 가르치니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아베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고교무상화제도'의 대상에서 조선고교는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그 많은 외국인학교 중에서도 오로지 조선학교만 빼버렸다. 유엔은 이에 대해 명백한 '차별'이며 제도의 적용을 실시하도록 요구하는 총괄소견을 발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하시모토 시장의 면접을 거부하고 대신 조선학교로 발길을 돌려 아이들을 위로하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조선학교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총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외공민단체이다. 조선학교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조선학교의 역사는 총련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따라서 남북 정세에 따라 한국 사람은 조선학교에 방문하는 것이 허가되기도 불허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의 아이들은 그저 평범한 아이들일뿐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고 다투기도 하며 선생님께 응석도 부리는. 다만, 숨죽이며 살라는 일본사회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누구를 보든 밝게 인사한다. 또 나라의 보조금이 거의 없으니 그 부모들은 아이를 조선학교에 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지금도 중학교 교사인 내 동료는 조선학교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경쟁보다 우정을, 나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고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더불어 만들어가는 학교라서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더구나 일본이라는 식민지 종주국에서 자신들의 민족교육을 지켜왔다는 사실은 먼 훗날 우리 민족사에 기록될만한 일일 것이다. 혹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만한 놀라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방 후, 조선인들은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의 각종 권리들을 지켜주는 첫 민족단체인 조련(재일본조선인연맹)을 지지하였다. 민족교육을 조직화 체계화한 조련의 노력 아래, 해방 후 1년 뒤인 1946년 9월에는 일본 전역에 525개의 학교가 있었고 4만 4천명의 아이들이 조선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에 돌아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과 글을 하루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라는 구호 아래 조직과 동포가 하나가 되어 학교를 건설해갔다.

그러나 1948년 일본 정부는 조선인은 일본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통달을 내리고 급기야 공권력을 투입해 학교 폐쇄를 시도했고 수만 명의 동포들이 학교 사수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점령군은 점령기간 유일하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무자비 투옥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16살의 김태일이라는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희생되기도 하였다. 이른바 '제1차 폐쇄령'은 48년의 '4.24 교육투쟁'으로 불리는 조선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실패로 끝났고 동포들은 학교를 지켜낼 수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이듬해인 1949년, 이번에는 학교를 운영하고 지탱하는 조련을 먼저 강제해산함으로써 학교 폐쇄를 시도했다. 투쟁을 조직하고 군중을 묶어내는 민족조직이 사라지자 거대한 공권력의 탄압 아래 거의 모든 학교가 강제 폐쇄되었다.

그 후 조련의 맥을 이어가며 민전(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 시기를 거쳐 1955년에 지금의 총련이 결성되었고 민족교육 사업을 본격적으로 복구 재건해갔다. 총련 시기 특기할 만한 것은 1956년의 조선대학교 설립일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인이 극소수였던 당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민족교육을 담당해줄 교원이 필요했고, 동포사회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의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이국땅에서 민족 자체적인 대학교의 설립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예일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대학교는 약 1만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 졸업생들이 오늘의 조선학교 교단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들은 쓰레기 처리장 땅을 갈고 닦아 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모두가 곤궁한 생활이었으므로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똘똘 뭉쳐 맨손으로 건설을 이끌어갔다. 당시 조선인들의 직업이라는 것은 대다수가 고철이나 골판지 같은 폐품을 모아 되팔거나, 토목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정도였지만, 자식을 조선인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마음은 고된 노동도 견뎌내게 했을 것이다. 일본학교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공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이제 학교는 아이들의 교육의 장이라는 개념을 넘어 조선인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으로 자리잡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동포들이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학교 건설에 분투하고 있을 때, 그들이 표현하는 '생명수'와도 같은 교육 지원금이 북한으로부터 보내졌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생명수라는 말이 웅변하듯이 사막에 방치되었던 동포들은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고 북한과 총련이 자신들이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은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북한의 송금이라는 상징적 사건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이제 백성을 버린 이른바 '기민'의 조국으로 더욱 자리잡아갔다. 그러나 대부분이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을 남쪽에 두고 있었다. '멀지 않아 통일이 되어야 한다, 아니 통일이 될 것이다'라는 그들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편,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탄압은 1965년 '외국인학교법안'으로 이어졌다. 1965년이면 한일협정이 조인된 해이기도 하다.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성 또는 국민성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인학교는 우리나라 사회에 있어서 각종학교의 지위를 부여하는 적극적 의의를 지닌 것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문부성 차관이 내보낸 이 통달에 이어 일본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외국인학교의 교육 내용을 통제하겠다는 취지의 '외국인학교법안'을 제출했다. 동포들은 1966년경부터 1971년경까지 법안 폐기를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다. 일본정부는 수정을 해서라도 법제화를 실현시키려 했지만 동포들의 강한 반발과 투쟁에 부딪혀 포기했다.

사실, 조선학교는 일본에서는 법적으로는 '학교'가 아니다. 운전학원이나 미용학원과 같은 '각종학교'로 취급된다. 따라서 일본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인정되지 않고, 사회에 나가면 취직 등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또한 재일조선인들의 끈질긴 운동으로 2005년경부터 대학의 입학 자격 여부는 각 대학의 재량에 맡겨지게 되었으나, 이것은 대학 측이 베푸는 선의에 따른 것이지 정당한 권리로서 보장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본에서 학교란 일본의 교육법 제1조가 정하는 이른바 '1조교'에 준해 운영되는 학교를 말한다. 차별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조선학교가 차별받지 않고 일본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으며 안정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선 '1조교'가 되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1조교가 되면 일본 정부가 지정하는 교과서를 써야하고 교원들은 일본의 국가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고용된다. 그렇다면 조선학교 아이들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배우고 일본 영토라고 배우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며 위안부는 군대라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배우게 될 것이 아닌가. 급기야 국경일에는 일장기를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분명 조선학교의 숫자는 줄고 있고 학생 수도 감소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놓고 차별하는 데 일상 속에서 부딪치는 차별도 불 보듯 뻔하다. 그 뿐인가. 시시 때때로 터지는 남북 간의 갈등, 한일 혹은 북일 간의 갈등은 우익의 총알에 방아쇠를 당겨 고스란히 조선학교 아이들에게로 조준된다. 조선인임을 고집하면서 일본사회에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것보다 일본인들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녹아 사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겠건만 그럼에도 조선학교는 버티고 서 있다. 조선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투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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