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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영국 역사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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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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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중앙일보 / 최복림 시인 ]


런던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요크라는 고도에 도착한다. 조지 6세 왕이 "요크 역사가 바로 영국 역사"라고 말한 1000년 이상 된 곳이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곳이 2000년 이상 영국의 정신적 수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크에는 1220년에 시공, 250년 걸려 완공된 요크 사원이 있다. 높이 200피트의 탑은 15세기 건축의 걸작이다. 요크에는 우스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20마일을 흘러 북해에 합류한다. 호텔에 있는 투어 북에는 이 도시에 조지 허드슨이라는 저명인사가 수백 년 전에 살았다고 돼 있다.

이 도시는 한 때 바이킹 침략을 받았다. 그들은 도시 이름을 노빅이라고 불렀는데 영국인들이 후에 요크라고 불렀다. 요크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곳에 도착해 뉴욕이라는 세계 최대 도시를 건설했다. 허드슨 강 이름도 조지 허드슨에서 나왔을 것이다.

요크에서 다시 북으로 30분 정도 가면 워싱턴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미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아버지가 여기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 근처에 버밍햄이라는 영국 제2의 도시가 있다. 버밍햄 사람들은 남부에 대거 이주, 앨라배마에 버밍햄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이렇게 미국 역사는 영국계에 의해 시작되었다.

5월 27일부터 10일간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여행했다. 한국말 '영국'은 애매하다. 공식적으로는 'United Kingdom'을 말할 것이다. UK는 잉글랜드, 웨일스, 로스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합친 것이다.

아일랜드는 엄연한 독립공화국이고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리시들이다. 북아일랜드인들도 아이리시지만 UK에 합류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영국이 네 나라로 갈라져 얼마나 피를 흘리며 싸웠는지 알았다.

이들을 갈라놓은 것은 종교였다. 잉글랜드인은 신교를, 아일랜드인은 구교를 믿었다. 같은 아이리시지만 북아일랜드인은 신교를 믿어 아일랜드인과 수백 년간 유혈충돌을 벌였다. 웨일스도 자기 언어와 전통을 보존하며 싸웠고, 스코티시들은 산하가 피로 물들 정도로 수백 년간 투쟁했다.

영국 역사를 보면 잉글랜드는 압제자였고, 다른 네 나라는 피해국이었다. 잉글랜드 인구는 5200만, 아일랜드 400만, 스코틀랜드 500만, 북아일랜드 200만, 웨일스 300만이다. 인구나 군사력에서 비교가 될 수 없다.

영국정부는 이들의 반영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998년 자치권을 확대했다. 스코틀랜드는 에든버러에 수도를 두고, 의회를 구성했고, 북아일랜드 역시 벨 페스트에 자치정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런던에 대표를 보내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를 'Devolutio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는 영국인들은 잉글리시, 아이리시, 웰시, 스코티시를 통칭한 것인데 엄밀하게는 많이 다르다.

영국은 아름다웠다. 런던을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다. 카놀라 쿠킹오일을 제공하는 노란 꽃이 만발한다. 풀밭에는 수많은 양과 소,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금방 태어난 양이 어미 곁에 누워있는 모습은 평화스러웠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친절했다. 골프 발생지 세인트 엔드루스에 갔다가 버스를 놓쳤는데 지나가는 차가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이웨이에는 광고판이 없었고, 런던을 제외한 도시에서는 오후 5시가 되면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그들에게는 돈보다 삶의 질이 더 소중한 것으로 보였다.

영국인들은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런던 택시 운전사들이 나라 이미지를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매너를 지키고 봉사하는 교육을 받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런던 택시 기사의 90% 이상이 백인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명작을 남긴 작가의 흔적을 더듬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이다. 떠나기 전에 책을 읽고, 부지런히 메모하고, 질문을 던지고, 돌아와서는 보고 들은 것들을 확인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도 기뻤다. 조금이라도 많이 보고 느낀 것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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