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7.16 화 15:02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교포지논단
한미동맹사(史)의 불편한 진실
뉴욕 중앙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3.2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중앙시론> ,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


한국과 미국 간의 군사동맹은 페니실린과 같다. 일단 균이 침투하면 두 나라는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마침내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버리겠다는 합의다. 이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지난 주 대한민국 하늘에는 초토화의 상징 B-52 폭격기가 떴다. 또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에 초기부터 공동 대응키로 합의했다. 70년대 전봇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한방이면 직방'이라던 항생제 주사 광고처럼 억제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이 같은 항생제 치료에 국운을 건 지도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리고 항생제를 더욱 강하게 만든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정권의 비정상적인 태생이 나은 결과다.

1961년 5월 16일. 미국의 대외정책의 한 축에 금이 간 날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외정책의 세 기둥을 천명했다. 군사경쟁국 소련과의 협력의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활성화, 그리고 한국과 같은 약소 동맹국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도움을 약속했다.

이렇듯 희망에 차 있던 케네디는 60만 대군의 나라, 5만 이상의 미군이 주둔해 있는 나라, 미 원조의 대표적 수혜국 '코리아'가 고작 3500명 반란군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hopeless)"이라 외쳤다. 박정희 정권의 생존은 이 절망감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었다.

따라서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이고, 베트남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군이 주둔하는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호(또는 굴욕)적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도 유지했다.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한 것이다.

이제 두 나라의 이 같은 밀착, 밀월관계의 결실을 냉정히 들여다보자. 미국의 동북아 정책의 중심축이었던 한일관계정상화. 이를 통해 두 나라는 과거를 청산하고 종국에는 공생공존의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시나리오는 빗나가도 너무 많이 빗나갔다. 정신대도 인정하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대일 의존도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다.

베트남에서의 한ㆍ미 혈맹관계의 성적표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한국은 베트남에서 미군병력의 10분의1 규모의 군대를 유지했다. 한국군 대다수는 전투병력. 싸우는 데 전념했다는 뜻이다. 이런 한국이 전쟁의 포괄적 흐름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단순화하면 한국군이 피를 흘리고 있는 중에도 미국은 한국을 배제하고 평화도 논하고 정전협정도 맺었다. 같은 전쟁, 같은 독성물질의 피해자인데도 고엽제에 노출되었던 미군은 정식 피해자다. 하지만 한국군은 사건을 구경하다 당한 간접 피해자 취급도 받고 있지 못한다.

SOFA는 어떤가? 북한, 일본과 더불어 한국인의 공분을 자아내는 최대 요소라 할 수 있다. 사건을 저지른 후 미군부대로 도망치거나 한국의 공권력 앞에서 미 헌병이 올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면 빠져나올 길이 있다는 생각이 주한미군들 사이에 팽배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누구보다도 박 전 대통령 자신이 한미 혈맹의 약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미국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는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은 한반도에 자동 개입한다는 보장이었다. 미국이 일본에게 해준 수준의 보장을 같이 피를 흘리고 있는 한국에 왜 못하냐는 논리였다.

소위 '태평양 헌장(The Pacific Charter)'도 요구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침략행위를 끝까지 저지할 것을 천명하자고 했다. 인도차이나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문화 하자는 주장이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ㆍ21 사태, 푸에블로 사태에서 드러난 미국의 소극적 대응자세, 베트남 전쟁의 종전, 미소 데탕트, 미ㆍ중 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국에서의 미군 감군 등 한국의 안보와 직결된 중대사안 결정과정에 한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중대한 변화를 객석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박 정권의 화두로 자주국방과 체제안정이 부상했고, 그 결과 한ㆍ미 간의 긴장이 더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 상황의 결과물로 풀이한다.

한미동맹사(史)의 불편한 진실이 주는 교훈이 있다. 동맹을 유지하는 힘은 우호가 아니라 실리다. 융단 폭격기의 비행에 너무 들뜨지 않기를 바란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