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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3·1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재독한인총연합회
류재헌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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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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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4회 3·1문화상 수상자들이 단체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정식 재독총연 고문, 고창원 파독산업전사세계총연합회 회장, 류제헌 재독총연 회장)

지난 3월1일 오후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열린 ‘제54회 3·1문화상’ 시상식. 입구에는 3·1문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화한들로 넘쳐났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교포와 관련된 축하화환이었다. (재)3·1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54회 3·1문화상’ 특별상 수상자로 재독한인총연합회(회장 류제헌, 이하 재독총연)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올해로 54회째를 맞은 3·1문화상은 지난 1960년대 조국의 산업발전과 근대화를 위해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국민적 관심을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재독한인회에 3·1정신 특별상을 수여한 것이다.

이들 파독광부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독일한인사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의 정신적 토대가 된 3·1운동정신을 되새기며, 한인사회의 단합과 미래지향적 발전, 교포2세들을 위한 민족정체성 함양을 목적으로 재독총연을 비롯한 파독광부와 간호사단체, 한글학교, 한인회, 체육·문화단체, 유학생, 한인교회, 상공인 단체 등이 협력해 3·1운동정신 선양을 위한 교포2세 우리말웅변대회, 3·1절 기념 축구대회 등을 개최해 오고 있다.

조국근대화의 주인공 - 파독광부와 간호사

   
▲ 파독광부 합격자 발표장에 운집한 응시자들.
전쟁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지독한 가난이 대물림 됐던 시절, 1960년대 초 남한 인구 2500만 명 중 250만 명이 실업자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의 세계 최빈국이었으며,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해 1963년 아시아 경제 강국 이었던 필리핀의 원조와 기술력으로 장충체육관을 건립해야만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도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노동력이 유일한 자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특히 외화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각오가 돼 있던 그 무렵, 조국의 경제개발 초석을 다지는 소식이 전해졌다. 1963년 ‘라인 강의 기적’을 구가하던 독일과의 탄광 노동자 파견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500명 모집에 4만 6천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20~35세의 남성으로 1년 이상 탄광 근무경력이 선발조건이었지만, 선발된 사람은 고학력자가 주를 이루었다. 지속적인 파견을 위해 우수한 사람을 선발대로 보내야 한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1000m 지하갱도에서 품어져 나오는 30℃를 오르내리는 열기 속에 근무해야하는 열악한 환경과 하루 10시간의 중노동,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의 위험을 안고 파독광부들은 독일 지하갱도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조국에 있는 그리운 가족에게 받은 급여를 고스란히 송금했다.

1977년 파독광부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독일에 나간 광부의 숫자는 7,936명에 이른다.
한편, 파독광부와 때를 같이 하여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의 조국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도 눈부시다. 1962년 간호학생 20명 파견을 시작으로 1976년까지 서독으로 건너간 간호사는 10,032명이나 된다. 1973년 통계로는 서독전체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는 6천명 이상이나 됐다. 조그맣고 가냘픈 체격의 한국 간호사들은 100kg넘는 거구의 독일 사람들을 극진한 간호로 보살피며, 연장근무와 주말근무를 자청해가며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근면성을 보여 ‘동양의 연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리운 가족과 조국을 그리며 눈물로 애환을 달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 1964년 서독 함보른 광산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식장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를 목이매어 마저 부르지 못했고, 박 대통령은 연설도중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연설을 중단하기도 했다. 장내를 메운 모든 사람이 울음바다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 독일 탄광에서 일하고 있는 파독광부.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서럽고도 고달픈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담보로 조국은 산업화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국내에 송금한 금액은 연간 5천만 달러로 한 때 국민총생산(GNP)의 2%에 달했다. 1960년 우리나라 수출액이 3천 2백만 달러정도 이었으니 이들의 외화획득은 나라의 경제발전의 운동력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부와 간호사 파견은 이후 전개된 월남파병으로 인한 특수, 중동건설 특수 등 60~70년대 이뤄진 대규모 한국인의 해외이주와 노동력 수출의 신호탄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개발시대, 재일동포들의 모국에 대한 투자와 공헌 못지않게 이들 해외 파견 근로자들은 근대화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3년 계약을 마친 파독광부들은 현지 파독 간호사와 결혼해 독일에 거주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와 미국, 유럽 등지로 진출해 성공적인 이민자로 정착해 나갔다. 이들은 미주와 유럽한인사회의 기초를 세우며 사업가, 의사, 변호사, 화가 등 자신의 꿈을 키우며 한인 타운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파독광부 간호사의 삶 – 자발적 이주 아닌 정부파견 노동자 파독광부의 노후

60~70년대 빈곤의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조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며 글로벌시대를 향한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재외동포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식과 태도는 너무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재외동포가 고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외동포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는 많은 괴리가 있어 보인다.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동포와 그 후손뿐만 아니라 구 소련시절 연해주에 살다가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고려인, 한일 양국의 무관심 속에 잊혀진 사할린 동포, 온갖 차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 그리고 가난했던 시절 타국만리 떠난 파독광부와 간호사에 이르기까지 이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교포정책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재외동포들의 남다른 고국을 향한 애착심은 눈물겹다.

   
▲ 3·1문화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류제헌 재독총연회장.
지난 3월 1일 재독한인회총연합회를 대표해 ‘제54회 3·1문화상’을 수상한 류제헌 회장은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파독광부 50주년’을 맞이해 조국 근대화에 노력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는 의미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독일 통일을 몸소 체험하며 독일한인사회를 형성한 이들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민족정신 함양과 정체성 확립의 노력이 높이 평가됐음은 물론이다.

류 회장은 독일한인사회는 다른 나라의 한인사회와는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독일한인사회의 형성은 ‘파견의 역사’라는 것이 류 회장의 진단이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외화를 벌려고 전쟁터 같은 극한 노동현장으로 정부가 공식 파견한 노동자들이기에 이들은 스스로를 ‘전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그들의 지난날의 삶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독일에 남아 거주하고 있는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은 대부분 60~70대의 연로하신 분들이다. 한국과 비교해 많은 급여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들은 받은 급여의 대부분을 국내에 송금했기에 저축해 놓은 돈이 별로 없다. 연금형태로 월 70~80만 원 정도를 받고 있으니 생활하기에는 고달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독일인들의 삶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류 회장은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 이들 파독광부와 간호사에 대한 정부차원의 역사적 재평가와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국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동포들의 처우에 대한 국회차원의 입법추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2세들을 위한 노력

보릿고개와 가난이 대물림 되는 삶을 벗어나고자 미지에 세계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역경을 무릅쓴 개척정신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와 민주화 실현의 밑거름이 됐던 파독광부와 간호사, 이들이 닦아놓은 터전위에 독일한인사회가 형성됐다. 또 이들의 희망찬 내일을 향한 진취적인 해외진출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글로벌화와 지구촌 전체를 무대로 곳곳을 누비는 720만 명의 민족자산을 이룩하게 됐다.

그러나 타국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을 떠난 이들의 품속에 태어난 2~3세들의 정체성문제는 풀어야 할 현안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고유의 전통문화계승과 민족교육, 정체성 함양, 모진 차별과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배타적 감정보다는 정당한 주장으로 독창력과 개척정신을 발휘했던 3·1운동정신을 차세대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독일한인사회는 1971년 8·15광복절기념 ‘재독일한인종합체육대회’를 기점으로, 1979년부터는 ‘3·1절 기념 축구대회’를 본격적으로 개최했다. 그 후 3·1절 80주년인 1999년, 재독한인총연합회는 삼성유럽본부의 후원 아래 주독일한국공관, 한글학교, 한인회, 파독광부, 간호사단체, 체육·문화단체, 유학생, 차세대단체, 한인교회, 상공인단체, 재향군인회 등과 협력해 3·1절의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확립을 위한 ‘재독청소년 우리말웅변대회’를 개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독수교 130주년과 파독광부 50주년, 재독총연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한국문화에 대한 다양한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재독총연은 오는 6월 5일부터 6월 8일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1회 한국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재독총연은 이 행사를 통해 한독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우리와 분단의 아픔을 함께했던 독일이 이룩한 통일의 운세를 한반도로 전해 통일한국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 이날 개막행사에는 한국산 쌀과 북한산 나물로 만든 2013인분 통일비빔밥 나누기 이벤트 행사도 예정돼 있다. 또 한독수교 130주년에 즈음하여, 한국기업과 독일주재 한국회사들이 참여하는 한국제품 홍보부스를 마련해 제품 판매를 촉진하고, 한독 매스컴을 통해 ‘한독수교 130주년’을 재조명하는 홍보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한편, 한류문화와 한식세계화와 관련해서는 K-POP과 B-Boy공연으로 한류바람을 확산시키고, 한식과 한국특산물, 한복 등을 소개하는 장도 마련할 예정이다.

   
▲ 3·1 기념 교포2세 우리말웅변대회 장면.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 수는 약 5만 명 정도이다.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주축이 된 교포1세들과 1.5세에 해당되는 40대 연령층, 순수2세에 해당되는 30대 이하 계층으로 이뤄져 있다. 독일한인사회를 이끌어가는 세대는 1세에서 1.5세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교포1세와 1.5세간의 공백기가 길어 이것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독일한인사회는 교민 수에 비해 조직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독총연 류제헌 회장은 “다른 나라의 한인사회와는 달리 한인회와 한글학교를 통해 2세들의 한국어 교육이 잘 돼 있어 정체성의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한국의 위상이 교포들의 위상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번 3·1문화상 수상을 계기로 대한민국 건국 정신인 3·1정신을 교포사회에 더욱 발현시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류 회장은 “진정한 통일은 자유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세계평화와 공생의 길을 추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독총연은 교포 후세들에게 그런 정신을 끊임없이 교육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재독한인사회로의 길

독일한인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파독광부 중심의 1세들이 이끌어왔던 재독총연 회장에 비광부 출신이 선출됐다. 지난해 6월 실시된 재독총연 회장선거에서 1984년 독일로 유학 온 후 정착해 광고회사와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출신 류제헌(柳濟憲, 59) 씨가 대의원 159표 중 104표를 얻어 54표를 얻는데 그친 최병호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리고 제32대 회장에 당선됐다. 류 회장의 당선은 1세들이 이뤄놓은 터전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젊은 세대들이 요구하는 독일한인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독일한인사회도 다른 한인지역 한인회와 마찬가지로 계층과 지역, 한인회원들 간의 알력과 갈등이 심했다. 비광부 출신 재독총연 회장의 선출이 독일한인사회의 단합과 화합을 이룰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이나, 아직 존재하고 있는 계층과 단체회원들 간의 불신해소 문제는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재독총연의 3·1문화상 수상은 시사 한 바 크다. 한독수교 130주년, 파독광부 50주년, 재독총연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독일한인사회가 거듭날 수 있는 좋은 시점이다. 1세들의 헌신과 수고로 이룩한 독일한인사회는 독일의 통일과 이데올로기 갈등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숱한 어려움과 갈등을 극복하고 유럽한인사회의 맏형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해온 독일한인사회이기에 동포사회는 그 향후 역할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3·1정신의 발현이 한민족의 글로벌화를 어떻게 촉진시켜나갈 것이며, 재외동포사회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 것인지 독일한인사회의 역사를 통해 그 일단의 가능성을 발견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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