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홍장 / 일본 조치(上智)대학 연구원 ]

나는 ‘재일조선인의 민족정체성 연구의 역할’(2012년 11월 22일자 기고문) 이란 기고문의 시작 부분에서 ‘더블(ダブル)’인으로 살아가는　후배 말이 계기가 되어 연구생활을 시작했다고 썼다. 그래서 내 연구는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더블’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요즘 조총련이나 민단을 비롯한 민족단체의 심각한 문제는 ‘조직이탈(組織離れ)’이다. 물론 재일조선인이라는 배경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은 다수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상황이 개선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지향성과 정체성은 다양화•개인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보완해 온 민족적 유대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조직이탈’의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더블’이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순혈주의적인 가치관 안에서 배제, 소외되는 경향에 있었다. 재일조선인사회가 순혈주의에 의거하여 온 것은 계속되는 일본 식민주의를 타도하고, 재일조선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목표로 한 연대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재일조선인이 당한 ‘피해’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즉 ‘더블’의 부모 중 한 사람은 일본인이며 가해와 피해의 문맥에서 보면 그는 가해자이다. 따라서 ‘더블’이 내포하는 가해성으로 인해 피해성에 의거한 민족적 연대에서는 불순(不純)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조직이탈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더블’을 민족적 연대에 포함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순혈주의 대신 연대 기반으로 설정된 것은 ‘역사성’의 공유이다. ‘더블’이라도 부모 중 한 사람은 재일조선인이며, 일본사회에서도 자주 재일조선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같은 역사적인 입장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역사성 역시 공유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이원론(二元論)에 근거한 것이며, 결국 그 중 하나의 입장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들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적인 입장을 추구하면 할수록 일본인 입장성도 뚜렷이 드러나게 되고, 자기 내면이 찢기는 듯 한 갈등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들과 함께 부(負)의 역사를 극복하고 해방을 갈망하는 우리는, 민족이라는 틀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민족’이란 무엇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가 형성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계속 직면해 온 물음이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조상이 경험해 온 역사는 그 민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더블’의 존재는 그 역사와 마주보는 방법을 근원에서 되묻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에 대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민족 카테고리 내부의 공동성을 둘러싼 문제는 재일조선인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 새로운 억압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소개]

리홍장
교토대학 박사(문학). 사회학 전공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조치(上智)대학 객원연구원
 

(제공 : 지구촌동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