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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사회에 한국교육 융합시키는 상파울로 국제학교 안경자 교사 이야기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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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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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자 브라질 상파울로 국제학교 교사
지독한 자기만의 시간과 속도 그리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나라, 미래가 보이지 않아 <미래의 나라>로만 영원히 불릴 것 같았던 브라질은 우리의 생각보다 빨리 그 바라던 미래를 맞이하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신흥대국의 반열에 오른 브라질과 한국의 인연은 깊다. 올해 2월이면 브라질이민 50주년을 맞이한다. 1963년 농업이민을 시작으로 형성된 브라질 한인사회가 남미 한인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지난 50년간의 브라질 한인들의 피와 땀이 어린 결과물이다. 한국산 가전제품의 높은 인기를 필두로 한국기업들의 남미진출, 한류의 붐에 이르기까지 남미사회를 달구고 있는 한국에 대한 관심도 한인들의 역할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한국에 대한 관심 증폭과 한국기업의 브라질 진출 가속화, 점차 증가해 가는 브라질 한인 수에 비해 우리 정부의 브라질과의 융화 노력과 준비는 미흡해 보인다. 이제는 ‘한류가 남미를 휩쓸고 있다’며 호들갑 떨며 장밋빛 전망만 남발하는 국내 언론매체의 영향에서 벗어나 현지 한인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현지에 살고 있는 지상사 직원들과 공관직원 자녀의 학업문제,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우려는 현지인들에 대한 대책 등 당면한 문제를 정리해가며 점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국제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에 참가한 브라질 교포 여성한 분을 만났다. 학술대회에서 ‘브라질 사회와 한국어•한국문학 수업에 대한 수요증가 실태’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50대(代)의 연령처럼 보였으나 실은 올해 72세의 노인이다. 32년간 브라질에 영주하면서 느낀 브라질에 대한 생각과 교포 자녀들, 특히 현지에 진출해 있는 공관직원과 지상사직원 자녀들 교육문제에 대해 쏟아내는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브라질 이민과 한국학교 교사

안경자(42년생, 서울). 브라질 상파울로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 생활을 하다 1981년 브라질행 이민 비행기에 올랐다. 부모님은 70년대 초 브라질로의 농업이민이 어렵게 되자 1975년 우여곡절 끝에 기술이민을 통해 3남 1녀를 이끌고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6.25전쟁 전 월남하셨던 부모님은 늘 전쟁불안과 실향민으로서의 삶의 애환을 달래다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셨다. 그 후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외국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신 아버지는 전쟁이 임박한 줄 알고 한국에 남아있는 시집간 딸 가족까지 초청이민 형태로 브라질로 이주시키셨다고 한다.

   
▲ 2002년 남편과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남미의 외환위기로 브라질 또한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다. 브라질 교민들은 수입이 감소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의류업 등에 진출해 활로를 모색해 나갔다. 안경자 선생은 신천지 브라질로의 이민이 오아시스의 삶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내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다행히도 안 선생은 교사출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교민들의 자녀교육에 응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을 받았다.
선생을 초청한 학교는 한양대 동문(한백장학회) 10명이 만든 주말학교(상파울로 한국학교)였다. 당시 브라질 한인사회는 옷장사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교포들이 자녀교육에 힘을 쓰던 때였고, 일부 교민들은 미국으로의 재이민 물결에 동참하는 와중에도 상파울로 한국학교는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학생 수가 750명이나 되었다.

“제가 그들의 초청을 승낙한 것은 제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입니다. 어째든 바쁘고 몸이 힘든 이민 생활 중에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글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10년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브라질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브라질이 거대 경제국이기도 하지만, 브라질이 생소한 이민자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사회라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그녀의 아들(이지별)은 대학을 미국의 ‘Parson’에서 수학한 이후, 세계적인 거리의 설치미술가로 활약했고, 구글(google) 회사를 거쳐 지금은 페이스북(facebook)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브라질 사회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브라질에서의 자녀교육은 힘든 편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공부가 아니었기에 한글교육 외에는 자녀들에게 교육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 아들(이지별)과 함께.
브라질 한인사회의 주류가 1.5세로 바뀌고, 브라질의 빈번한 경제정책 변화로 안 선생은 한국학교를 그만두고 생활터전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국기업의 법인장으로 브라질에 진출한 후배가 자녀교육문제를 상의해 왔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위한 바칼로리아 제도(한 과목을 자국어로 수업 받고 시험 볼 수 있는 제도)로 국제학교와의 인연을 맺었다. 한국문학을 모국어인 한국어로 가르치는 교사 초빙된 것이다.

안 선생은 2년간 국제학교에서 한국문학 지도교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세인트 니콜라스(St. Nicholas) 국제학교’ 정식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주재원들의 자녀수가 늘어난 데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브라질 사회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인트 니콜라스 국제학교에서 11학년(고2)을 대상으로 1주일에 5시간 한국어 수업(시, 소설, 수필 등)을 진행한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학교 문학 담당교사직도 맡고 있다.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 된 브라질에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해 국제학교 학생 수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학교가 학생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변화에 브라질 사립학교들은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계 국제학교가 설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업들이 진출하듯이 한국의 학교법인들이 상파울로에 분교 형태의 학교를 설치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중등과정의 사립학교 수업료는 매우 비싸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갖춰져 있는 다른 국제학교는 정원이 한정돼 있어 들어갈 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교사마저 없어 한인(주로 주재원, 공관직원) 자녀들의 취학문제는 심각하다고 했다. 브라질 진출 한국기업들은 직원 자녀교육을 위해 입학정보를 자체 발행할 정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한인 학부모들로부터 한국어 수업을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자녀교육은 가장(家長)의 회사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안 선생은 한국계 국제학교가 설립된다면, 그 전망은 매우 밝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많고, 자녀교육문제로 직장근처가 아닌 해당학교가 있는 곳까지 이사를 가서 거주하는 등 한국계 국제학교나 한국학교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또 브라질 사람들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 딸(오른쪽)과 외손주들.
안 선생은 브라질은 60~70년 초반에만 해도 한국보다 경제사정이 나았는데, 이후 비약적으로 한국이 성장하자 한국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으며,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결과(2002년) “교육 혁명”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교육 혁명의 주요 성공요인으로 ‘정부의 중점적인 지원’이라는 요인을 들기도 했지만, 안 선생은 학부모의 열정이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국제학교에 다니는 교포자녀들은 별로 많지 않다. 수업료가 비싸기도 하고, 커리큘럼이 일반 브라질 학교와는 달라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굳이 국제학교를 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안 선생은 1주일에 17시간 수업을 한국 문학작품과 신문기사 내용을 콘텐츠로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낯설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다. 한국문학 한 과목만으로도 교포 자녀들과 체류 자녀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안 선생의 나름의 교수법이다.

정체성 확립과 국제학교 수업

“최신 신문기사를 발췌해 정규수업 외 역사수업을 진행하는 식입니다. 역사별, 주제별 주제를 선정한 후 조사 연구한 것을 가지고 우리역사와 문학작품을 연계해 발표토록 하고 있습니다.”
 

안 선생은 1주일에 한 번씩 이런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끔 역사와 영토문제로 일본 출신 아이들과 다투기도 해 시사문제는 많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국가 간(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몰라 우리 영사관에 가서 방침을 달라고 했더니, 관련 서적만 줄뿐 지침은 없더군요.”

해외에서는 이렇게 한일 간 역사문제가 부딪칠 수 있는 곳이 국제학교이다. 국제학교 내에서 한국학생과 일본학생들은 평소 친하게 지내다가도 역사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로 물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한국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은 브라질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안 선생은 국제학교 교장으로부터 몰려다니는 이들의 모습에 우려를 표하며 브라질 아이들과 어울리도록 지도해 달라고 요청을 듣고 있다고 했다. 영어습득이 타국 학생들보다 빠르고 똑똑해 학교 측에서 한인 아이들을 선호하고 있지만 공부에만 매달리거나 운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모습은 걱정스럽다고 했다. 학생들의 운동을 중요시하고 활동점수도 크게 주는 국제학교의 전통적인 분위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안 선생이 속해있는 국제학교에서는 한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역사와 한문 등을 가르치기 때문에 한인사회에서는 소문이 나 있다. 요즘 안 선생에게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 국제학교에 근무한지 13년이 되었으나 후임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 후배들에게 물려 주려해도 마땅한 전공자를 찾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문학을 전공한 브라질에 살고 있는 교포들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안 선생은 모국에서 한국학교와 국제학교에 교사를 파견해 주길 고대하고 있다. 계속 증가하고 있는 한인 학생들을 보면 더 나이가 들기 전 후임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한국 대학졸업자 중에서 과감히 브라질 국제학교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인회 활동과 브라질 사회

   
 
현재 브라질에는 약 5만 명의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중 4만 5천 명 정도가 상파울로에 살고 있다. 안 선생은 이민 40주년이 되는 2000년대 초 브라질 한인사회의 단합과 성공한 한인들(1세~1.5세)의 발자취를 남길 목적으로 주간지를 발행(2001~2003년)하기도 했고, 한인회보 편집장(2004~2006년)을 맡기도 했다. 초창기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내용은 안 선생에게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브라질 교민사회는 오는 2월에 있을 이민5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안 선생은 브라질 카니발 팀이 이 기념행사에 참여하기로 했고, 한국역사와 문화를 행렬을 통해 보여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브라질 이민50주년을 맞이하는 현재, 그녀는 브라질에 대한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지적하며 인터뷰 내내 브라질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를 강조했다.

안 선생은 브라질에 오는 한국 신(新)이민자 중에 브라질 사람과 기존 교민들까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최첨단 기기와 세련된 현대문화를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지만 한국과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한국에 대한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브라질에 와서 금방 성공할 것 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브라질은 브라질 속도’가 있습니다. 그 브라질 속도에는 엄청난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에 한국식의 ‘빨리 빨리’를 재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안 선생은 브라질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목 좋은 장소, 세련된 인테리어만 해 놓으면 장사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또 초창기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이 브라질 근로자들에게 한국식의 ‘빨리’문화, 강압적 태도, 엄한 얼굴 표정 등을 보이다 고소당한 일이 많았다며, 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대륙기질이 녹아있는 브라질 사람들의 생리를 고려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인 관리자들이 브라질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사람들을 다루다보면 답답해 소리를 지르게 되고, 갈등을 유발해 고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기질과 문화의 차이, 언어의 불통으로 인해 생긴 일들이다. 지금은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기업들 대부분은 이런 부분에 대해 사전 교육을 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글로벌사회에서의 문화의 이해는 해외진출의 밑거름이 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안 선생의 브라질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브라질 사람들은 점잖고 유머가 있어요. 그들은 생활자체가 유머입니다. 30년 브라질에 살고 있는 나도 아직 잘 안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브라질 사람들은 사장과 직원을 대등하게 생각합니다. 그냥 고용주와 근로자란 차이뿐이죠.”

브라질 사람들은 서로 선물주고 받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비싼 곳에서 대접하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그곳에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기 때문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안 선생은 한국기업인들이 그들의 생활문화와 수준을 이해하고 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안 선생은 브라질 고속철 입찰 예정인 한국이 고속철을 수주할 경우 한국기업의 브라질 진출은 급속히 늘어날 것 같다며, 브라질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만 브라질에서 성공하려면 브라질의 문화와 특성에 대해 알고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라질 교민과 체류 한국인 간의 갈등과 협력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이 교포자녀들을 채용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브라질의 문화와 한국문화를 동시에 접하고 있는 이들 교포자녀들을 채용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한국 업체들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교포 자녀들이 브라질 사회와 소통은 잘 해도 공문서 작성 등에 있어서 너무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본사와 타 업체에 공문서를 보내려 해도 어휘력과 문장력이 뒤떨어져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한국 업체들이 교포 자녀들을 채용해 쓰면서 대우를 해주려 해도 한국어 실력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어 교육은 교포자녀들의 취업과 밀접해 있어 교포사회는 한국어 교육 심화방안에 고심을 하고 있지요.”

안 선생은 교포 자녀들이 품격 있는 한국어 구사와 실력을 갖추려면, 한국(한글)학교 기능이 제도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시설과 교재, 교수법, 교사채용 등에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재원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들을 브라질 전문가로 교육시킬 수 없는 이유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가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 지난해 12월 21일 '2012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에 참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안경자 교사.
안 선생은 한국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브라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배워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라질사회로 자꾸 진출해 들어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 선생에게 모국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브라질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느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녀는 브라질 교민들은 브라질 사람들을 닮아서인지 유순하다고 자랑했다. 교민들이 브라질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윈(win)-윈(win)하게 된다면 할 일이 너무 많아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외동포재단에 대해서는 교포들의 정체성 확립과 교포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서라도 교육문제에 더욱 신경 써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교포사회의 민족교육을 위한 좋은 교재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안 선생은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주재원들과 현지에 정착해 사는 교포들과의 괴리 문제도 언급했다. “주재원들과 교포들 간 왕래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서로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하나 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계 국제학교 설립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정부의 대 브라질 이민정책은 세계 이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초기 농업이민으로 시작했지만, 브라질 중심지역에 뭉쳐 살면서 패션 사업을 일으키고, 교육을 통해 브라질 각 분야에 진출한 교포 자녀들, 진취적인 소상인 집단의 구성, 한국과 브라질의 교역확대 등에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브라질 한인사회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방대한 자원과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 브라질. 한국기업들의 남미 진출의 가속화와 한류 붐은 브라질 한인사회의 또 따른 변혁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이민임에도 불구하고 교민 수가 5만 명을 넘지 못한 이유는 약 20만 명 이상이 미국 등으로 재이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잘 정착한 브라질 교포사회가 한국과 브라질의 가교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주재원들과의 밀접한 교류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포를 포함한 브라질 한인사회의 발전의 토대가 될 민족교육과 정체성 함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5년 내에 브라질은 눈부신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브라질 한인사회가 한국과 브라질 간의 가교역할을 하며, 한인 차세대들이 이 땅에서 중추적 세력으로 성공하려면 브라질 교육계를 도와 그들의 교육철학이 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역할모델을 하고 있는 셈이죠.”

브라질 사회의 특성과 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교육을 쉼 없이 실천해 온 안경자 선생의 행로가 유독 빛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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