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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에 민족문화활동 펼치는 고정자(高正子) 코리아NGO센터 이사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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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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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자 코리아NGO센터 이사
현재 우리나라 재외동포 수는 700만 명을 상회한다. 재외동포가 많은 나라 순위로는 세계 5위 규모이다. 인구수 대비 재외동포 수로는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이어 3번째에 해당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4대강국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 재외동포들이 포진해 있다. 불과 40~50년 전 만해도 교포라고 하면 재일교포를 가리켰다. 그만큼 재일교포는 우리 현대사와 맥을 같이해 온 재외동포들의 상징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재일교포사회는 벌써 4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다른 이민자와는 달리 재일교포사회 형성은 역사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지난 세월 일본사회에서 숱한 차별을 당하며 남북한의 이념대립의 장이 되어왔다. 이들의 신분은 크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오랫동안 살아온 구정주자와 자발적 이민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신정주자(뉴커머)자,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는 남북한 어느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무국적자(조선적), 그리고 일본으로 귀화한 동포들로 구분된다. 다양한 신분과 법적지위,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것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귀화문제 등 재일동포사회는 한마디로 규정하고 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는 틀림없다.

최근 들어 재일교포사회는 대내외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큰 변환 점에 서 있다.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는 이들에게 있어 민족정체성 확립과 새로운 재일동포사회상을 정립하는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2월 중순, 조선학교 출신 재일교포 2세로 일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자녀들 또한 민족학교와 일본학교에 진학시키며 일본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재일교포 한분을 만났다. 그녀는 재일교포를 대변하고 있는 민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재일교포의 민족문화활동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아우르며 재일동포사회를 몸소 체험하며, 고민해 온 그녀에게서 대다수 재일교포들이 느끼고 말 하고 싶은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선학교 출신의 늦깎이 연구생

고정자(高正子).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16세가 되던 해, 1931년 부모님을 따라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는 광복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잔류하다가 1945년 일본에 온 어머니와 결혼해 2남 2여를 두었다. 그녀의 가정은 여느 재일교포 가정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펜촉을 만드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가정을 꾸려나갔다.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조선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조선학교에 입학해 중학교까지 마쳤다. 이념에 끌렸다기보다는 한국말을 배울 수 있다는 실질적인 부분이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부터는 일본 학교를 다녔다. 여동생과 남동생 1명은 초등학교(소학교)를 조선학교에서 마치고 중학교 때부터 일본학교에 진학했다. 막내 남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본 학교에 다녔다.

“우리 형제들의 학창시절을 보면 시대에 따라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재일교포 자녀들의 현실적인 진학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점차 일본 속에 녹아들어 가는 재일교포들의 삶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재일교포들이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는데 있어, 상급학교에서라도 일본 학교교육을 받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한국(조선)어와 한국(조선)사를 배웠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한국 이름을 일본식 발음으로 바꾸었다. 일본사회 속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많은 교포들이 취하고 있는 형태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대학 때 한국인들과 접하면서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교포 3세인 남편을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녀의 남편은 도장(페인트)업을 하는 아버지의 회사에 다니다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교사로 봉직한 후 최근 퇴직했다. 그녀는 현재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NGO센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高) 이사(理事)는 늦깎이 연구생이다. 그러나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0대 후반을 연상케 하는 동안(童顔)이다. 늦은 나이에 재일동포의 민족문화활동 연구에 뛰어들었다. 현재 고베대학교에서 문화활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고 이사가 민족문화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사회에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정체성 혼란과 관계가 깊다. 조선학교를 다녔음에도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모습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문화활동을 통해 일본사회 속에 나타나고 있는 민족정체성의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와 재일동포사회

‘조선학교 출신으로서 일본사회에서 받는 자죄감과 조선학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 지난 12월 21일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에 참가한 고정자 이사가 '오사카에 사는 제주도 출신자의 생활문화의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토론문을 발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말과 글, 민족사에 대해 배우며 차별받는 일본사회에서 민족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살 수 있는 민족정체성 확립을 했다는 측면에서 자긍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사회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활교육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학교를 통해 나름의 민족정체성을 정립한 측면은 있지만 일본사회에 진출했을 때 고뇌 없이 일본화 되어가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조선학교 출신들조차도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일본사회에 진출했을 때, 너무 쉽게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 없이 일본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어와 일본식 이름만을 사용한다면 민족정체성은 희박해지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고 이사는 조선학교 출신도 두 부류가 있다고 했다. 조선인임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사람과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과거와는 달리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고 일본 사회도 많이 변한만큼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힘들다고 숨기만 하면 더 힘들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일본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일본사회의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어 고 이사는 “이런 측면에서 조선학교가 학생들에게 언어와 역사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진출했을 때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떤 생활방식으로 정체성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고 이사는 일본의 극우세력 '재특회'(在特会-재일특권을용서하지않는시민의모임)’의 재일교포들에 대한 극단적 행위도 문제지만, 조선학교 출신 교포청년들의 경우 취업원서를 제출해도 면접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 거주하며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를 다른 외국인에 비해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극우세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사회가 예전과는 달리 이런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재일교포들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고 이사는 현재 조선학교에 행해지고 있는 일본 내 차별의 문제도 언급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핵문제, 미사일 발사 등을 구실로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중단과 고교무상화교육에서 배제시키는 등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이사는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주민에 대한 차별을 두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는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전 공산주의자를 탄압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통해 조선학교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고 이사는 이러한 문제를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이제 재일동포사회가 정체성 확립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일본당국에 항의하는 한편, 일본사회에 어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국만을 바라보는 민단과 조총련

고 이사는 조선학교 출신이지만 민단 단원이다. 재일동포사회를 대표하는 단체가 민단이기 때문에 민단을 통한 재일동포들의 법적지위 향상과 권익증진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고 이사는 민단을 통해 접하는 것은 민단신문을 받는 것 외에는 어떠한 활동참여에 대해서도 요청받거나 권유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단원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민단중앙3기관장 선거나 민단지방본부 선거조차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선거가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 지도 모를 정도라며 민단의 폐쇄성을 꼬집기도 했다.

“민단과 총련은 재일동포사회를 바라보기보다는 남북한 정부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아쉽다. 재일동포사회 초장기에는 일본 내 차별과 이념대립으로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일본사회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적극성을 띠고 재일동포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민단과 총련에 대한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그녀의 외침이다.

   
▲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

고 이사는 민단의 조선학교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단이 일본정부와 지자체에 대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교육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같은 동포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찬성은 못할망정 가만히 있기라도 하면 될 일을 드러내놓고 반대하고 나선 일은 민단에 있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생각 없이 사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일침을 가했다. 이어 고 이사는 “민단은 한국정부가 인정한 단체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일동포들을 위해 존재하는 민간단체일 뿐 한국정부기관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단 지도부는 한국정부기관에 속한 사람인양 특권의식에 젖어있는 것 같다”며, “한국정부가 민단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민단의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예전에는 민단이 영사업무를 대행하면서 재일동포들의 민단가입을 유도하고 총련과의 대결로 위상을 강화해 나갔지만 영사업무의 종결과 총련 세력의 약화, 신정주자의 증가 등으로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민단이 한국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해 재일동포사회보다는 한국정부만 바라보다가는 더 이상 재일동포사회를 대변하는 단체로서의 기능을 상실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총련이 북한에 의존하다 오늘의 결과를 초래했듯이 한국정부만을 바라보는 민단의 입장도 총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총련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직을 유지할 수 힘은 총련 출신들이 공동체를 통해 병원, 은행, 학교 등 각종 직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단은 그런 노력들이 안 보입니다. 일본 주재 한국기업이나 동포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재일동포 후세들이 취직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그런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단을 통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교포청년들이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고 이사는 총련 조직이 유지되는 원인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같이 민단도 재일동포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자생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단원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민단조직구조, 단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의원 몇 백 명만으로 치러지는 민단 선거, 한국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민단 사무직원들과 임원들, 가정방문 등을 통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밀접한 활동을 펼치는 총련과는 달리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각 지방 민단 사무국 등 민단의 문제점에 대한 고 이사의 지적은 그칠 줄 몰랐다.

한국어 교육은 동기부여가 중요 / 교포청년들의 결혼문제에도 신경 써야

‘교포3세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부모로서 재일동포 민족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한류(韓流)의 영향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교포 3~4세들의 입장은 어떤지’ 재일교포 민족교육과 관련해 물었다.

   
 
“우리 애들은 건국학교(오사카에 있는 재일교포 한인학교)를 다녔어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 있어, ‘민족학교’로 불리는 곳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본공립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민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이고, 일본 우익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많습니다. 일본을 상대하는 한국정부의 부담도 있겠지만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주었으면 합니다.”

고 이사는 재일동포들의 한국어 교육과 관련해서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포 후세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고, 한국어를 접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단 지방본부나 지부를 개방해 교포3~4세들이 민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등의 정책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덧붙여 고 이사는 교포3~4세들의 결혼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 놓았다. 교포끼리 인연을 맺지 못해 일본인과 결혼하는 교포청년들이 많은데,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교포 후세들은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단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단청년회와 더불어 교포 청년들의 결혼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단의 지부개방은 교포청년들의 만남의 공간이자 민족교육과 정체성 함양을 돕는 커뮤니티 역할을 함으로써 결혼문제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계층 간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이사는 재일동포의 귀화문제에 대해 ‘국적을 가지고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귀화자체를 ‘배신자’로 규정했던 과거의 시각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귀화자라도 교포3세인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한국식 이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포3~4세들이 정체성을 지키면서 일본문화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일본에 동화되어 사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문화 속에 민족(한국)문화를 접목시켜 나름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작업도 민족문화의 다양화와 확장 측면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문화 속에 이뤄지는 문화활동들은 한국문화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세계한인들이 민족문화를 간직하면서 거주국 문화와 접목해 나가는 문화활동들은 한국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한국문화로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披瀝)한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재일동포사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된 지 오래다. 그러나 민족(한국)문화가 일본사회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고, 정체성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이나 일본 학자가 아닌 재일교포로서,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며 민족문화활동을 전개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고 이사는 이런 관점에서 일본사회에 한국(민족)문화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특히 재일동포청년들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조사 연구하고 있다. 전통춤과 민속악기, 마당극 등을 통해 일본학교에 소개하는 일, 한국문화를 알리는 번역작업, 교포들의 주장을 전통문화를 통해 알리는 일 등이 주요활동 내용들이다.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어필과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설정을 위해서라도 정체성에 바탕을 둔 재일교포들의 한국(민족)문화 알리기와 시민들 간의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사항이 되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체감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힘든 과정에서도 역경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국과 자신의 삶의 터전인 일본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민단이나 총련 그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간자로 살아가고 있는 교포청년들. ‘코리아NGO센터’ 는 이들이 민족정체성을 확인하며 미래를 능동적으로 개척하고 일본사회에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늦깎이 연구생으로 출발했지만 ‘코리아NGO센터’ 이사로 활동하며, 연구와 환경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따뜻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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