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

▲ 김삼오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와 같은 해괴한 신조어가 생기는 등 학자와 언론인의 정관계로의 대거 변신을 비판하는 자정의 소리가 들린 지 꽤 오래다. 하지만 한번 굳어진 나쁜 정치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관행은 현 정부 아래에서도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으니 곧 출범할 새 정권에서도 되풀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던 차다.

누군가 과거 자료를 모아 조사·연구를 하면 확인되겠지만, 한국에서처럼 역대 정권의 국회의원, 대통령 수석 비서관, 행정 각료 등 고위직에 학자와 언론인이 많이 등용(?)된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거나 아주 드물다. 그런데 지난 2차로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위원회 위원 23명의 명단 가운데 16명이 전·현직 대학 교수 출신이다. 5년 전의 두 배란다.
언론인에 대하여는 아직 점치기 이르지만 이미 도마에 오른, 전 문화일보 출신인 윤창중씨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수석 대변인직 기용은 그 신호탄일 수 있다.

전문성보다 독립성이 중요

혹자 왈, 그거야 이들 학자와 언론인의 지식과 경륜이 뛰어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학자와 언론인은 뛰어나지 못하여 한 길을 걷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여기 호주만 해도 매 정권교체 때마다 그렇게 많이 ‘불려가는’ 학자와 언론인군을 거의 보지 못한다.
학자와 언론인이 정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움직여서는 안 되는 여러 이유 가운데 나는 독립성을 가장 먼저로 꼽는다.

같은 전문직 가운데서도 학자와 언론인의 역할과 책임은 다르다. 사회가 나갈 길을 밝히고 정의와 진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이들이 정계나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물론, 그 꿈을 꾸는 순간부터 그런 숭고한 역할은 사라지고 만다.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정부는 평소 여권에 비판적인 인사를 외부에서 영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업 정치인이 아닌 지식인들이 제도권에 진입하자면 그 쪽을 향하여 먼저 추파를 던져야 한다. 그것부터가 벌써 본분을 망각하고 학문과 언론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다.

이번에 발탁된 학자들(인수위직은 곧 출범할 새 정권의 고위직으로 이어지는 자리다)과 앞으로 그렇게 될 동업자들이 실세와 어떻게 줄이 닿았는지는 밖에서 쉽게 알 도리가 없다. 과거 선례를 보면 대통령후보의 멘토와 ‘가정교사’를 하다가 출세한 학자가 많았다. 이번에도 일찍부터 소문 없이 누구의 ‘장학생’이었다던가 ‘친박 교수그룹’과 같은 말이 떠돌아다녔다. 어찌 됐든 평소 꼿꼿하게 소신을 지키는 학자는 대개 불려가지 않는다.

윤 대변인의 임명이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그가 써온 칼럼과 출연한 방송에서 반 여권 인사들을 향하여 남발한 막말 때문이라는데 그는 과연 무단히 그렇게 처세했을까? 남에게 질세라 과감한 발언으로 친여 성향의 강도를 높여야 먹힐 것 같아 그러지 않았겠나 싶다. 그렇게 해서 출세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윤창중 씨뿐이 아니다. 너무도 많다.

한국의 대학교수(이론상 교수 아닌 학자가 가능하나 실제 교수 자리에 있지 않고 학자 노릇을 하기는 어렵다)와 언론인의 정계, 관계로의 대거 진출의 시발은 불행한 한국의 현대 정치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불법 또는 부당한 수단으로 정권을 장악한 정부는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먼저 지식인과 언론인을 장악해야 한다. 이들의 전문지식과 자질 말고도 그들에 대한 국민적 신임을 담보로 정권의 인기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과거 파격적인 ‘당근’의 오퍼가 주로 큰 대학과 큰 언론사 출신에게 돌아간 사실 하나만으로 입증된다.
이런 사실과 모든 분야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어렵고 권력과의 인연이 대개 이권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학자와 언론인이 관계에 나가는 일을 선진국의 사례와 단순비교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이들이 제자리에 남아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주었더라면 한국사회가 지금처럼 어지러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심적인 목소리

학자가 독립성을 잃지 않으며 현실에 기여하는 길은 많다. 학교를 떠나지 않고 정부의 비상임 전문위원회 같은 기구의 임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한가지다. 정권에 몸을 담 궈 물을 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혹자는 이 사람 왜 이렇게 까다로운가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고국과 해외, 그리고 적이 된 북한을 망라하여 지금 우리 민족에 만연된 불의, 비리, 불신, 적대감을 놓아두고 사회대통합이고 숙원의 남북통일이 가능하겠는가?

쉬운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뿌리 깊은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과 관(官)중심 사회에 당연한 정치와 관의 위력, 거기에 낌으로써 오는 실질적 이익 등이 결합, 한국에서 고위관직의 사회적 위상은 관운이라는 말이 상존하듯 학자보다 높게 평가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다가 이른바 ‘정치교수들’이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장관, 국회의원, 대사,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지내다가 학교로 돌아오면 언론이나 학생들 모두로부터 오히려 거물급 학자로 돋보이는 형국인 것이다.
그러니 양심 있는 젊은 교수들이 연구실에 처박혀 지낼 리가 없는 것이다. 정관계를 떠나는 교수들은 언제든지 원대 복귀할 수 있는 현행제도를 고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지만, 기득권이 걸려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밤 낯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는 언론사의 간부들이 관과의 유착으로 그 금과옥조를 헌신 버리듯 하는 행태도 사회풍토가 전반적으로 바뀌지 않고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