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석 / (재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상임이사

2010년 9월, 필자는 뉴저지 패라무스 시의 한 정치행사장에서 당시 버겐 카운티 서기장(클럭, County Clerk)인 캐서린 도너반(Kathleen Donovan. 현 버겐 카운티장) 씨를 만났다. 그녀는 필자에게 한인들에게 그 당시 가장 민감하게 어필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에 관해서 물었다. 필자는 대뜸 카운티 고위공직에 한인을 임명해 주는 일과, ‘일본군위안부기림비’를 카운티 법원 청사 앞에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버겐 카운티장과 기림비

그때 시민참여센터(당시는 유권자센터)는 일본군위안부기림비를 카운티의 법원 앞 ‘명예의 광장(Honor Island)’에 세울 것을 요청하는 2천명 이상의 카운티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당시 카운티장인 맥너니 씨(민주당소속)에게 종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11월 카운티장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온 캐서린 도노반 씨는 한인들의 표심을 얻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인미디어를 상대로 자신이 카운티장이 되면 기림비 건립에 노력할 것이란 말을 빼지 않고 했다. 캐서린 도노반 씨는 민주당의 맥너니 카운티장을 6%차로 따돌리고 버겐 카운티장에 당선되었다. 버겐 카운티 3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자카운티장이 되었다.
2011년 1월, 취임식장에서 필자는 그녀에게 한인들과의 약속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는가? 물으면서,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인권문제라고 강조하고 팰리세이즈파크시의 기림비에 이어서 카운티 법원 앞에 그것을 세우도록 도와 줄 것을 아주 간곡하게 요청했다. 필자는 카운티 법원 앞에 흑인노예제도 기림비, 홀로코스트 기림비, 아르메니안 대학살 기림비, 아이리시 대기근 기림비 등 이미 4개의 인권침해 사례 기림비가 있음을 강조하며, 위안부기림비 문제는 지구상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될 전 세계 여성 인권유린 문제임을 강조했다. [*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은 취임 직후 한인변호사인 김재연 씨를 카운티 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한국가면 ‘나눔의 집’ 방문을

지난 10월초,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은 충남 당신시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필자는 카운티 법원 앞의 기림비 건립을 위해서는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2007년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필자는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의 직접증언엔 어느 의원도 결의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경험했었다. 한국방문을 앞둔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에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줄 것을 졸랐다.
한국을 방문하는 카운티장 일행의 ‘나눔의 집’ 방문은 일정상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의 요청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나눔의 집과 한국의 주요언론에 미리 이 사실을 알려서 단단히 준비를 시켰다. 2001년부터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과 함께 일해 온 필자는 그녀의 정의감과 동정심이 아주 각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녀가 기림비 건립을 결심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지난 10월11일, 한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의 나눔의 집 방문 기사와 함께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일제히 보도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법원 청사 앞에서 한국 언론을 포함한 지역 언론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를 넘기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기림비를 세우겠다”고 공표했다. 한편 버겐 카운티 의회에서는 기림비를 법원 앞에 세울 것을 이미 결의하고 카운티장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기자회견에서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은 비문에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말을 쓰지 않고 ‘성노예(sex slavery)'라고 지칭하겠다고 밝혔다.

법원 앞에 설 ‘성노예기림비’

▲ 지난 13일 버겐 카운티 법원 앞에서 버겐 카운티 캐서린 도노반 카운티장과 버겐 카운티 의회 관계자들이 위안부기림비 건립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욕일보

이제 곧 버겐 카운티 법원청사 앞 ‘명예의 광장’에 버겐 카운티 내에 두 번째의 위안부기림비가 선다. 첫 기림비인 팰팍 도서관 앞의 기림비는 시민사회의 요청에 의해서 팰팍 의회가 결정하여 시민사회가 주도해서 건립한 것이고, 두 번째인 카운티 법원 앞의 기림비는 지방정부가 주도,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인 인권침해 사례임을 전 세계에 공표하는 각별한 의미의 기림비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서구사회에 알리는 최초의 기림비가 팰팍 기림비라면, 카운티 법원 앞의 기림비는 일본군위안부문제가 홀로코스트, 흑인노예, 아르메니안 대학살, 아이리시 대기근학살과 같은 역사 속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인권침해 사례임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기림비다.
그리고 팰팍의 기림비나 법원 앞의 기림비나 미국 내 한인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을 높게 과시하는 증표임이 확실하다. 뉴욕도시권 내의 한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필자는 2007년 미연방 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으로 실천해내지 않으면 결의안이란 것이 종이쪽지에 불과함을 알았다. 일본(의 역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함에 늘 당황했던 참에 홀로코스트에서 힌트를 얻었다. 연방의회 결의안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한 것이라면 홀로코스트 같은 기념사업은 미국인들을 옳게 의식화 시키는 일이다.
주변국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준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역사적인 사실로 미국 시민사회에 알리지 않고서는 독도, 동해병기 문제도 해결방도가 없다. 위안부문제는 인권 이슈, 독도와 동해병기는 역사의 진실문제로 파고들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번 카운티 법원 앞의 기림비 건립은 역사발전의 큰 획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한인들은 뒤에서 일하자

지난 일 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위안부기림비가 한인사회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기림비가 연일 신문에 나고 TV화면에 자주 비쳐지니 너도나도 관심이 기림비에 쏠렸다. 처음 기림비를 세우자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참여를 호소할 때가 불과 2년 전이다. 당시 많은 이들은 참여를 꺼려하거나 거절했었다. 기림비는 여름 한철 교육받은 시민참여센터 인턴들인 한인고등학생들의 역사의식의 구현 작품이다.
그 학생들은 위안부 기림비가 결국엔 일본을 위하는 일이고 미국시민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논리로 이해하고 있다. 정확한 입장이다. 이에 비해서 이런저런 한인들은 미디어에 관심을 두면서, 생각 없이 감정적 대일본 이슈로만 이해를 한다. 어떤 이는 여기에 한국을 끌어 들여서 기림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기림비의 건립은 기림비 자체보다는 그 건립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미국 이웃들에게 위안부문제를 이해시키고 설득 교육시키는 일이어야 한다. 그야말로 함께 가야하는 교육의 문제이다. 위안부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다툼(분쟁)거리로 만들어 가면 그것은 문제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위안부문제는 한인들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미국의 일반 시민사회가, 미국정부가 앞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절대로 한국정부가 들어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야 일본정부나 일본 정치인이 위안부기림비를 문제 삼아도 끄떡없이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일본이 팰팍의 기림비 철거를 요청해왔을 때, 한인들이 아니고 팰팍의 시장이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일본정치인들을 꾸짖어 내 보낸 예가 모범이다.
버겐 카운티 법원 앞에 세워지는 일본군위안부기림비는 역사발전의 쾌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