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석 / (재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상임이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차량 한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비행기가 나타나 자동차의 뒤를 따랐다. 3분 정도 자동차를 따라가던 비행기에서 미사일이 발사 되었다. 미사일은 순식간에 자동차에 명중했고, 자동차는 폭파됐다. 이스라엘 공군이 소유한 최첨단 무인공격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얼굴 없는’ 최고 사령관 아흐마드 알 자바리가 탄 자동차를 폭파시킨 것이다. 이제 아흐마드 알 자바리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팔레스타인들의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표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은밀한 추적 그리고 (초정밀 근접 타격의)최첨단 무기인 무인 공격기의 빈틈없는 결합의 성과다. 이스라엘은 제거대상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게 지구상에 숨을 곳이 없음을 무시무시하게 경고했다.

이스라엘이 강한 이유

이스라엘은 국가를 건국한 직후인 1949년에 국가정보기관을 창설했다. 그 후 수많은 작전을 성공시킨 것은 첨단무기는 물론 공격대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던 정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은 규모는 작지만 첨단기슬과 인적 기반을 토대로 한 정보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평 나 있다. 이번 하마스 군 최고사령관을 한 발의 미사일로 정학하게 암살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스라엘이 보유한 정보기관의 능력을 잘 설명해 주는 예다.

이스라엘에는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신베트’를 비롯하여 해외 정보 담당의 ‘모사드’ 그리고 군 정보기관인 ‘아만’ 등 3개의 정보기관이 있다. 이 3개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은근하게 결합되어 작동된다. 입수된 어떤 첩보라도 이 3개 정보기관이 정보 분석을 공유하게 되면 그 정확도가 99%를 자신한다.
이 3개의 기관들은 팔레스타인 등 세계 각국에 각각의 정보원들을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유태인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해외담당인 모사드의 정보수집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정보기관도 모사드를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적국의 사람들을 포섭해서 정보원으로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능력이다.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스파이 교환 때엔 그래서 늘 모사드가 역할을 한다.

모사드의 정예요원은 1천여 명 남짓하지만 해외 비공식 정보원은 4만 명에 이른다. 모사드 요원 한 명당 평균 40명의 정보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소름끼치는 사실은 이들 휘하의 정보원들 중엔 각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란 것이다. 1965년 시리아 국방장관으로 물망에 오르던 엘리야후 코헨이 국장장관으로 임명 직전에 모사드의 정보원임이 밝혀져 처형당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에 모사드는 그러한 고위직 정보원이 수도 없이 많음을 오히려 자랑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2009년 가자지구 공격 당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도자의 은신처와 무기저장고를 정확하게 공습할 수 있었던 것도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체제에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의 군 고위급을 정보원으로 포섭한 덕분이었다. 당시 하마스는 자국민 중 이스라엘 정보원이 된 이들에 대한 대대적 색출 작업에 나서 무려 200여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모사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인 아만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찰떡궁합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정보 공유력이 뛰어나다. 외국의 컴퓨터 내부 정보를 파악하는 ‘플레임 바이러스’를 바로 이 아만이 개발했다.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서는 그것이 가장 효자라는 소문이다. 아만의 정보 덕분에 정밀한 표적 공격을 감행한다. 지난 1996년 폭탄제조 전문가 야하 아야시, 2010년 지도자 마흐무드 알 바부 등 수십 명의 고위직이 암살되었는데 모두가 아만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 3~4년 동안 십 수 명의 이란 핵과학자의 사망사건의 배후가 아만이라는 것은 증거 없는 사실이란 것이 중론이다.

CIA의 영욕과 부침(浮沈)

냉전시기 동안 CIA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반공이라는 단일한 목적은 클린턴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던 1990년대에 무너졌다. 정보수집 및 분석분야의 요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예산감축으로 인하여 수적으로 너무 열악했다. 해외 업에 복무하는 유능한 요원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들의 숫자도 역시 너무도 적었다. 앞으로 닥쳐 올 전투를 가늠해 보기는커녕 발생하지도 않을 사건을 상상이나 하면서 펜타곤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제2의 진주만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9·11사태 이후 알케아다 지도자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소규모 비밀 공작부대를 아프카니스탄에 파견했다. 그리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백악관에 제공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비밀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당시 CIA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정보를 뻥튀기해서 트럭 한 대 분량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의 아버지 대통령이 한때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CIA를 소규모 해외경찰력으로 규정해서 본부가 마비상태로 정지된 관료조직으로 바꾸어 버렸다. CIA는 2005년에 종말을 맞았다. CIA국장 체제가 없어졌고 국가정보국장의 지휘를 받게 했다(조지 부시 대통령은 9·11사태 이후에 ‘정보 개혁 및 테러 방지법’에 따라서 미국의 모든 정보관련 업무를 국가정보국장(DNI)이 총지휘를 하도록 했다).

2009년 1월 백악관에 들어간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문제만큼이나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안보문제가 심각함을 모르지 않았다. 2001년 9월11일 뉴욕, 워싱턴 그리고 펜실베니아에서 3천여 명의 미국인이 희생되었고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3천명 이상이 더 희생 되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도록 한 범죄적인 사실은 미국 정보기관(CIA)이 무능해져 가는 것을 지도자가 그대로 방치해 왔다는 것이다.

60여년 이상 세계 최강국의 파수대 역할을 해 온 (갖가지 첩보 경험을 쌓아온) 수천의 인력과 그들의 애국적인 의지까지도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을 안타깝게 고민한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CIA에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국)안보의 허점이 고급정보의 취합(수집과 분석)에서의 열세가 아니고 정보 누수가 심각하다는 것을 오바마는 간파했다.
그는 리온 파네타를 CIA국장에 임명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라!”란 비밀명령을 전했다. 작전 사항은 대통령에게만 보고하라고 제한했다. 2011년 5월 CIA가 작전을 성공시켰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CIA가 주요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리온 파네타 국장을 국방장관에, 중동지역(작전)에 가장 능통한 장군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스를 CIA국장에 임명했다. CIA와 펜타곤의 결합과 독립을 동시에 이루는 일이라 생각했다. 전 세계의 언론이 ‘다시 살아나는 CIA’를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모사드의 절반만 했으면 좋겠다는 미군 장성들의 푸념이 현실로 시작 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퍼트레이스의 몰락과 그 뒤

필자가 워싱턴을 처음 경험하기 시작할 때인 2007년 9월(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하원에서 상정·통과시킬 때), 전 세계의 시선이 미 연방하원 외교-군사관계위원회에 쏠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증)파병이 과연 효과를 냈는지에 관한 청문회장가 열렸다. 이듬해(2008년)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선 대통령의 이라크 증파가 실패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의 청문회였다.

이라크 사령관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스 장군이 청문회장에 나타났다. 필자도 청문회장에 방청했다. 전장의 장군을 대하는 미국민(미디어와 의원들)의 존경심에 정말로 큰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퍼트레이스 장군은 미군 역사상 가장 탁월한 전략가로 고상한 인품으로 지·덕을 겸비한 장군으로 알려졌다. 하원 외교관계위원장인 톰 랜토스 의원은(민주당) 부인과 함께 군중 속을 헤쳐 나와 퍼트레이스 장군을 향해 “이렇게 만나게 되어 크게 기쁩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청문회가 시작되고 하원의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질문시간에 퍼트레이스 장군을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최고의’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능력’ ‘고결’ ‘지혜’ ‘존경’ 등 언어의 월계관을 그에게 씌우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짐 색스톤 의원(공화당)은 두 번씩이나 “당신의 수고, 헌신에 고맙다”고 말했고 빅 스나이더 의원(민주당)은 “당신은 우리 최고의 팀이다”고 칭송했다. 필자는 이때에 ‘데이비드 퍼트레이스’장군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CIA가 대테러 전쟁의 후방사령부냐, 전통의 기밀수집 정보부냐, 미 중앙정보국(CIA)의 역할이 다시 기로에 섰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스 국장이 불륜 스캔들로 낙마한 게 계기가 되었다. 퍼트레이스는 국민의 사령관이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존경과 신뢰를 받던 군 출신이다. 군에서 그렇게 치솟던 그의 명망이, CIA에서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부침이 마치 CIA의 부침을 상징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스라엘에서 보듯 능력 있고 효율적인 정보기관은 참으로 중요하다. 미국에겐 더욱 그렇다. ‘음지’가 될까, ‘양지’가 될까? 다시 기로에 선 CIA의 앞날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