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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한인회총연합회 박세익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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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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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익 중남미한인회총연회 회장
지난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 행사가 있던 날,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교포들의 자축모임에 참석한 박세익 중남미한인회총연합회(중남미총연)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만나자마자 “칠레한인회장 시절 해외교포문제연구소와의 깊은 인연을 맺었기에, 8월 2일 중남미총연 서울사무소 개소식에 당연히 참석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며 개소식에 참석하지 못한 위 연구소 측에 못내 서운함을 나타냈다. 정이 깊은 사람이었을까?..... 서운한 말에 담긴 그의 눈빛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개소식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 후 필자는 박 회장과 따로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다.
며칠 후 이른 저녁, 서울 강동구 길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박 회장은 인근 먹자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한 식당을 찾아 ‘저녁과 함께 딱 한잔만 하자’며 대화를 이어갔다. 술기운이었는지 박 회장과의 대화는 자정이 다 돼서야 끝이 났다. 또 다른 아쉬움을 남긴 채.

태권도로 정부초청 받아 간 중남미를 정착지 삼아

올해로 이민 36년째를 맞이한 박세익 중남미총연 회장. 그의 이민 길은 태권도로부터 시작됐다. 1976년 중남미로 떠나기 전까지 박 회장은 한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2개나 운영하던 관장이었다. 이민 붐이 불고 있던 시절, 한국인의 해외 이민은 생각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당시 이민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없던 상황에서 비행기 값 마련할 정도의 여유가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민대열에 합류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박 회장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파라과이 정부초청 태권도 파견자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박 회장은 파라과이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1년간을 봉사했다. 군 시절 해병대에서 태권도 교관을 지낸 덕분에 파라과이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은 어렵사리 마칠 수 있었으나, 기후가 너무 덥고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 다른 나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은 1974년 칠레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대통령이 한국식 정치형태와 경제발전을 접목하려던 것을 지켜보면서 1978년 칠레로 이주를 했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모델로 삼은 칠레 피노체트 대통령이 무역에 대한 관심을 보이자 박 회장은 운동을 그만두고 무역에 손을 댔다.

“당시 칠레의 환율이 1달러에 39페소(peso) 일 때, 한국이 1달러에 500원 정도였으니 한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기 좋은 여건이었지요. 한동안은 교포들과 무역상들이 거의 한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했는데, 지금은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에 밀려 예전 같지 않습니다.”

   
▲ 한국외환은행 칠레 산티아고사무소 개설식에 참가한 박세익 회장

박 회장은 ‘칠레만 해도 400여개의 한인 가게가 있고, 이들이 한해 4~5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상품을 들여오는데, 중남미 전체로 보면 수입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며, 한국 상품이 취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박 회장은 “한국 상품도 잘 찾아보면,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에 비해 품질과 디자인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홍보만 잘된다면 중남미의 큰 시장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인사회 단합과 교포2세 정체성 함양을 위한 한인회 활동

박 회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두 차례 칠레한인회장을 역임했다. 1978년 창립한 칠레한인회는 올해로 34주년을 맞이했다. 78년 칠레에 정착한 박 회장은 칠레한인회와 괘를 함께한 셈이다. 박 회장이 한인회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1981년부터이다. 사업 때문에 한동안 한인회 봉사를 못한 적도 있었지만,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부터는 줄곧 한인회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박 회장의 칠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칠레에는 약 2500여명의 한인들이 있고, 수도 산타아고에 90%가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칠레교포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단합이 잘되고 협조적이라고 박 회장은 자랑했다. 박 회장이 2번에 걸쳐 칠레한인회장을 역임하며 중점을 두었던 부분도 칠레한인사회의 단합과 교포2세에 대한 정체성 함양에 대한 것이었다.

   
▲ 민주평통 14기 남미서부협의회 출범회의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칠레지만, 칠레 한인2세들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다. 그만큼 부모세대의 한글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한글학교 운영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부모-자녀 간의 많은 대화가 2세들의 한국어 실력을 높여준 결과라고 할 수 있지요.”

박 회장은 칠레 한인1세(부모)들은 자녀를 의무적으로 토요 한글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칠레한인회 초창기 때부터 운영해 온 한글학교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인1세들은 자녀들을 한국에 유학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인들은 칠레에서 교육율도 높고, 타민족보다도 공부도 잘합니다. 교포2세들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 등 3~4개국 언어는 기본으로 할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는 박 회장의 얼굴에서 칠레한인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교포2세들 중에는 변호사와 의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약혼한 부인과 같이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 결혼 후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째아이는 파라과이에서 낳아서 파라과이 국적을 가지고 있고, 둘째는 칠레에서 태어나 칠레 국적자며, 셋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박 회장 부부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한 가정에 4개 국적을 가진 보기드믄 가족이 된 셈이다.

박 회장은 현재 칠레에서 제지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지공장을 운영하면서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동업을 하다 사업체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차분히 정리하게 되면서 사업체를 다시 되찾아 정상화시켰다고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뢰, 지나친 욕망과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그의 신념이기도 했다.

중남미시장 그리고 세계한상대회

칠레는 남북이 4300km에 이르는 세상에서 세로로 가장 긴 나라이다. 해안선 길이만도 6,400km가 넘는다. 위도의 길이가 길어 4계절이 다 있다. 남쪽은 산이 많고 수림을 형성하고 있어서 목재수출도 많이 하는 나라다. 수산업과 광업이 발달해 있다. 한국과는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은 주로 공산품을, 칠레는 주로 농수산물을 수출한다.

   
▲ 칠레-고양시 화훼수출 MOU체결
박 회장은 칠레가 알려진 것보다는 꽤 잘 사는 나라라고 했다. 칠레나 중남미국가의 경제력 규모에 비하면 우리 국민의 관심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칠레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며 한국식 모델을 그대로 접목한 결과인지 칠레는 한국과 많이 닮아있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칠레를 비롯해 중남미국가에서 한국의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대한 시장점유율은 상당합니다. 경제부분에서는 한국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 한국인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못살고 먼 나라며, 사회가 불안하다는 막연한 인식들을 가지고 있는데, 실상은 한국 건설업과 철강업, 화력발전 분야에 한국기업들이 참여해 중남미시장을 활발히 개척하고 있는 곳이죠.”

박 회장은 몇몇 한국기업들이 중남미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진출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터라 한국정부나 현지 공관에서 좀 더 많은 기업들이 중남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과 홍보가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박 회장은 중남미지역은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인이 정착하기에도 쉽고, 그동안 이민 온 교포들이 기반을 잘 닦아 놓아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고 했다. 그는 중남미국가들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견을 경계했다. 실상은 북미지역보다 안전하고, 원주민들로 순수하고 소박해 한국인이 정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며 중남미에 대한 자랑을 이어갔다. 이미 기반이 갖춰진 유럽이나 북미보다는 개발여건이 풍부하고 진출기회가 많은 중남미지역이 훨씬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에게 중남미한상기업들의 세계한상대회 참가에 대한 상황을 물어봤다.

“중남미지역 한상들은 아직 규모가 작고 값싼 중국제품을 수입하는 입장인데, 한상대회에서 중남미지역에 맞는 물품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한국제품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아직은 한상네트워크를 통해 적합한 업체를 찾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면 입맛대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반면, 한국에 오면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토로하는 박 회장의 말에서 세계한상대회의 현주소와 과제를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한글학교 교재라도 제대로 만들어 보급해 달라”

‘중남미지역한인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회장은 주저 없이 말한다.
“교포2세들에 대한 교육문제죠.”

박 회장은 교포2세들의 교육문제로 한국어 교재와 교사들의 부족을 들었다. 한국에서 보내오는 교재들이 현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보급되는 교재도 부족해 교포2세들에게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대사관 등을 통해 요구를 하고 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교환학생 또는 한국유학생 등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필요한 교사를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말로는 ‘해외동포가 민족자산’이라고 하는데, 현지에 필요한 이런 문제 하나라도 해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박 회장은 이민 간 동포들에게 필요한 것은 본국에 대한 참정권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포 후세들에 대한 한글학교 지원과 정체성함양 교육이라고 했다. 참정권으로 생색만 내지 말고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라는 것이었다.
박 회장은 한국의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한국은 해외진출 통해 국력을 신장시킨 나라이기도 한데, 국가 장래와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남미지역은 한국인들이 정착하기 쉽고 개척할 시장이 많은 곳이니만큼 한국의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중남미국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현재 중남미지역에 한인회관과 한글학교 건립하는 것을 당면과제로 놓고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 한국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고, 한국정치권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중남미지역에 삼성과 LG,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합니다. 시장 점유율로 높고요. 그만큼 중남미지역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방증이죠. 기업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현지 한글학교라도 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포2세들의 결혼문제 심각

중남미한인 1.5-2세들은 현재 결혼적령기로 들어있다. 박 회장은 이들의 결혼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남미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지교포들끼리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지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해도 문화적 차이로 이혼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한국여성이 현지인과 결혼하면 잘 사는 것 같은데, 한국남성이 현지 여성과 결혼하면 이상하게도 깨지는 수가 많습니다.”

   
▲ 지난 8월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개설한 중남미총연 서울사무소
박 회장은 교포자녀들의 결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남미국가 내 한인네트워크를 구축해 중매에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남미 여러 나라에 있는 젊은 한인들에게 교제와 나눔을 주선해 결혼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고육책인 셈이다.
박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의 중남미진출에 대한 바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교포2세들의 결혼문제뿐만 아니라 기회가 많은 중남미국가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남미국가로의 이민을 계획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박 회장은 한국의 로펌들과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또 중남미지역 도시들과 한국의 지자체들과의 자매결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남미한인회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세계 어느 지역 못지않게 한인들의 단합과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는 박세익 회장. 한인2세들을 위한 그의 행보와 한인사회 지경을 넓히고자 하는 그의 발걸음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과 중남미국가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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