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2.1 화 22:15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교포지논단
한국에는 해외동포를 알려는 정치인이 없다
호주 한국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10.3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


한 때 한국인에게 미국은 큰 집과 같았다. 거기를 다녀와야 세인의 눈길을 끌고 말발이 섰다. 지금 해외 한인들의 큰집은 아마도 미국이나 거주국이 아니라 한국이 아닌가 싶다. 매년 적어도 한국을 한두 번 드나들고, 한동안 안보이다가 ‘한국 다녀왔어요.’하고 나타나야 잘 나가는 교포다. 그게 뭐가 나쁠까? 말 그대로 ‘어머니 나라’고 대부분 거기에 부모형제가 아직 살고 있거나 뼈가 묻힌 곳이다. 여기서 나서 자란 2,3세들에게는 거기가 뿌리다.

근년 고국 나들이를 부쩍 더 자랑으로 여긴다면 아무래도 그간 이룩한 경제발전으로 큰 집이 잘 살게 됐기 때문이리라. 당연히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도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한국인은 같은 민족이라지만 집단 간 뭔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갈라 생각하고 따로 논다. 일체감이 희박한 것이다. 잘 살게 된 큰 집이 작은 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늘어나고 있다면 이 또한 그런 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 이씨, 박 씨 지붕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핏줄로 봐 한국인은 대단히 동질적(homogeneous)인 민족이다. 실제 통계에서 나타나는 대로 위 세 성씨가 인구의 거의 반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라 정서적으로는 대단히 이질적(heterogeneous)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 우파와 좌파, 연줄 있는 자와 없는 자, 중심에 사는 자와 변방에 사는 자 간 화합보다 불화, 단결보다 분열이 더 하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대통합이 큰 정치적 이슈로 대두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닌가?

이 가운데 고국과 멀리 떨어진 해외 한인사회 간 관계의 특징은 크게 중심과 변방 간의 그것으로 봐야 한다. 거기에 존재하는 일방적, 불평등, 수직관계는 여러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한 가지는 일반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커뮤니케이션학 개념 인 ‘정보와 영향력의 일방적 흐름(one way flow of information and influence)’을 통해 볼 수 있다.

“교민 인구가 몇이나 됩니까?”

첫째로 양 지역 간 한국어 매체의 분포와 이용 패턴이다. 호주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 한국인 교수가 흔히 전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오는 정치인, 관료, 단체장과 만나게 되는 간담회에 나가보면 언제 들어도 똑 같은 질문이 있단다. ‘교민 인구가 몇이나 됩니까?’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모두 개인 여행이 아니고 공금을 쓰며 이런 저런 공무를 띠고 오는 것이므로 사전에 이 사회의 실상에 대하여 읽어 알고 와야 할 텐데 그런 자료가 여기나 한국에 없다.

흔히 회자되는 대로 해외 한인사회는 고국의 큰 잠재적 자산이다. 그렇다면 재외동포정책 담당 실무자는 물론, 그와 관련이 있는 정치인은 그 사회(더 좁게는 미국 한인사회, 호주 한인사회, 캐나다 한인사회 등)를 잘 알고 있어야 양 지역 간 건전한 관계 정립과 발전 방안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를 못하다.
그런 기사를 쓰거나 책을 내려고 해도 한국에서 그것을 내 줄 주류 매체와 출판사가 없다. 해외 한인사회에 교포매체가 있지만, 내용도 문제이고 이게 고국에 가 닿지 않는다. 반대로 영미지역 한인들은 양질 불량을 막론하고 고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간행물과 방송을 읽고 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당연히 그 한국의 지식과 뉴스와 정서와 목소리는 이쪽으로 충분히 전달되나 그 한국을 향해야 할 이쪽의 것은 전혀 아니다. 교민들이 모이면 현지 사회보다 한국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앞에서 말한 ‘정보와 영향력의 일방적 흐름’의 구조다.

둘째로 여기를 찾아오거나 여기 교포가 고국에 가 만나게 되는 공직자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해외 한인사회를 깊이 알려고 하는 성의가 없다. 그러니 만나면 잘해야 덕담 정도가 대화의 전부다. 재외동포분야 책임을 직접 맡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진지하게 알려고 애 쓰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다. 모두 해외 한인사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증거다. 위에서 언급한 해외 한인사회에 대한 자료의 부재는 물론 이런 관심 부재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알 필요가 있나?”

김대중 정권 말기다. 시드니에서 고국의 국회 교육분과위원 일행과의 간담회 자리였다. 내가 고국에 대한 건의를 곁들인 몇 가지 발언을 했다. 그에 대한 답변을 대표로 L의원(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이 했는데 요지는 “대한민국은 잘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였던 것 같다.

셋째로 나는 평소 고국 정부나 단체에 대한 한인사회의 의사표시를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작성, 공식화할 것을 제안해왔는데 그렇게 해도 회답을 받을 확률은 낮다. 몇 년 전 연구소를 하던 시절이다. 서울에서 청와대의 한 중간 직위의 비서관과 만난 자리에서 한인사회가 대통령에게 재외동포정책 관련 건의서를 만들어 올린다면 보게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비서관 대답이 대통령이 그런 문서를 직접 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담당 수석비서관과는 잘 아는 사이니 보내면 한번 전달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이게 해외 한인사회에 대한 청와대나 정부의 분위기다.
다시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으리라 했던 게 최근 실수를 한 것 같다. 지난 8월 17일 저녁 시드니한인회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세계한인민주회의 수석부의장 자격으로 호주를 방문한 국회의원 K씨 일행과의 모임이었다. 공식 인사 차례에서 의원은 민주계 출신의 고 김대중 대통령의 치적으로서 재외동포법을 제정, 거소신고증을 받은 해외 교민은 국내에서 내국인과 거의 같게 거주, 활동할 수 있게 한 현 제도에 대하여 주로 설명했다.

65세 이상 시민권자에게 복수국적

한국 내 교포의 지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요즘 내 개인으로서는 이건 정말 큰 사건이라고 본 사항을 거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질문 시간은 따로 없어 개인적으로 말을 걸었다.
그 사항이 뭔가를 말해야 다음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겠다. 한국 정부는 국적법을 개정(작년 1월 1일 발효) 65세 이상의 외국 시민권 소지 한인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하여 한국 국적을 갖게 하였다. 해당되는 호주의 많은 한인들이 한국에 가서 절차를 밟아 말소된 주민등록을 회복, 주민등록증을 받아 돌아왔으므로 이미 뉴스가 아니다. 평소 복수국적제도를 찬성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 조치를 환영한다.
문제는 한 때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이 된 동포에게는 주민증록증을 발급하는 등 한국 국민과 똑 같은 자격을 주고 자국민으로 남은 해외거주자(영주권자)는 한국에 가서 거주하겠다면 2-3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대다수가 잘 모르는 거소신고증을 받아 지내야 하는데 이는 역차별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런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날 밤은 어수선한 분위기라 길게 이야기는 못하고 추후 메일로 자세히 써 보내겠다고 말했고 그도 그러자고 했다. 내용을 준비한 다음 8월 22일자로 정중하게 쓴 A4용지 3장 분량의 이메일을 그에게, 복사본을 그를 수행한 다른 두 의원에게 참고 자료로 발송했다. 그 후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회답이 없어 일차 전화 연락을 했으나 의원은 부재중이고 보좌관이 잘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 후에도 영영 회답이 안 오고 말았다.
나는 메일에서 이 문제를 처리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해외한인의 지위와 무관하지 않은 직책을 가진 국회의원이니 1차 그의 의견과 반응을 듣고 난 다음 관계 부처와 언론사 편집국 등에 보낼 것이라고 썼다. 보좌관을 시켜 짧은 형식적 회답이라도 해주는 게 예의일 텐데 전혀 아니다.
내가 동포사회를 대표한다는 한인회장이나 다른 기관장이었으면 달랐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해외한인민주화하고는 거리가 먼 관료주의의 사례가 아닌가.

이 일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나와 같은 지위에 있는 동포들의 법적 지위에 관한 건이다. 나의 법률 지식으로 볼 때 자국민에 대한 이런 차별대우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그에 대하여 더 자세히 써보겠고 나가서는 다음 단계로 옮겨볼 생각이다.
K의원의 경우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양 지역 간 존재하는 일방적, 불평등 관계에 오래 익숙해져 온 고국의 공직자들의, 그 사회의 구성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금년부터 시행되는 재외동포 투표권 행사로 이런 관계가 많이 개선되리라는 전망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총선의 경우 영주권자 재외국민들은 지역구를 중심으로 투표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투표전이나 후에 우리의 의사를 대변해달라고 요구하고 또 그에 귀를 기울일 특정 선량은 없다.

저조한 재외선거 등록률

대선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아직까지 세 대선후보 가운데 재외동포정책에 대하여 단 한마디라도 언급한 사람이 없고 그들을 향하여 한인사회들의 합의 하에 보낼 정책 문서 하나가 없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던 그 정책은 중간층 실무자 선에서 기존의 틀 안에서 기존대로 운영될 게 틀림없다.
선거는 매 4-5년의 간격을 두고 실시되고 실제를 보면 일단 뽑힌 사람은 뒤에 무슨 짓을 해도 유권자가 어떻게 못하는 한국 제도에서 선거에 대한 국민의 냉담(political apathy)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 5월 16일자 한겨레신문이 ‘투표해서 뭐해? 없는 사람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제목의 특집 보도(이정국, 전환기 기자)에서 인용한 농민들의 한탄 섞인 말이 인상적이다. “투표한지 오래 됐수다” “김대중 씨를 지지하긴 했는데, 다 헛일이라고. 김대중 씨에게 속았다.” “앞으로 누가 돼도 똑 같다.” “뽑아 주면 뭐해요. 공약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도움이 안 돼.” 이런 심정은 멀리 떨어진 해외 한인들의 경우 더 그럴 것이다. 이번의 낮은 해외 투표자 등록률에 대한 이유로서 등록 때 겪는 불편 등 여러 가지가 지적되지만 나 개인의 경우만 해도 겉치레뿐 무성의한 많은 고국의 정치인들 보면서 투표로 고국 정치에 참여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낮은 등록률을 탓하며 예산만 들어붓기 전에 이런 구조적 문제와 해외 한인들의 심리에 대하여도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해외 한인사회는 고국의 통치권 밖에 있다. 그러므로 양자 간의 관계를 일 방향, 불평등, 수직, 심지어는 종속 운운한다면 어폐가 있으며, 실제 고국 정부가 강제성을 띤 주문을 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서두에서 지적한 큰집에 대한 정서, 재정이 취약한 한인사회를 향하여 추진되는 강력한 재외동포정책, 거기에서 오는 이런 저런 금전적 지원과 혜택, 외국에서 살면서 상대적으로 격하된 한인들의 역할, 지적 구심점의 부재, 한인사회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상황 등이 겹쳐 그런 관계로 전락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외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한 제1차 창구인 재외동포재단을 위시하여 고국의 여러 부처가 재외동포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예산을 쓰고 있다. 모두 민족공동체란 틀 안에서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이게 과연 현지 사회의 우선적 필요에 맞게 집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지 커뮤니티의 장래를 어느 쪽으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하여 클라이언트 쪽인 해외 한인사회로부터 일언반구가 없는 것은 지적 구심점 부재와 일 방향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좋은 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