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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우호 기원 ‘한일축제 한마당 2012 in Tokyo’ -(1)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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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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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 '한일축제한마당 2012 in Tokyo' 안내 책자

예년보다도 더 뜨거웠던 한일관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다가서기 위해 개천절을 앞두고, 도쿄에서는 서로가 '비상(飛翔)'하는 한일관계로 거듭나자는 선언과 더불어 「한일 축제 한마당 2012 in Tokyo」의 전야제가 9월28일 금요일 저녁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행해졌다.

일본군성노예(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역사인식 문제 등 그동안 양국 정부들이 피해왔던 한일관계의 과거사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양국관계는 엉킨 실타래처럼 꼬였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가 현실을 직시하며 대화와 교류를 통한 신뢰구축과 다가서기를 위한 시민의 만남의 장을 열어야 하건만 양국 정치가들이나 언론은 각국의 대선이나 총선을 의식하여 국민감정만 자극하며 여론 몰이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한일 축제 한마당 2012 in Tokyo」는 조금이라도 서로 만남의 터를 마련하려는 소중한 장이 되었다.

신각수 주일 대사의 리셉션 초청장과 「한일 축제 한마당 2012」의 초청장이 왔기에 필자는 리셉션이 열리는 9월 28일 아침에 집을 나섰다.
모처럼의 외출을 핑계 삼아 볼 일을 한꺼번에 보려는 의도로 일찌감치 길을 나서, 지난 8월 뜨거운 땡볕에 도쿄 시내의 아오야마 영원(青山霊園, 넓은 공원묘지라고 생각하면 된다)과 죠우시가야 영원(雑司ヶ谷霊園)을 다니다가 과로로 앓는 바람에 아오야마 영원에서 확인하지 못한 묘비를 확인하고, 아자부의 총영사관에 들러 아오야마 영원과 역도산이 잠들어 있는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를 다녀왔다.
아자부의 총영사관 입구 쪽에는 외국공관의 보호 차원인지 일본의 경찰 기동대 버스가 앞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별다른 우익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영사관에는 올 봄의 총선보다는 대선의 재외선거인 등록(신고) 신청에 대한 다양한 포스터가 붙어져 있었다. 필자도 재외선거 신고서를 받은 뒤,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아오야마 영원 ([靑山 霊園])으로 갔다.

아오야마 영원에서 만난 동포의 비극과 일본 근대사의 인물들

필자는 역사학에 흥미를 가지면서부터 사람들의 발자취가 깃들여져 있는 곳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무덤을 찾는 습성을 갖게 되었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세계 각지의 공원묘지나 성당, 사찰, 피라미드 등을 다니며 수많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살다 간 흔적에 젖는 것이 이젠 습관이 되었다. 게다가 아오야마 영원에는 한국과는 엇갈린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근대 제국주의 일본에서 화려히 살다 간 인물들이 많기에 묘비에 새겨진 유족이나 관계자의 글을 읽으면 착잡하고도 허망하기조차 한 삶을 생각하기도 한다.
공수래공수거…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누렸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사회가 과연 그들의 이상이었을까? 100년이 넘도록 역사청산도 제대로 못하는 외교의 걸림돌을 만든 게 원대한 그들의 꿈이었던가?
지금은 무덤 앞에 꽃 한 송이조차 놓아주는 사람이 없건만 이 공원묘지의 한 구역에 묻히려고 그토록 타민족을 지배하고 숱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던가?

   
▲ 아오야마 영원 외국인 묘지 안내판

물론 필자의 억지 같은 회의적인 발상도 하면서 이번엔 정문 쪽이 아닌 일본학술회의 쪽 뒷문으로 아오야마 영원으로 들어갔다.
도쿄 시내에 자리 잡은 아오야마 영원은 1874년에 공동묘지로 되었다가 1926년에 일본 최초의 공영묘지가 된 곳으로 현재는 도쿄도가 관리를 하는데, 26만 평방미터의 넓은 토지에는 일본의 주요 인물들은 물론,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수많은 일본 정치가들이 묻혀 있고, 외국인 묘지도 설치되어 있다.
그 속에는 험난한 시대에 비상한 머리로 태어나 시대를 개척하려고 한말의 개화파가 되었다가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민 씨 정권에 의해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뒤,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된 김옥균(본 묘는 충남 아산 영인면에 있다)을 기리는 거대한 묘비가 세워져 있다. 바로 그 묘비 뒤쪽에는 조선 말기인 1882년에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慶応義塾)에 입학 후, 1886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 한인 입학생이 됐지만 재일유학생들에 대한 조선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조국의 국세 퇴락과 망국징조를 한탄하다 1888년에 권총으로 자결을 한 박유굉(朴裕宏)의 묘도 있다.
주변에는 그 외 서양인 전도사나 학자 등 일본에서 활약하다 묻힌 외국인들의 묘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근처를 걷다 보면 일본의 근현대사와 더불어 이 땅에서 살다 간 외국인들의 역사도 느낄 수 있다.

지난 8월의 아오야마 영원 및 죠우시가야 영원에 대해서는 내용이 방대한 인물사가 되기도 하고, 소개하고픈 그들의 에피소드도 많기에 별도 시간이 허락할 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아오야마 영원에 대한 좀 독특한(unique) 소개를 하자면, 일본 근대사 최대의 우익단체였던 흑룡회의 우두머리이자 한국 병탄을 조정하며 대륙 낭인이나 숱한 일본 우익들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토우야마 미츠루(*頭山満;토우야마는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기도록 종용했던 일진회 및 회장 이용구를 조종한 흑막으로서 우익의 거물이었던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의 스승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옥균은 갑신정변 이후에 고베에서 그에게 원조를 받게 되고, 김옥균이 죽은 뒤의 아오야마 묘지 조성에도 토우야마가 지원을 한다. 참고로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 흑룡회에 물심양면의 지원으로 그들과 친했던 일본제국 의회의 젊은 국회의원이었던 오우미야 에이지에게 안중근은 감옥에서 사형 직전에 동양평화론을 부탁한 편지를 보냈고, 오우미야는 안중근이 사형 당한 날에 매년 제사를 치러줬다.)의 묘는 일본의 사상가로서 경찰청 관료들이 묻혀 있는 주변에는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일본의 정치가들, 조선 총독 및 관료들 등이 잠들어 있다.

   
▲ 김옥균의 묘비

그런 반면, 한 구석에는 도쿄제국대학 농과대학의 교수였던 주인 우에노 히데사부로(上野英三郎)를 일편단심으로 따르다 1925년에 주인이 강의 중에 뇌익혈로 사망한 뒤에도 주인이 오가던 시부야 역에서 그를 계속 기다렸던 충견 하치(ハチ)의 보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에노의 묘 안에는 충견 하치의 묘도 세워져 있다. 물론 이 충성스런 개를 기억하기 위해 지금도 시부야 역에는 하치공이라는 동상이 명물로 세워져 있고, 교과서 등에도 소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결초보은의 마음이야 말로 인간관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신의이다.
사람이 개보다 못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요령주의로 이해타산만 앞서서 사람을 간단히 배신하는 자들을 보다 보면 비록 개이지만 우직한 믿음과 의리를 가지고 상대에게 충실한 개가 되려 뒤통수나 치고 간사한 그런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8월에 필자가 확인했던 인물들의 묘에는 우리 한국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숱하게 많고, 그에 관련된 숨은 이야기 또한 방대하기에 소개를 하려면 일정한 기력과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여기서는 9월 28일에 필자가 확인하고 온 묘만 소개하기로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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