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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한인사의 첫 주자 도산 안창호와 최정익
양명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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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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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득 / 호주 찰스스터트대학교 방문교수 ]


호주한인사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2008년에 출판된 ‘호주한인50년사’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서자료를 근거로 볼 때, 처음으로 호주 땅에 입국한 한인은 김호열이다” (22쪽).

그 이후 계속되는 연구 속에 새 문서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1921년 김호열 보다 몇 년 더 일찍 호주에 입국했던 사람이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좌하며 ‘대한인 국민회의’ 총회장과 ‘신한민보’의 주필을 겸임하고 있었던 최정익이란 인물이다.

   
▲ 1918년 최정익이 도산 안창호에게 보낸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편엽서, ⓒ독립기념관

재미한인사략을 쓴 노재연은 최정익의 호주방문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최정익 씨는 연전에 상업차로 호주와 다히티도를 역방(歷訪)하고, 작년 4월에 상항에 회환하였는데, 금(1916년 – 역자 주) 2월29일 벤추라호 선편에 심상 서필순 씨와 동반하여 다시 호주로 향하여 도항하다가, 호놀룰루에서 한재명 씨를 만나서, 3인이 작반(作伴, traveling together)하여 오스트레일리아주 전경을 여행한 후에…”(506페이지). 이 내용을 보아서는 최정익은 최소한 1915년에 이미 호주를 방문하였고, 1916년에도 친구 두 명과 함께 호주를 또 방문하고 있다.

그의 계속되는 호주체류 사실은 그가 1918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거쳐 안창호에게 보낸 우편엽서를 보고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사서함 1230의 주소가 적혀 있고, 총6장으로 된 그림엽서 첫 장에는 안창호의 한문 이름과 영문 이름이 적혀있으며, 그의 미국주소인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피게로아(Figueroa)가 106으로 되어 있다. 또한 뉴싸울즈웰즈 시드니의 소인과 연도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엽서에는 도산의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북미실업회사를 대규모로 확장함에 재한줄 신하노니 (중략) 현금으론 희망을 두고 진행 중이오니”라고 적고 있다. 북미실업회사는 1913년 안창호가 ‘대한인 국민회’와 ‘흥사단’ 동지들과 함께 설립한 금융기관으로 한인자본으로 민족기업을 일으키고, 국제무역에서 신용거래를 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였었다. 최정익이 호주에 간 이유는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사업 확장을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행적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았음을 편지의 내용을 통해 엿볼 수 있고, 이 회사는 경기 불황과 공황 등으로 1927년 문을 닫았다.

또한 이번 연구를 통하여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6년 호주를 방문하였다는 내용이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김도형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안창호는 1926년 3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갔다”고 적고 있다 (‘도산 안창호의 ‘여행권’을 통해 본 독립운동 행적’, 2012, 19페이지).
독립기념관 자료실의 자료들을 보면 안창호는 호주 방문에 관하여 위에서 언급한 로스앤젤레스 주소에 거주하는 부인 이혜련에게 쓴 편지 중 세 편의 편지에 호주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첫 편지는 1926년 3월 13일 자로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호놀룰루에 갔고, 그곳에서 머물지 못하고 바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시드니에 도착 후 다시 편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시드니에 도착하여 쓴 두 번째 편지내용이다.

『나의 사랑 혜련!
그간 어떠합니까. 나는 오늘 시드니에 도착해서 방을 정하고 중국 밥을 사먹고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이 평안하였고 내리는데도 아무 장애 없었습니다. 이곳 四月 十四日에 떠나는 배가 있고 그 다음에는 二十六일에 떠나는 것이 있다하니 잘 알아보아서 작정하겠나이다.
이곳은 기후가 매우 좋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미국과 같이 화려하지 못하고 질박한 모양이 많습니다. 포도와 복숭아 등 과실이 지금 많습니다.
四二五九년 三月 二十三일
당신의 사랑』

이 내용을 보면 안창호는 중국으로 가는 길에 시드니에 내려 배를 기다리며 3주 동안이나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같은 해 4월 16일 다시 아내에게 짧은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시드니에서 브리즈번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배를 탄다는 내용이다.
『나의 사랑 혜련, 이왕에 작정한 대로 그저께 시드니를 떠나서 오늘 아침에 부리스베인이란 곳에 왔는데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합니다. 당신의 사랑.』

도산 안창호와 최정익의 호주방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의 그 의미, 그리고 호주 한인역사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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