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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류정치의 숨은 일꾼개인의 명예보다 100년 후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일하는,
해롤드 변 위원장에게 듣는다
황선구 논설위원  |  admin@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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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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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변(Harold Pyon) 위원장
중복(中伏)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의 말. 미국정치 1번지 워싱턴 D.C.에서 재미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과 차세대정치리더 양성에 헌신하고 있는 한 사람과 자리를 함께 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하는 제11회 세계한인차세대대회(08.7.28~8.1)와 2008세계한인청소년대학생모국연수(08.7.27~8.2) 참석차 오랜 만에 고국을 방문한 해롤드 변(Harold Pyon, 한국명 변희용-邊熙龍, 1953년 뱀띠) 미국 연방정부 상무부장관 선임자문위원·버지니아주 선거관리부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해 12월, 미주한인재단 주최의 ‘제2회 미주한인의 날 제정기념 전국대회’에서 그를 만났으니 실로 7개월만의 반가운 재회(再會)였다. 최근 미국산 소고기파동과 독도영유권문제 등으로 서울과 워싱턴D.C간에 외교채널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40년 전 이민 길에 나섰던 그로부터 미국주류사회에서 재미한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직접 들어보았다.

Q_ 서울에서 다시 만나니 참 반갑다. 서울에는 어떤 일로 오셨나?
-재외동포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행사에 불러줘 오게 됐다.

Q_ 변위원장이 현지에서 하는 일이 워낙 많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개인휴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걸로는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다.

Q_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다. 재미동포들 중에는 소위 ‘가진 자’들의 대부분이 공화당을 지지자인 걸로 알고 있다. 변 위원장은 어떤 계기로 공화당과 관련된 일들을 하게 되었나? 우리 한인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에게는 이민자보호정책을 쓰는 민주당이 더 낫다는 의견이 있는데….
-물론 민주당은 좋은 당이다. 1964년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시민권운동을 펼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미국에 살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공화당이 좋다, 민주당이 좋다고 구분 짓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 한인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면 민주당이면 어떻고 공화당이면 어떤가. 제가 공화당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한인이민자들에게 좋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민사를 살펴보면 동양계 이민은 1932년 이전에 이민 온 사람과 1965년 민주당의 유화정책(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으로 이민 온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유색인종을 배제하는 정책을 써왔다. 심지어 먼저 들어와 있던 독일계·영국계·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뒤에 들어온 이태리계나 동유럽계까지 차별했다.

그러다 이들 이민2세들이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로 이해하면서 차별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그러나 동양인이민자에 대해서는 차별정도가 심했다. ‘중국인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 1882년)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본격적인 동양인 이민행렬은 1965년 케네디정부에 의해 이민법이 개정되고 월남전이 종전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런 점에서는 민주당이 좋은 정책을 펼쳤다고 본다.

그러나 소수자인권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정강정책이 ‘못 사는 사람’들 위주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주당은 대학진학도 쿼터제를 선호하고 있고, 사회복지도 제일 못 사는 사람들 위주로 가고 있다. 이것이 미국 인구의 25%인 흑인이나 21% 이상인 히스패닉계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편 동양계는 미국 전체 인구의 4.5%에 불과하다.

이들은 악착같이 일한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낸다. 교육열도 대단히 높다. 그렇지만 민주당 정부의 정책에 의하면 우리 한인들은 세금 낸 만큼 혜택을 덜 받게 되고, 대학진학률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중소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는 한인들로서는 민주당의 분배정책 때문에 적잖은 손해를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공부만 잘 하면 얼마든지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다. 부시 공화당정부가 동양계 출신을 2명이나 장관에 임명한 것도 소수민족을 배려한 결과라고 본다.

Q_ 현재 나이는? 이민은 언제 가게 되었나?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뱀띠해)에 태어났다. 서울 휘문중학을 졸업했고, 고등학교 1학년(1969)때 2년 전에 이민을 떠났던 부모님을 따라 미국 버지니아주로 건너 갔다.

Q_ 1960년대 말이면 이민이 쉽지 않았을 땐데, 부모님이 어떻게 이민 가게 되었나?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셨다. 김석원 장군이 세운 성남학교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예전에 미국 성조지(Stars & Stripes)에서 번역과 통역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이민을 갈 수 있었다.

Q_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 육군에 들어갔고, GI 장학금으로 화공학석사까지 마쳤다. 그 후 제약회사에 근무했다. 다니던 회사가 인수합병(M&A) 되길래 미국 특허청으로 자리를 옮겼고, 한국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Q_ 지난 번 미국에서 만났을 때 보니 미국 주류정치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던데 정치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제가 살던 페어팩스(Fairfax)카운티에 학교 4년 선배(Thomas M. Davis)가 살고 있었다. 그 분의 권유로 선거운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실정치에 입문하게 되었고, 공화당 주지사·하원의원·상원의원들의 선거일도 돕게 되었다. 톰 데이비스가 원래 페어팩스카운티의회 의원(1980~1994)으로, 의회의장(1991~1994)으로 일하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1994년 하원의원(북버지니아주 버지니아 제11구역)에 당선되었고, 그 후 승승장구하여 하원정부개혁위원회(House Committee on Government Reform)라는 막강한 위원회 의장(2003~2007)으로도 활동했다.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일본측 로비에 막혀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상정도 하지 못하던 때, 미주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 연방하원 결의안 공동상정자(2005.12)로도 활약할 정도로 워싱턴D.C.의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 의원 중의 한 사람이다. 그와의 오랜 인연이 미국주류정치에 입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Q_ 그럼 미주한인재단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가 조직됐을 당시 박윤수 총회장이 워싱턴D.C.에 계셨다. 그때 한인이민100주년 결의안을 상·하원에 상정하고 대통령 선언까지 받아 달라는 제안이 받고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100주년기념사업이 끝나면서 저도 그만 두었다.

그 후 기념사업회 사람들이 미주한인재단을 조직했고,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미주한인의 날이 로스앤젤레스 시의회(2003)와 캘리포니아 주의회(2004)로부터 공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연방의회 통과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또다시 미주한인재단 워싱턴지부장인 정세권 회장으로부터 권유로 받아 2005년 3월 미주한인재단 정기총회에서 미주한인의 날 전국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결국 톰 데이비스 하원의원과 공화당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섰던 조지 앨런 전 상원의원 등의 협력을 얻어내 연방 상·하원의회 모두가 1월 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공식 제정하는 일에 저의 조그만 힘이 보탬이 되었다.

Q_ 미주한인재단 행사를 보면 일반 한인회 행사와 달리 너무 미국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마치 영어경연대회 같은 분위기인데… 미국인이 10% 이상 참석했다면 모를까…
-그렇게 말하면 한인회 행사는 너무 한국냄새가 난다. 그래서 한인2세들이나 미국사람들이 참석하길 꺼려한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행사진행을 영어로 하는 것만 갖고 참석자들에게 민족주체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미주한인재단에서는 정기총회는 반드시 한국어로, 연차대회는 미국말로 진행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Q_그렇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소수민족들 가운데 유태인들이 제일 주목받고 있지 않은가. 재미유태인들은 이스라엘과 미국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거의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다.
- 대단히 좋은 지적이다.

Q_ 재단 이사장 재직 당시 여러 가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한인정치인포럼을 만들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고 학문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주류사회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이민 2~3세들의 미국정계진출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공감한다. 민주당 소속인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과도 이 문제로 깊이 상의한 적 있다.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든 공화당정권이 들어서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재미한인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이쪽 사람들을 통해, 민주당이 집권하면 저쪽 사람들을 통해 소수민족으로서의 재미한인의 권익을 찾자는 것이 우리가 미국 주류사회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대원칙이 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민주당, 공화당 하는 식의 당파 싸움은 곤란하다. 마이클 혼다 의원을 친한파로 만드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교포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한다면 한국이민자를 미국의회로도 보낼 수 있고, 장관으로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미국에서 뿌리내리고 살면서 한국을 도와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과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말로만 떠들어서는 안 된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Q_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유태인사회를 모델로 삼는 것은 직접 정치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막대한 정치자금을 모아 유력한 정치인들을 후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동포들이 아직 미국 현지정치인들을 위한 정치모금에는 인색한데, 이런 분위기를 누군가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 미주한인재단에서 재미동포를 상대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그런데 재미동포사회는 교회일은 모든 것이 잘 되는데 한인사회 관련 일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한인커뮤니티센터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유태인들은 동네마다 회당도 잘 짓고 커뮤니티센터도 잘 짓는다.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Q_ 다소 민감한 질문인데, 한인회 간부들이 미국대통령 선거에는 별 관심이 없고 한국대통령 선거에는 관심이 많은 편 아닌가? 재미동포들의 한국 정치참여 열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이민1세들은 언어문제 때문에 미국정치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사회적응도 어렵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한인회 중심으로 모이게 되고, 미국 주류사회와는 제대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주류사회와 유대를 갖는 방법 중에 모금(fundraising)만한 것이 없다.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동네에서 한국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주지사나 하원의원 못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불법체류자 추방문제, 일본군위안부문제, 한미FTA비준문제 등 현안해결에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Q_ 시간적으로 보면 본격적인 미국이민의 역사는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돈도 벌었고 한인회장이라는 감투도 썼다.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보다는 국내정치인들을 접촉하는 것이 더 편하다 등등.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을 과도기적인 것으로 봐도 되는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도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계 소수민족들에 비해 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Q_ 우리 이민자들의 가슴 속에는 언젠가는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이상 이제는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것을 미주한인재단 같은 데서 나서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돌아가면 이정수 총회장님과 상의해 보겠다.

Q_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재미동포들이 한국정치에 많이들 개입했는데, 변 위원장은 어떤 입장이었나?
-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Q_ 그럼,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고기파동과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로벌시대에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세계1등 국민이 되려면 신용이 최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촛불시위 같은 것이 우리 정서적으로는 멋있게 보이겠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인들을 매우 감정적인 민족으로 보게 되었고, 우리의 약점이 전 세계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고 본다.

미국산 소고기 먹고 광우병 걸인 사람이 아직 하나도 없는데 분신해서 죽는 사람이 생기고, 누가 옳고 그르든 경찰이 시민들에게 얻어터지는 모습이 방송에 연일 비취는 것이 어떤 결과들을 낳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철수하고 있고,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박수치고 있다.

Q_ 최근 한일간에는 독도영유권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민감정이 보통이 아니다. 미주한인재단 같은 데서 현지정치인들과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널리 알리는 편지보내기운동 같은 것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충분히 그럴 마음이 있다. 제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워싱턴지역 4개 한인회와 교회협의회들이 “범워싱턴독도수호 및 역사왜곡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자리에는 최정범 특위위원장을 포함하여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 권태면 총영사, 김인억 워싱턴한인연합회장 등 80여 명이 참석해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미국사회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애틀랜타, L.A. 뉴욕 등 각 도시마다 독도위원회를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금력이 너무 약하고 독도 관련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일본측 로비스트가 워싱턴D.C.에만 300명 정도 있는데 우리측은 현대 하나 밖에 없다. 물론 독도문제가 영토문제라서 국민감정이 상하겠지만 요란하게 떠들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아주 조용히 자기네 사람들을 의회로 지명위원회로 그리고 출판사로 보내서 물밑에서 작업하고 있다. 일본은 6개월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무관심해지는 우리 국민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이 점을 역이용해야 한다. 소리 없이 로비도 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Q_ 결혼은 언제 했나? 자녀는?
-1986년에 했다. 제가 장남이라서 비교적 늦은 나이(33세)에 한국여자랑 했다. 1969년 이민 와서 보니 한국여자가 드물었다. 그래서 동생들은 미국사람들과 결혼했고 저는 한국여자랑 하려다 보니 결혼이 늦었다. 현재 대학 3학년에 다니는 딸(20세)이 하나 있다.

Q_ 현재 미주한인재단에서의 활동은 전문직인가 아니면 봉사직인가?
-미국특허청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월급은 받고 있다. 미주한인재단의 일은 개인 시간과 경비를 쪼개서 전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Q_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미국은 지도자의 실수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나라다. 말 한 마디 잘 못하면 대통령후보로도 나올 수 없게 만드는 나라다.

Q_ 우리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두 개씩이나 맞았다. 그래서 일본 정치인들은 일본과 일본사람을 위해서라면 미국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가부키 춤까지 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밉더라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국력을 키워야 한다. 국제사회는 감정으로 되는 데가 아니다. 그리고 자기네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특히 미국산 쇠고기로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도 촛불시위대가 등장하면서 어째서 북한군에 의해 무고한 관광객이 피살되었는데 촛불시위 하나 없나?

Q_ 재외동포재단에 바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대한민국에 뿌리를 갖고 있는 차세대들을 길러서 이들을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 곧 국력이 성장하는 지름길이다. 이번 차세대대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대회에 참석해서 모국을 배우고 돌아가면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홍보대사가 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을 돕는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차세대사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지원해야 한다. 문호도 확대해서 핏줄이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에 여러 한인단체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를 일률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뭔가 실질적으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단체, 뭔가 값진 성과와 업적을 낸 단체들을 선별해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만 행사를 할 것이 아니라 현지단체와 협력해서 하는 사업들도 점차 늘려야 한다.

Q_ 현지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사관은 외교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니까 논의로 하더라도 총영사관의 역할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을 적극 활용하고 이들을 우대해줘야 한다. 자원외교가 말처럼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뭔가 달라고만 하지 말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기능이 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로비도 간접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수한 인적자원이 많다. 이들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회사도 써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친한파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 더 나을 수 있다.

Q_ 이명박 정부는 유능한 차세대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세대네트워킹사업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 대회가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이메일로 수시로 의견을 수렴하고, 회원제를 통해 현지모임도 만들고 연차대회도 개최하는 후속사업을 잘해야 한다. 한번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차세대인재모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값진 정보들이 생산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재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계속해서 후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현지사정은 현지사람들이 더 잘 안다. 누가 옥석인지 돌멩인지를. 미국인들에게 누가 보석인지 물어보라. 금방 알 수 있다.

Q_이명박 정부가 이중국적 허용 여부를 놓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 재미동포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한다면…
-이스라엘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국적과 미국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들은 이스라엘군대도 가야 하고 미국군대도 가야 한다. 이것을 벤치마킹하여 일단 파일럿 프로그램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1~2년 정도 시범사업으로 해보고, 그래서 성과가 좋으면 2단계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고 혜택도 부여하고. 그래도 지원자가 많고 성과가 좋으면 전 세계동포에게 완전 개방하는 그런 방식이 좋을 듯하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이중국적정책을 입안했는지를 면밀히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남이 안하던 것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이 하는 정책을 분석연구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조금만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Q_오는 10월 행사 준비상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올해로 3년째를 맞이 하는데 워싱턴D.C.에서 10월 10일 연차대회가 열린다. 국회의사당 투어와 국회내 세미나를 비롯하여 이민1세 중심의 만찬이 준비중에 있다. 10월 11일에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전문분야별로 차세대지도자를 위한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이민1.5세, 2세들을 페널리스트로 초청하여 자라나는 대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줄 계획이다.

Q_ 앞으로의 꿈과 희망이 있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좋은 나라지만 소수민족으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가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 동양계 이민자의 후손으로서는 더 어렵다. 그런데 우리 이민2세들은 아직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주류사회의 벽을 뚫고 나가기에는 아직 우리 힘이 부족하다.

버지니아주 공화당에서 제게 출마를 권유하고 있지만 저 개인 하나보다 2세 다섯 명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파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출마를 안 하고 있다. 주류정치계에 진출하는 차세대들을 키우는 것이 저의 꿈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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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날과 장소는 서로 달라도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가?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사랑하고 자신이 살아가야 할 미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 젊은이와의 만남은 무더운 여름날 쏟아지는 한 줄기 시원한 소낙비와도 같았다. 밝고 경쾌한 웃음소리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주장을 들으면서 나는 250만 재미동포사회의 미래가 지금보다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민족의 장래를 전망해 본 귀한 시간이었다.

대담 /황선구 논설위원
사진 및 정리/최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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