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선정되는 것을 보고 착잡한 심정이었다. 르 클레지오의 문학적 업적이면 상을 받을 만하고 더구나 그는 한국 작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한국문학 세계화의 원군이기도 하다. 재작년 가을 파리에서 필자가 맡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과 프랑스 문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불작가대회에도 참석해 황석영·윤흥길·김훈·은희경 등 우리 작가들과 양국의 참여문학적인 성격을 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어 친분도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접한 순간 “이번에도 또 유럽 작가구나, 이건 참 너무하지 않나” 하는 항변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구미에 치중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유럽 중심주의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1994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한 이래 프랑스 국적의 중국 출신 작가 가오싱젠과 유럽에 한 발을 걸친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 국가 출신이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작품활동을 진작 접은 해럴드 핀터와 도리스 레싱 두 영국 작가가 해를 걸러 수상한 것에서도 확연하다. 발표를 앞두고 여러 곳에서 한국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물어왔을 때, 최근의 유럽 편향에 비추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는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노벨 문학상에 바치는 우리 국민의 헌신도 이제는 접을 때가 아닌가 하게 된다.
필자는 맡은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벨 문학상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바람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일부에서는 ‘소동’이라거나 ‘후진성’이라는 냉소적 시각도 있지만, 자국의 작가가 세계 문호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에는 모국어 사랑과 그 창조적 성과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깊이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고은 시인이 발표 당일 스웨덴의 최대 일간지 ‘다겐스 니히테르’에 르 클레지오와 함께 유력 후보로 소개되는 등 그만한 근거도 없지 않았다. 다만 유럽 편향이 짙어지는 추세는 그것대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현실인식이 필요할 터이다.
1970, 80년대만 해도 중남미나 아프리카 작가로 폭을 넓혀가던 노벨문학상위원회가 왜 유럽으로 다시 기울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편이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유럽조차 미국적인 상업문화에 노출되고 위협받아온 시기였다.
미국의 문화 공세에 대한 유럽의 위기감이 유럽문학의 우수성을 다시 주장하게끔 한 것은 아닌가? 미국 대중문화의 득세에 맞선 유럽문화의 정체성 옹호, 그것이 모든 후보를 제치고 르 클레지오가 선택된 숨은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에 맞이한 이 역풍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 추세를 인정하면서 한국문학을 세계 주요어로 소개하는 번역작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작가라도 영어를 비롯한 서구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세계문학에서 그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서구문학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문학 지형도를 바꾸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비유럽권의 민족문학은 유럽과 대립하고 교섭하면서 독특한 문학을 산출했다. 한국문학도 서양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권의 문학과 연대해 새 활로를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
역점을 어디에 두든 현재로서는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혜를 갖자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사업도 유럽어 번역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중남미 문학의 번역을 통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주 환태평양 국가들의 한국문학 번역가들을 초청해 세계번역가대회를 연 것도 그 일환이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유럽 중심주의로 회귀한 노벨 문학상의 향방은 좀 더 창조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편집 : 2024.4.19 금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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