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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의 톤도 울링 지역 아이들의 웃음 -(1)- 의식주 해결한 여유 층이라면 약소 층에게 베풀고 나눠주는 보람을 가져보자 -
이수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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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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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필자가 대학원 때 노르웨이 출신의 요한 갈퉁(Johan Galtung ;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분석의 평화학자) 교수의 평화학 수업에서 퍽 인상적이었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버리힐즈의 백만장자(밀리오네) 400명의 재산만으로도 지구촌 전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후 경제학 집중강의와 세계경제론을 들으며 그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2010년 6월에 강연차 LA에 갔을 때 민병용 전 한국일보 LA지사장님의 안내로 비버리힐즈 일대와 할리우드를 둘러보다 갈퉁 교수가 역설하던 그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세계적 갑부들이 몰려있는 비버리힐즈와 로데오 거리를 보면서 그들의 명성대로 비축된 재산들을 활용한다면 지구촌의 엄청난 사람들의 기술교육 시설과 고용창출 기관을 만들 수 있고, 가난한 약소 층에 경제활동과 복지혜택의 기회를 주는 등 부의 축적을 사회에 보람 있게 환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기억을 절실하게 더듬은 것은 지난 6월 말에 필자가 방문했던 필리핀의 마닐라 톤도 울링안지역에 섰을 때였다. 지인의 배려로 ‘한민족국제포럼 마닐라대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기에, 평소 국제인권수업이나 다문화교육 수업에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소개를 해왔던 아시아 최대 빈민촌이자 세계적인 낙후 지역의 하나로 알려진 속칭 ‘Smokey Mountain(마닐라 각지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곳)’도 확인하고 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주최 측에 문의를 했다.
원래 중국인 이민 권력자에 의해 붙여진 톤도(Tondo, 東都)는 지배 측인 스페인에 저항한 ‘1896년 혁명’지역의 중심지였고, 미국 지배하에 있을 당시 마닐라시의 일부로 편입된 곳이다. 마닐라 서북쪽 파시그 강과 마닐라 만이 만나는 톤도 지역은 인구밀도가 약65,000명/㎢ 으로 세계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평소에 총 같은 무기를 소지하는 무법지대라서 위험하니 한국이나 일본 같은 감각으로 가면 안 된다고 주변의 지인들이 반대를 했으나 한일 웹사이트 등에 정보가 나와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열악한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교육이나 주거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야만 내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렌터카를 대여해 현지를 잘 아는 가이드와 함께 가게 되었다.

   
▲ 비행기에서 바라본 필리핀 마닐라 상공

마닐라로 떠나기 전, 병원 검진에서 과로로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기에 동남아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약들도 단단히 준비해 갔다. 별 의미는 없었지만.
포럼 회장이자 숙소인 에드사 샹글리라 호텔은 필자가 아시아의 몇 나라에서 경험해 본 체인 호텔이었기에 안심하고 나리타에서 새벽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다른 외국 출장을 위해 경유한 적은 있으나 마닐라 시내서 묵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섯 시간 정도로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여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친 뒤, 약간의 환전을 하고선 옐로 캡을 찾았다. 택시 정류장엔 현지 관리인이 안전 확인 때문인지 필자의 이름과 행선지를 묻기에 말했더니 내용을 적은 종이 한쪽을 건네 줬다. 그것을 운전기사에게 건네주자 친절하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준다. 비행기 속의 지나친 에어컨 탓에 추웠던 몸이 마닐라의 무더위 속에서 차츰 풀리는 것 같았으나 공기는 정말 탁하고 머리가 아팠다. 운전기사는 필자에게 도로사정과 마닐라의 상업지구인 Mandaluyong과 Edsa Shangri-La 주변의 대형 쇼핑몰 등에 대해 열심히 소개해 줬다.

호텔에 내리니 검은 제복에 총을 멘 경비원들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벨 보이가 나오더니 짐을 들고선 로비까지 에스코트 해 준다. 왠지 얼마 전에 필자가 혁명 전의 이집트 카이로에서 경험했던 기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호텔 안은 과한 에어컨 가동을 제외하고는 차분한 리조트 호텔 분위기였다.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호텔 건너편의 샹글리라 쇼핑몰에 갔더니 어느 나라서나 봐 왔던 브랜드 옷가게들이나 휴대전화 판매점과 각종 음식점이 즐비한 탓에 현란스럽다. 푸드 코트를 지나서 대형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니 망고나 두리언 등의 과일이 풍부하다. 몇 종류의 과일과 간단한 음식으로 남국 마닐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지친 몸을 푹 쉰 다음, 준비해 온 톤도 지역 정보를 다시 확인한 뒤, 가이드와 약속한 로비로 내려갔다. 당연히 위험한 장소를 안내 받는 것이니 상당히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가이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연약하게 보이는 자그마한 체형의 젊은 여성이 인사를 한다. 순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도 스쳤지만, 나이가 든 만큼의 믿음이랄까? 분명 그녀가 온 것은 이유가 있을 터. 어딜 가나 가이드만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던 필자의 여행 운을 믿기로 했다.
 

   
▲ 미군이 사용하다 남기고 간 트럭을 개조한 버스(지푸니)

주말이라서 부유층의 결혼식이 치러지는지 호텔 로비엔 번쩍거리는 치장을 한 드레스 모습의 화려한 여성들이 꽃다발 등을 들고 부산히 오간다. 그 속을 빠져나와서 우리는 일단 톤도 지역의 스모키 마운틴으로 향했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니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경인 방송 OBS가 기획한 ‘아시아의 소원’이란 프로그램을 찍으러 왔을 때 현지 가이드를 했던 적이 있다고 하니 든든하게 들렸다. 한국어는 못하지만 상세하고 친절하게 오늘은 St. John the Baptist의 축제가 있어서 각지에서 물세례를 할 테니 젖을 수도 있다고 설명을 해 준다. 그러고 보니 6월 24일 일요일, 로마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이니 종교적 의식이 있나보다 생각하며 도로를 주행하니 트럭 같은 차에 각양각색으로 도색을 한 창문이 열려있는 Jeepney가 많이 달린다. 버스요금이 7-8페소라는 서민용 교통수단인데 미군들이 사용하다 남기고 간 지프를 개량하여 만든 마닐라의 상징이라며 웃는다. 물론 최신형의 에어컨이 있는 버스도 달리지만 비교적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버스였고,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에 인상 깊었다.

도로 옆으로 스페인 식민지 때의 흔적인 다양한 건물 성당 등이 보였고, 식민지에 저항하다 처형당한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을 기린 리잘 공원을 옆으로 보면서 마닐라 중심가를 벗어나니 아름다운 마닐라 만과 요트장의 해변이 보인다.
그곳만 본다면 고급스런 리조트 지역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달려서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서 부둣가가 보이는 국도10호선을 조금 달리자니 길가에 쓰레기더미를 분리수거 중인 사람들과 척박하게 보이는 판자촌이 눈에 들어온다. 집 뒤에 쌓여진 쓰레기들과 그 아래의 자그마한 함석집을 보며 길을 조금 더 달리니 한적한 길 오른쪽에 지금은 폐쇄된 스모키 마운틴이 나온다. 원래 어촌으로 어획량이 풍부한 마닐라의 풍요로운 장

   
▲ 폐쇄된 스모키 마운틴

소였으나 1954년부터 마닐라 각지에서 모인 쓰레기의 최종 소각장이 되면서 이곳에 버려진 쓰레기가 더운 날씨로 인해 고열 발화돼 항상 연기가 났던 곳이라서 ‘스모키 마운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난을 물리치려고 마닐라로 나온 빈민층 사람들이 직장도 없이 오갈 데가 없어지자 쓰레기 산더미 속의 폐품 등의 재활용품을 팔아서 밥줄을 이어가며 촌락을 형성하게 되었고, 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초라한 함석이나 판자로 만든 엉성한 주거지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라모스 정권 때 이 지역의 재개발 정책에 힘을 쏟고, 국가의 수치스런 치부를 없애려는 의도에서 1994년부터 쓰레기터의 생활을 강제 폐업시키려 했으나 반대가 심하여 다음해에 정부가 마련한 가설 주택으로 강제 이주를 실행했지만 생활 수단은 역시 근처 쓰레기장에서 폐품을 주워서 끼니를 잇는 사람들(Scavenger)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번 국제 포럼의 리셉션에는 라모스 전 대통령이 한일 우호를 강조하는 기조 강연자로 나와서 포럼 참석자들과 식사를 하며 자신이 6.25 한국 전쟁 때 참전했던 사진이 500페소 지폐에 나와 있다며 한국과의 유대관계를 역설했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국민의 빈곤한 생활해결까지는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0.1%의 부유층을 위한 기득권의 절대 권력과 부의 축재, 정치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 울링안 지역의 쓰레기 더미

71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뤄진 약 9400만 인구의 필리핀은 천혜의 자연 환경과 풍부한 해저 자연자원과 관광자원, 풍요로운 농어산물과 더불어 국민들의 소박함과 성실함에 경건한 신앙심(스페인 통치의 유산으로 전 국민의 80% 이상이 로마 가톨릭을 믿는다)이 있기에 경제적 운영만 궤도에 오르면 소득분배가 어느 나라보다 제도적으로 균형 있게 잘 될 수 있는 국가이다. 게다가 포럼에서 만난 마닐라의 한인신문 김대중 대표 말을 빌리자면, 우리 교민만 해도 12만에서 15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한국인 관광객만 해도 연간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대국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리조트 여행이든 어학연수든 한국인들에겐 친숙한 이웃이 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렇지만 오랜 독재정권과 기득권층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왔던 탓에 국민 전체를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국가 전체의 경제적 안정보다 5대 재벌을 비롯한 극소수 부유층 및 특정 가문에만 집중하는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라는 구조 속에서 관료들의 권력 남용이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게다가 기존의 대통령 및 고위층은 명문 사립대인 아테네오 대학(아시아 최초의 4년제 대학. 개중에는 마르코스와 같은 국립 필리핀 대학 출신도 있으나 아테네오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출신들의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절대적 권력층 구조가 이뤄지게 된다.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삶만 추구하느라 이기적 합리화에 급급하니 빈민층들은 가난의 대물림이란 구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되고, 턱없이 높기만 한 사회계층을 쳐다보며 버겁게 살기보다 사심과 물욕을 버리고 종교를 희망으로 삼고 하루살이 같은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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