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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비극 - 끝없는 이념 논쟁
박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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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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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남 / 전 댈러스 한인상공인회장 ]


   
▲ 박영남 회장

미국과 소련의 힘을 빌려 조국의 독립을 꿈꿨던 한반도 몸부림은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의 정부 수립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분단된 한반도는 6.25의 참극을 맞았다. 그리고 한반도는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족상잔의 제물이 되었으며, 이것이 작금의 한국을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이념과 사상 논쟁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2012년은 4월의 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가 겹치는 정치의 해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세월, 여야 간 정권 교체과정과 선거 때마다 불거진 사상과 이념의 갈등 증폭으로 나라 안팎은 마치 6.25전쟁 혼란 시기의 양극상을 다시 보는 듯하다. 6.25전쟁 당시 많은 백성이 남측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죽고, 북에 의해서는 반동으로 몰려 죽었는데 그 증오와 보복의 피바람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선거는 권력 투쟁이다. 패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일천한 국가들의 현실이다. 정권 교체에 익숙해진 나라들은 선거 뒤처리에 이력이 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며 종종 퇴행적인 철권통치 회기로의 향수에 빠져들곤 한다.

지금 한국의 이념⋅사상 논쟁 중심에 이석기, 김 재연, 임수경 등의 이름이 들먹여 지는가 하면 국가관 내지 사상검증 등이 거론되는 총체적 난국인데, 그저 민주주의와 남북분단 극복훈련의 통과의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까딱 잘못하여 헛다리라도 짚는 날엔 지금까지 이뤄놓은 대한민국의 많은 성취들 즉,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들을 놓치지 않을까 두려워 진다. 18대 국회에서 6명이던 진보당 국회 의석이 19대에서는 13명으로 급증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Red Scare)가 여의도 주변을 유령처럼 맴돌며, 그래서 소위 좌익척결주의(Mccarthyism)가 운운 되는가 하면 17세기 일본 도쿠가와(德川) 시절의 천주교도 색출에 쓰였던 후미에(踏繪)식 야만적 사상검증 방식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니 말이다.
민주주의는 수용하기도 어렵지만 유지비도 많이 드는 다양성을 먹고 사는 생물이다. 민주주의는 가까운 길도 돌아가는 답답한 행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국민이 선택한 정체성이다. 빛은 항상 그늘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북한 땅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허울만 쓴 사실상 김일성 개인 소유 텃밭 같은 곳이지만,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이 되어 백가쟁명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따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공화국으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또 모든 국민은 헌법 제 19조에 의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야기되는 사회 국가적 질서와 갈등은 여러 가지 국민적 합일로 제정된 법률로 처결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헌법 제3조의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모순적 규정으로 보이는 헌법 제 4조 (평화통일지향)에 따라 최고 권력자의 통치행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대표적인 것이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 책임자간에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다. 이 합의서의 골자는 1)서로 간 체제 인정 2)평화통일추구 3)서로 간 내정 불간섭으로, MB 정부도 이를 추인한바 있다.

주지하는바 남과 북은 교전 당사자로 다만 현재는 휴전 상태일 뿐이다. 남과 북은 같은 혈육의 공동체로 지금은 둘이지만 결국에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모순적 특수 관계에 있다. 오늘 한국의 이념 사상 논쟁의 불씨도 여기에 있는데 이 와중에도 여야는 정치 공학적 손익계산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해방 공간에서 맞았던 미몽 속을 헤매는 길 잃은 양인가 싶다.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인데 한국정치는 역주행하는 음주 운전자 같다.

논의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으면 당연히 상대방도 나를 승인하지 않는다. 의견(意見)이 서로 다를(相異) 때 나는 옳(正)고 상대는 그르다(誤)는 생각은 논의 자체를 파괴한다. 작금의 혼란도 대체로 사태의 해법(解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태 인식(認識)에만 치중 하는 듯하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또 민생을 챙기는 진보의 문제와 친북의 문제도 서로 간 구분 없이 난무하니 해법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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