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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병원벽면을 채운 조선적(籍) 아이들의 자부심
이수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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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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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얼마 전부터 시작된 장마 탓에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 되면서 평소의 과로 후유증도 겹치기에 근처의 종합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일에 쫓기다 보면 병원 갈 시간은 거의 없다. 필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봐 왔던 쓰러진 내 동료들 대부분이 모두 일에 대한 책임감에 쫓기다가 증세가 나타나서야 병원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급히 예약을 하여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고, 수속을 밟고 나서 진찰실로 가는 복도를 향할 때였다. 벽면에 익숙한 한글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4반세기를 살아 온 일본 생활이지만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한글이나 한국 문화와 관련된 것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비록 한류문화가 일본 사회의 당연한 문화 현상이 되어 있어도 필자에겐 지금도 예상치 못 한 곳에서 한글이나 한국 관련 문화를 보다 보면 발길이 저절로 멈춰진다. 필자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김치도, 한국말도 볼 수 없었고, 국제전화도 전화회사 교환 아가씨를 거쳐서 하던 시대였기에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각종 한지와 색종이 등을 찢어서 붙인 그림이었다. 한글이 박혀진 한지 위에 형형색색의 종이를 이어서 알록달록하고 화사하게 디자인한 보자기 문양이 산뜻하게 보였다. 과거엔 단순히 물건을 싸던 보자기를 우리의 대중문화, 특산품화로 거듭나도록 소프트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최근엔 고급 선물 등의 랩핑용만이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높이 평가를 받고 있고, 일본의 보자기인 후로시키와는 다른 색상과 분위기라서 한류 문화 상품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런 보자기 문양 앞에 니시도쿄(西東京) 조선 제1 초중급학교 초급부(초등학교부) 6학년들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이 근처 다치카와에 조선학교가 있다고 하더니 여기 근처였구나!’ 그런 생각과 더불어 새삼 아이들의 작품들을 돌아보았다. 초급부 5학년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장승을 한지를 찢어서 만든 [찌기리에(ちぎり絵)]로 각양각색의 개성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 필자에게 일본인 간호사 아가씨가 그게 뭔지 가르쳐 달라고 묻는다. 토템폴 같다고 하면 간단히 이해하겠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서 그녀가 검진 준비를 하는 동안에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다.

예로부터 한반도에선 각 마을마다 그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남녀 한 쌍의 장승을 세워두었고, 천하대장군을 남자로, 지하여장군을 여자로 한 것은 유교적 남녀 역할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마을의 평안과 역병 등의 예방과 개개인의 기도를 들어주는 민간 신앙적인 역할도 가지고 있고, 그 외의 서낭당이나 솟대와 같은 마을의 상징적 의미도 들어 있는 토속적인 수호신으로 사랑을 받아 온 것이라고 하자 그녀는 그제야 잘 알겠다며 환히 웃는다. 그래서 필자가 이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냐고 물으니 아침 출근길에 꼬마들이 조선말로 ‘안녕!’ ‘어머니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재잘거리는 등교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어머니가…’라는 발음이 자연스럽고 정겹게 들린다.

   

“이렇게 다른 문화를 아는 것도 즐겁지요?” 했더니, 애들 작품이 꾸밈이 없고 귀여워서 일하다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이야기해준다.
다른 벽면에는 초등학교 2학년들이 그린 [櫻]이라는 제목의 벚꽃 작품들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각자의 눈에 보이는 크기가 다른, 그러나 화사한 봄 색깔의 벚꽃 나무에 꼬마들이 즐겨 노는 모습은 매년 봄마다 볼 수 있는 평화로운 풍경의 하나이다.
종합병원 하면 건강 관련의 포스터나 하얀 벽면으로 ‘병원! 이란 분위기를 연상하기 쉬운데, 이렇게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그림들이나 원색의 보자기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푹 꺼져 있던 컨디션에 활력이 나는 것 같았다.

이 니시도쿄 조선 초중급학교는 1946년에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의 교육을 가르치려고 다치카와(立川)에 세운 학교이다. 1948년에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한 뒤, 현재에 이른다. 필자가 사는 다마(多摩)지역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 온 당시의 동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생활을 이룬 곳이라서 재일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이 학교에서 수많은 동포 아이들이 민족적 의식을 잃지 않고 교육을 받은 곳이다. 민단 측의 한국 학교는 아니지만 필자는 솔직히 이런 꼬마들의 앙증맞은 작품들을 보자니 흐뭇했다.

자신들의 뿌리를 생각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커가는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존재와, 자기가 성장해 온 일본이란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서 맡아야 할 역할의 의미를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에 한국의 숱한 유학생들 중에는 경쟁사회 속에서 살기 힘들다고 해외로 나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민족과 사회에 대한 생각 보다는 개개인의 영달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의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아니, 요즘은 특히 역사 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에 대해 많이 고심한다. 외국 땅에 와 있는 많은 유학생들에겐 생활비가 세계적으로 비싼 일본이 생활하기 힘든 곳임은 이해를 하지만, 주된 목적인 공부보다도 아르바이트가 목적이 되었고, 일본의 내면을 아는 것보다 주요 도시의 일부 화려함만 보다가 요령으로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을 주저하는 건 기존의 한국교육이 근본적으로 한국을 아는 교육이 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감정적인 반일을 주장만 하는 미숙함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역사가 뒤틀리고 잘 못 되었는지, 또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미래지향적인 해법 모색의 지혜를 키워서 상호 신뢰를 위한 다가서기 교육이 필요하건만, 그런 부분에서의 교육적 효율은 아쉬울 정도로 보기 힘든 현실이다.

정치가나 교육계는 한국사회에 국제화, 세계화 교육을 위한 다양한 방책을 모색해 왔으리라. 하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갔을 때나 혹은 국내에서 외국인을 맞았을 때 과연 얼마만큼 우리 것을 설명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필자의 수업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이나 우즈베크 출신 학생 등이 있는데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더니 국가나 문화는 물론 자기 고향 소개와 문화 교류 등 대단한 소개로 다른 학생들에게 자극이 됐던 적이 있다. 프랑스나 독일, 중국에서 온 학생들의 자기 역사 사랑은 90분 수업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에 반해 한국의 유학생들은 원래 그렇게 얌전한 성격들인지 대부분이 조용히 자기 이름과 출신 지역의 특징 한 두개만 이야기 하고 끝낸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일본인 학생들조차도 고향의 특산물은 물론, 오뚝이를 만드시는 할아버지의 자부심 강한 장인 정신까지 소개를 하는 적극성을 보였으니 필자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념 사상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 시키는 정치적 움직임이 불거지고 있으나 필자는 일본의 병원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의, 한글을 소중히 여기며 한민족의 문화를 작품화 해 놓은 그림들을 보며, 한국사회는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자국민을 여유 없이 몰아붙여 온 기존의 사회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사회 전체에 대한 애착과 책임의식을 기르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했던 나라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삶터 조성 정책’에 힘을 쏟는 게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 조선학교 초등부 수업광경, ⓒ 조선학교 출신 학생 제공

입시경쟁 속에 자라온 엘리트들이 환경 좋은 외국에서 살다가 그 나라로 귀화를 하고 한국을 버린다면 그것 또한 한국사회의 인적,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일제 말기 죽어간 유학생 송몽규나 윤동주가 그렇게도 꿈꾸어 오던 독립된 조국에서 후손들이 이토록 자신들의 뿌리와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 할까?(참고로 지금 한국 학회지용 송몽규 윤동주 논문을 동시 집필 중이다.)

분단된 남북한의 대치적인 특수 상황은 일본에도 그대로 존재하지만, 일본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과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한민족에 대한 긍지나 민족문화 혹은 역사 의식은 조선학교 출신의 학생들이 훨씬 강한 편이다. 그런 자부심은 결국 자신과 다문화권과의 가교 역할에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는 제대로 된 문화 교류로 이어진다. 그런 생각들이 작품들을 보는 내내 뇌리를 스쳤다.

검진을 마치니 소모품의 몸이기에 과로한 만큼 부작용도 나왔지만, 돌아오는 길은 어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아이들 작품의 순수성과 한글로 만든 작품을 일본의 병원에서 만났던 흐뭇함으로 말미암아 심신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귀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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