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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이어온 도쿄명물 우동집 노부부 이야기
이수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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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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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 녹음 짙은 가쿠게이대학 교정 풍경

필자가 재직 중인 도쿄가쿠게이(東京学芸)대학교는 신주쿠(新宿)에서 JR 중앙선 오렌지색 열차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고쿠분지(國分寺)역 북쪽 출구쪽에서 걸어서 7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봄에는 벚꽃나무 터널로 환상적인 분위기지만 지금은 초여름을 서두르는 짙은 녹음으로 울창한 숲 속의 풍경이 아름답다.

도쿄가쿠게이대학교는 현재 일본 교원양성계 중심대학으로서, 1873년 이래 139년 동안 수많은 초⋅중⋅고 교사들을 배출해오고 있다. 현재의 캠퍼스로 옮겨 온 것은 1964년으로, 속칭 선샤인이라 불리는 9층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아담한 건물들이다.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캠퍼스 안에는 부속 유치원과 초⋅중학교가 있어서 아이들과 대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자라는 공간이기도 해, 오후가 되면 하교하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교실 안까지 들려온다. 교내에는 작은 농장도 있고, 건물 주변으로는 머리를 식히며 사색할 수 있는 숲 속의 오솔길과 연못(자칭 만요이케), 꽃나무 사이사이로 마련된 목제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 모습이 싱그러운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래서인지 도심으로 나가기보다 교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나 교원들이 많다. 물론 필자도 해외 출장 외에는 피곤하게 도교 시내 외출을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주변에는 한국의 대학가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된 옷가게나 근사한 카페, 레스토랑은 없지만, 맛깔스런 라면집이 즐비한 ‘라면 거리’가 인기가 있고, 정갈한 음식으로 인기가 있는 ‘다락방’이라는 한국 음식점, 그리고 학교 북문 앞의 명물 우동집 ‘코우게츠안(光月庵)’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필자가 평소에 소개하고 싶었던 학교 북문 앞 우동집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의도는 음식점 홍보나 맛 자랑이 아니다. 항상 성실하게 자신들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우직한 신념으로 우동집을 경영하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언제 봐도 아름답고, 아무리 바빠도 자신들만의 부부애와 맛으로 이어온 반세기의 고집스런 우동집 역사를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 가쿠게이대학 근처 명물 우동집 ‘코우게츠안(光月庵)’

학교 정문 반대쪽에 있는 테니스 코트와 그라운드 사이의 북문 수위실 옆에는 지금 한참 붉게 물든 장미꽃들이 만발하다. 그 꽃들을 보며 교문을 나서면 11시 방향에 자그마한 우동집이 나타난다. 북문 앞 도로를 건너서 코우게츠안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변함없는 웃음으로 ‘이랏샤이(어서 오세요)!!’ 하며 정감어린 인사말로 맞아준다.
식당 안에는 30명 남짓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단조롭고 소박한 분위기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입구 왼쪽의 작은 방에도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벽에는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게 만들어 온 긴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식당에 가면 동료 교수들과도 마주치지만, 주로 멀리서 일부러 찾아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지난주에는 90세에 가까운 노부모가 이 식당 소바(메밀국수)세트를 먹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와 함께 식사하며 행복해 하는 한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요즘처럼 SNS를 이용한 홍보나 선전, 방송 전파를 타는 등의 광고 같은 것을 그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학교 뒷문 앞의 한적한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노부부는 자신들의 페이스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박리다매 보다는 단골손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평생 천직으로 음식 만들기를 즐기며, 음식에 재료를 듬뿍 사용하고 때로는 계절 진미를 서비스도 해주는 욕심 없이 살아온 이들 노부부의 마음이 정겨워서 찾는 사람이 많다.
하루는 한국에서 온 친구와 갔더니 마침 튀김을 만들고 계시기에 인사를 건네자 친구와 나한테 금방 구워낸 튀김을 맛보라고 주신다. 두릅이나, 어묵 속에 갓 나온 죽순과 새우를 갈아서 넣고 튀긴 상큼한 봄 냄새를 나눠주셨다. 또 어느 날은 아는 한국인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며 처음으로 담근 김치를 제법 많이 나눠주셨다.
물론 필자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단골 확보 차원의 상업적인 의도보다는 단지 좀 특별히 만든 게 있고, 타이밍 좋게 그런 걸 만들 때 이 집에 왔으니 나눠서 먹어보자는, 마치 자식 챙겨주는 부모 마음 같았다고나 할까?

   
▲ 시라쿠라 미츠루(白倉みつる)와 부인 시라쿠라 마사코(白倉 昌子)

이 식당은 늘 변함없는 곳이라서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비교적 복잡한 시간을 피해서 가는 편인데, 비어있는 테이블 앞에 앉으면 남편 분이 녹차를 넣어 주신다. 그리고 주문을 받으면 부인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신다. 익숙한 움직임으로 두 분이 서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전념하신다. 반찬을 꺼내고 튀김이나 우동/소바를 삶는 역할과 음식을 테이블에 나르는 역할은 주로 남편 분이 하신다. 올해 만 78세의 시라쿠라 미츠루(白倉みつる)  씨는 지금도 학교 연구실 등에서 주문이 오면 작은 오토바이로 직접 배달을 하신다.
그리고 음식 간 맞추고 요리 만드는 역할은 부인인 시라쿠라 마사코(白倉 昌子) 씨가 하신다. 올해 만 76세. 인정 많은 어머니 같은 분이시다.

이 두 분이 코우게츠안을 시작한 것은 1963년이라고 한다. 원래 니이가타(新潟) 출신이신 남편 분은 도쿄 아사쿠사에서 음식점을 했었는데, 군마(群馬) 출신의 부인과 만나서 결혼을 하였고, 가정을 가지고 자신들의 점포를 운영하기 위해 우리 학교가 이전하기 한 해 전에 코우게츠안을 개업하셨다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어, 식당은 노부부가 별 욕심 없이 음식 만드는 즐거움으로 운영하고 계신다.

   
▲ 나베야키 우동


이 식당에서 특히 맛깔스럽게 나오는 것은 뚝배기보다 좀 큰 냄비형의 ‘도나베’ 가득히 우동과 각종 야채와 큰 새우튀김을 끓여 나오는 ‘나베야키 우동’이다. 물론 각종 우동과 소바 등을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지면상의 문제가 있다. 더운 요즈음은 오이 해파리냉채와 각종 야채, 양념된 표고버섯을 송송히 썰어 얹은 뒤, 깨를 갈아서 만든 소스를 곁들인 ‘히야시 우동(비빔냉우동)’은 깔끔하다. 오리고기 훈제를 넣고 끓인 우동 ‘니꼬미’도 별미이다. 모든 음식엔 장아찌 절임의 밑반찬과 계절 과일이 따라 나오고, 위장에 여유가 있으면 디저트로 ‘구즈키리(葛きり; 칡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음식. 얇고 투명한 젤리를 칼국수처럼 잘랐다고 하면 느낌이 올까? 그릇에 넣은 뒤, 각종 과일이나 시럽을 곁들여 먹는 디저트 음식)’를 먹는 것도 별미일 것이다. 가격대는 500엔에서 1200엔 정도로, 교내식당 보다는 약간 비싼 편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되면 이곳에서 각종 신문을 읽으며 좋아하는 면 종류 음식을 먹는 것도 시간과 오감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 디저트 '구즈키리(葛きり)'

필자는 2005년 타 대학에서 이곳으로 전근 온 이후, 필자 수업이나 심포지엄, 각종 포럼 등으로 오신 외부 강사나 손님들 혹은 해외 교수들에게 반드시 이 집의 우동 맛을 소개한다. 겨울철에는 도나베(냄비 같은 뚝배기)에 각종 야채와 튀김을 넣고 끓인 우동나베에 큼직한 흰 떡이 들어있는 치카라우동(힘이 넘치는 활력소로 떡을 넣어서 끓인 우동)이 인기가 있다. 어느 해 겨울에 한국의 저명한 학자를 모시고 가서 치카라 우동을 대접했더니, 처음엔 “뭐 이런 누추한 곳엘 데리고 가나?”하는 생각을 했다가 음식을 먹고 나서는 납득을 했다며, 좋은 경험을 했다는 말씀을 공공장소에서 몇 번이나 강조를 하셨다. 변명이 되지만 개인적으로 손님 대접을 할 여유가 필자에게는 없다. 그래서 때로는 점심도 저녁도 굶고 수업을 해야 하고, 항상 캠퍼스에서는 뛰면서 업무를 본다. 그만큼 교육과 연구, 학교 업무에 정신이 없기에 손님을 모셔서 화려한 곳에 갈 수 있는 정신적, 시간적 여유는 없다. 단지,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오신 분들에겐 적어도 일본의 우동/소바 중에서 다양하고 개성적인 음식, 무엇보다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우동집의 고집스런 맛과 분위기의 기억을 선물하려고 일부러 코우게츠안으로 모신다. 우리 학생들이 졸업할 때나 슬럼프에 빠져서 비틀거렸을 때도 코우게츠안으로 데리고 가서 격려를 한다. 인원수가 많을 경우엔 학생들이 가서 부인 마사코 씨의 부엌일을 돕기도 하고, 녹차나 날라야 할 음식들은 우리들이 스스로 가져다 먹기도 한다. 커가는 학생들에겐 정겨운 경험이고, 두 분도 이제는 신뢰를 해서인지 이런 저런 일을 도우면 웃으며 좋아하신다.

   
▲ 히야시 우동(비빔냉우동)

한국에도 학교나 회사주변의 식당들 중 이렇게 인정이 넘친 주객관계로 형성된 좋은 음식점도 물론 많을 것이다. 그러나 팔순이 가까운 노부부가 젊은 사람처럼 부지런히 현역으로 열심히 일하시는 그 모습은 흔치 않으며, 배울 점도 참으로 많다. 게다가 절약한 인건비 등으로 좋은 음식재료를 사용하여 훌륭하고 정직한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어 내는 분들이기에, 요즘처럼 광고나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부실한 내용물로 음식을 만드는 형편없는 음식점들보다는 훨씬 깊은 신뢰감이 간다.

자신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다보니 어느새 50년이 되었다는 코우게츠안의 두 노부부가 오래 오래 장수해, 항상 변함없이 찾아갈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안식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혹, 독자 중에서 도쿄를 찾을 기회가 있다면 코우게츠안의 두 분의 삶과 맛이 스며든 명물 우동/소바를 맛 볼 시간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한 끼 음식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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