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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유럽한인총연합회 박종범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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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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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중견기업을 연상케 하는 사무실의 규모와 분위기가 감도는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영산그룹 서울사무소.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른 아침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겨울 재유럽한인총연합회(유럽총연, 회장 박종범) 서울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만남이후, 한국에 귀국한 것을 계기로 몇 개월 만에 성사된 인터뷰였다.
한국에 귀국해도 지방출장 등으로 진작 시간을 내지 못했다며 덥석 손을 잡는 그에게서 특유의 친밀감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타국에서 여직원 한명으로 시작해 불과 13년 만에 세계 14개국에 25개 사업장을 거느린 그룹으로 일궈낸 성공한 CEO로 인정받는 터라 그동안 그의 성공신화와 기업가정신은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가 최근 박 회장의 활동에 주목한 것은 성공한 한상(韓商)으로서의 삶에 대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해외 한인사회의 오랜 병폐의 하나인 반목과 분열, 특히 한인단체를 둘러싼 자리다툼과 분규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유럽총연 이끈다

박 회장에게 다짜고짜 회사 하나 이끌기에도 벅찰 텐데 하필 분규로 들 끊는 유럽총연 회장직을 맡게 된 동기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저는 한인회장이기전에 기업인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 환원이란 측면에서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외에 살면서 한인회 활동을 해 왔는데, 한인동포사회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박 회장은 유럽총연 회장직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한인회도 이끌고 있다. 영산그룹 차원에서 오스트리아 한인회 후원은 물론 교민 스포츠 대회, 한국유학생후원, 한-오 오케스트라 후원 등 각종 문화 활동을 후원해 오고 있다. 유럽 한인사회의 역사성에 비추어 서로 위로하며 보살펴주는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포사회에 선거 때가 되면 여지없이 불거져 나오는 분열양상으로 한인사회는 실망감을 넘어 외면을 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민족공동체를 표방하는 시대가치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다.
박 회장은 글로벌한인네트워크가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교포들이 지키고 갖추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하는 시점에서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 화합과 통합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한다.

   
▲ 지난 해 12월에 오픈한 유럽총연 서울사무소 현판식

유럽한인회가 그동안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유럽총연으로 재출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1989년 발족한 유럽한인총연합회(유럽총연)와 2010년 출범한 유럽한인회총연합회(유한총연)가 유럽한인회 운영권을 두고 갈등해오다 2011년에서야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총연합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화합과 통합이 있기까지 관점의 차이는 있었으나 박 회장은 역대 총연 회장들의 협조와 두 연합회 회장을 설득해 통합을 이뤄냈다. 통합의 과정에서 반발하는 인사들을 아우르고 설득하는 일은 박 회장의 몫으로 돌아왔다. 아프리카 공장개설과 지사 설립, 세계 여러 곳에 벌려놓은 사업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기인데도 한인회 문제를 해결하느라 3개월 정도 회사 일을 제쳐 놓았다고 당시의 사정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한인회 분열이 지속되면 한인공동체 형성이 붕괴된다고 보고, 유럽총연의 거듭남을 위해 ‘화합과 단결’을 키워드로 설정해 놓고 그의 이름 석 자를 걸었다고 했다.
“통합을 시도할 때 처음부터 임원배정과 정관개정 등을 함에 있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숫자노름’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득권을 던지고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박 회장은 단합의 걸림돌이 돼 왔던 정관개정에 착수해 통합을 시도해 나갔다.
‘화합과 단결’을 모토로 한 박 회장의 구상은 임원구성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신구조화를 위해 한인 2세대 중에서 부회장을 발탁하는 한편, 지역적 안배와 지역한인회 부회장이 총연 부회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무자중심으로 임원진을 구성했다.

   
▲ 통합유럽총연합회 총회에서 김다현 전 유럽총연이 박 회장의 취임을 축하 해주고  있다.

유럽총연이 미국, 일본, 중국 등 타 대륙의 한인회에 비해 규모나 수적인 면에서 열세인데 전 세계 한인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박 회장은 “교포 수에서는 열세이긴 하나 앞으로 유럽총연이 큰집, 장자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세게 내비쳤다. 유럽총연이 앞으로 전 세계 한인사회에 본(本)이 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보여줄 것이라고도 했다. 교포 수만 많고 화합과 단합을 이뤄내지 못하는 타 대륙의 한인회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실질적인 장자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교포청소년의 모국 국토대장정을 구상하다

박종범 회장은 유럽한인회의 화합과 한인사회의 단합을 위해 각종 사업과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으며, 한인차세대육성을 위한 활동에 역량을 쏟고 있다. 또 박 회장은 임기 내에 유럽총연의 기틀을 확실히 잡겠다는 뜻도 밝혔다. 화합과 단결을 모토로 유럽총연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후 미련 없이 차기 회장에게 넘길 생각임을 내 비쳤다. 이러한 신념하에 유럽총연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통상우호조약을 맺은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스트리아한인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박 회장은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 오스트리아 정부 등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120주년 기념행사를 역점사업으로 두고 추진하고 있다. 그 행사의 일환으로 한식 세계화를 위한 ‘한국 음식 조리법’을 올 상반기 중 한글과 독일어로 동시 출간할 예정이다.
오스트리아는 인구가 840만 명 정도에 불과하나 초대 대한민국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국이기도 하고,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대사를 지낸 곳이기도 해 여러 면에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다. 오는 2013년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박 회장은 그동안 한인회를 통해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한인동포50년사’ 편찬에 착수해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인회 많은 사업 중 박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가 바로 ‘한인차세대육성’과 ‘정체성 함양’에 관한 것이다. 2011년 11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도나우 강가에서 펼쳐진 ‘2011 유럽 한인차세대 한국어웅변대회’는 한인청소년 뿐만 아니라 유럽전역 한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행사로 기억되고 있다.
박 회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말을 배워 한국어 웅변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자랑스럽고, 부모님들의 열정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모두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감명 깊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죠!”라며 그때의 감동을 진하게 들려줬다. 웅변대회 전야제가 있던 날은 박 회장이 통합 유럽총연 회장으로 선출된 날이어서 그에게는 더욱 뜻 깊은 행사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이 대회를 매년 지속적으로 개최해 한인차세대 정체성 함양에 기여할 생각이다. 올해는 10월 중순경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유럽한인차세대를 위한 또 하나의 큰 이벤트는 오는 7월(5일~16일, 11박 12일)에 있을 ‘유럽한인차세대 고국 국토대장정’ 행사다. 남북통일 기원을 겸한 이 행사에는 차세대 120명과 국내 대학생이 함께 참가해 여수세계박람회를 참관 후 해남 ‘땅 끝 마을’을 출발해 임진각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대규모 국토순례 행사이다. 박 회장은 이들 차세대들이 모국을 몸으로 체험하며, 한국의 청년들과 교류함으로써 모국사랑과 정체성 함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5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대한축구협회장배 ‘(유럽한인)청소년 축구대회’와 ‘제1회 유럽한인골프대회’도 차세대육성과 유럽한인사회의 단합 일환으로 진행되는 활동들이다. 그밖에 광복절기념백일장, 홈페이지 제작과 소식지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회장은 유럽지역에 사는 많은 한국인 입양인들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다. 그는 유럽이 다문화사회라고 하지만 인종차별도 심한 편이여서 입양인의 정체성 확립 문제는 유럽한인사회가 풀어야할 주요과제중 하나라고 말한다. 매년 개최되는 ‘입양인 체육대회’도 그런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한인사회 행사와 화합과 단결을 위한 활동을 2년의 임기 내에 확실히 다져놓겠다는 각오이다. 때만 되면 불거져 나오는 다른 한인사회의 불협화음과 분열 양상을 유럽한인사회만큼은 일소하겠다는 점에서 유럽총연이 전 세계 한인사회의 장자 역할을 표방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유럽 한인문화화관 개관식 후 참가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 줄 오른쪽에서 3번째가 박종범 회장, 5번째는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

유럽 ‘한인문화회관’ 문 열다

금년 5월초, 박 회장은 또 하나의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그동안 유럽한인사회 숙원사업이었던 한인문화회관이 개관되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 도나우공원 호숫가에 위치한 한인문화회관은 지난 1968년 건축돼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던 정부소유 건물을 리모델링해 부지 1,335㎡에 건평 925㎡ 2층 규모의 한인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하인츠 피셔(Dr. Heinz Fischer)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비롯해 비엔나시 정부,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 한국 지상사, 한인동포들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개관된 한인문화회관은 앞으로 한글학교, 어학원, 노인대학, 유치원 등 한인 교육을 위한 공간, 한인회 사무실과 한인회 산하단체 사무실, 각종 전시 및 행사장 등 한국문화를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교류 마당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박 회장은 “그동안 한인문화회관 건립을 위해 800여명의 교민이 후원에 참여해 약 120만 유로(17억7천6백만 원)의 기금을 모았다.”며, 새로운 유럽총연의 출범과 더불어 유럽한인들의 봉사와 헌신 그리고 신구 조화를 통해 각 분야별로 최선을 다해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한인사회 지도자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달라지고 있는 유럽한인사회의 이상을 전했다.

신뢰로 이룬 기업 - 영산그룹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럽총연 회장에 도전해 2년간의 회장직을 맡은 박종범 회장은 임기 동안 확실하게 유럽총연의 터전을 닦아놓겠다는 각오를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2년 후에는 미련 없이 총연을 떠나 일궈놓은 영산그룹 경영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해외에서 시작한 기업이기에 한인회와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지만, 더욱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일선에서 진두지휘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영산그룹이 있기까지는 그의 몸에 배인 성실함과 신뢰가 바탕이 됐다. 영산그룹은 199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설립된 유럽 최대 한인기업이다. 한국의 자동차와 부품, 석유화학 제품 등을 유럽과 CIS 국가에 수출하고 있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제품의 물류, 유통, 제조, 판매 등을 담당하고 있다.
박 회장은 해외에 회사를 설립하면서도 외래어보다는 한국식 이름을 회사명으로 사용했다.
“영산(榮山)의 의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광주근교의 영산강 마을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영산(靈山)이란 뜻을 담고 있는 나의 가톨릭 세례명인 카르멜로와 관계가 있습니다. 구멍가게 수준으로 시작했지만 내 신념과 각오를 이름에 걸고 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농사를 짓던 아버지(박흥두, 대학 4년 때 작고)와 어머니(백남례, 86) 사이 3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광주 살레시오고를 졸업하고 조선대를 전체 수석으로 입학(경영학)해 4년 장학생으로 다녔다. 한 때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포기하고, 군에 입대 후 국내 모 대기업에 취업에 무역 업무에 종사했다. 청년 박종범은 모든 일에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인물이었다. “직장생활 하면서 1년 365일중 350일 정도를 회사에 나갔어요. 타고난 소질은 별로 없지만 몸에 밴 성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종범의 성공신화. 그의 사업 성공담은 성실함과 신뢰에 토대를 두고 있다. 1996년 기아자동차 오스트리아 법인장으로 주재했던 박 회장은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나면서 다른 회사로 흡수되자 위기를 맞이했다. 귀국을 해도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눌러 앉아 살길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물러나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보다는 현지에서 ‘홀로서기’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버텨보자는 오기도 발동했다고 귀띔한다. 현지에 남기로 한 그는 한국에 있는 집과 재산을 팔아서 비엔나에 여직원 한명을 채용해 ‘영산한델스’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처음 잘 나가던 회사는 하자있는 제품을 모르고 선적하는 바람에 자본금의 15배가 넘는 클레임을 당해야 했다.
“앞길이 암담했습니다. 방법은 바이어들을 찾아가 통사정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간신히 그들을 설득해 2년간의 상환조건으로 그 사건을 매듭질 수 있었지요”라며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회상했다. 위기에 처할수록 강해지는 한국인의 끈기와 열정이 그에게 살아났다. 자리가 채 잡히기도 전에 닥친 역경과 시련은 죽기 살기로 뛰고 달리는 통로가 됐다. 그런 그에게 바이어들도 신뢰를 보냈고 아이템을 소개해 주는 등 무역사업은 점차 다른 나라로 확장돼 나갔다. 연중 220일을 출장으로 보내기도 했고, 한 달에 22번의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사업초기 한국산 사탕 포장용 필름 소싱(sourcing) 사업을 시작으로 점차 한국산 유화 제품을 우크라이나 등에 공급하게 되었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인 배터리나 타이어, 알루미늄 휠 등의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유럽시장에 내놓는 한편 자동차 대리점, 금융 시스템 개발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2005년 오스트리아 최대은행인 ‘뱅크 오스트리아(Bank Austria)’와 손을 잡고 수출무역금융을 통해 한국산 자동차를 동유럽에 수출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그로인해 2008년 ‘뱅크 오스트리아’로부터 ‘올해의 고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영산그룹이 다루는 무역제품은 한국산만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품품질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에서도 유럽산에 비해 뒤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산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져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영산그룹은 현재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한국 등 여러 나라에 차량개조, 생산, 운송 등을 담당하는 공장을 운영 중이며, 아프리카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친환경사업인 태양광관련 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는 사업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신뢰, 열정과 집념’이라고 답했다. 그의 영산그룹 한국법인 강남사무실에는 ‘사람존중(Respect)’, ‘정직과 성실(Integrity)’, ‘신속(Speed)’, ‘탁월성(excellence)’이라는 경영지침이 붙어있다. 이 경영지침은 2009년 세계 13개 법인 대표들이 모여 단합대회를 통해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박 회장과 임직원들이 하나의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 박종범 회장 가족.

박 회장의 가족은 부인(송효숙, 51)과 두 아들(건영 27, 건호 25)이 있다. 그의 아내는 음악, 미술, 체육관련 기획사를 설립해 한국과 오스트리아 간 코디업무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난타’ 초청공연 등을 기획하고 있다. 두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비엔나에 살았기 때문에 병역의무가 없으나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둘 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큰 아들 건영 씨는 결혼 해 비엔나에 거주하며 아버지 사업을 돕고 있고, 작은 아들 건호군은 올 7월 런던 정경대 법학과를 졸업하면 런던의 가장 큰 법무법인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군복무를 지원한 두 아들과 이들을 입대시킨 박 회장의 이야기는 멀쩡한 신체를 훼손하며 군 입대를 회피하는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사업과 활동에 대해 찬사를 멀리하는 박 회장의 모습은 다른 교포들과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성실했던 평범한 직장인에서 단 시간 유럽 최대 한인기업가로 성장한 박 회장. ‘돈이란 항상 도망하는 성질이 있기에 돈을 쫓기보다 꿈과 일을 묵묵히 추구하며, 당장의 이익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자 했다’는 그의 삶의 철학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함이 가장 비범한 것’임을 읽을 수 있었다.
“세상은 넓고, 미래는 노력하는 자의 것입니다.” 박 회장이 인터뷰 말미에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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