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24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당한 피해자들이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을 빌미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요구를 거절해왔고, 일본재판소도 이들의 배상청구를 수차에 걸쳐 기각한 바 있다.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이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어서 한일 간의 법적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배상책임이 끝났다는 입장이어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요구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국내에 진출해 있는 해당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한 배상만을 청구해야 할 입장이다.

한일협정을 빌미로 전후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외면해온 일본정부의 역사적 인식부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1960년 독일과 프랑스는 한일협정과 유사한 포괄협정을 했지만 프랑스가 강제징집자의 국가보상을 추가요구하자 ‘독⋅프 이해증진재단’에 당시 2억5천만 마르크를 출연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 8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고, 일본정부를 통해 확인된 인원만도 80여만 명에 이른다. 종전이 되자 일본기업들은 조선인노무자의 급여, 수당, 부조금 등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가 맥아더사령부 때에 공탁했고, 2010년 일본정부가 우리정부에 전달한 자료에는 조선인노무자의 공탁금은 1억2661만 엔(17만3213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2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한일공동재단’ 설립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정부는 한일협정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인도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러한 재단 설립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정부에 신고 된 강제동원 피해자 22만6천여 명 중 생존자는 2만5천여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의 문제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국내에 진출한 해당 일본기업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지만,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정부나 수혜를 입은 기업들(포스코, KT, KT&G) 또한 이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수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 더불어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와 일본기업들(미쓰비시, 신일철제철, 미쓰이, 아소 등)을 상대로 한일공동재단 설립에 나서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대법원이 ‘일본 재판소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고 한 판결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상관없이 식민지배에 따른 불법행위로 피해를 당한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차제에 강제동원 된 피해자 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도 이뤄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뤄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