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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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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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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코리아 / 최윤주 편집국장 ]


   
조선의 선비들은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했다. 만절필동. 글자 그대로를 풀이한다면 ‘만 번을 굽어져도 반드시 동쪽으로 간다’는 뜻이다.
“군자는 물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냐?”는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대답했다.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 군자의 의지와 같다.” 중국 황하강의 물이 아무리 많이 꺾여 흘러도 결국에는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역사 또한 반드시 순리대로 바른 방향을 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세태는 그렇지 않다. 한 줌의 권력이 국민을 우롱하고, 한 줌의 재벌이 부를 틀어쥐고, 한 줌의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 공자가 말하는 순리는 옛 교과서 속에 갇혀버린 지 오래다.

껍데기는 가라. 시인 신동엽의 외침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참여시의 절정이라는 극찬을 받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뒤를 잇는 기념비적인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시는 4.19혁명의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한다. 동학혁명의 순수성만 살리고 껍데기는 가라고 분노한다. 분단의 질곡 앞에 통일조국의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의 뜨거운 분노가 발표된 건 1967년. 그로부터 45년 남짓이 흘렀다. 그러나 오늘도 대한민국은 껍데기가 판을 치고 있다. 정치는 이미 거짓과 위선의 도를 넘은 지 오래다. 국민들을 더 이상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판을 치는 대표적인 곳이 비틀거리는 정치계다.
종교계도 다를 바 없다. 믿음의 진정성과 신앙의 경건함을 찾기 어렵다.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부귀영화를 쫓는 부끄러운 껍데기 신앙이 활개를 친다.

언론마저 제 기능을 못하니 힘을 가진 자는 무한권력을 휘두르고 타락한 세상은 베일에 가려진다. 껍데기 세상 속에서 언론의 죄는 가장 무겁다. 결국 뜻있는 언론인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MBC, KBS, YTN, 국민일보, 연합뉴스 등 한국의 주요 언론사는 “공정방송 회복”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무한도전에서 벌이던 노홍철과 하하의 동갑내기 힘겨루기 결과가 오리무중에 빠진 지 벌써 석 달째다.

결국 지난 18일(금) 세계 최대 언론인 조직인 국제기자연맹(IFJ)이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제기자연맹은 친정부 인사를 언론사 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촉발된 사태이니만큼 “한국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해결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정치적 파업은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해법이다.

대중에게 언론에 의해 보도된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 된다. 반면 보도되지 않은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대중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론이 만들어낸 ‘껍데기’의 볼모가 된다. 정치와 언론, 경제와 언론이 분리돼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껍데기가 되기를 거부하는 언론사의 파업은 25일(금) 현재, MBC 노조 117일, KBS 새노조 80일, YTN 78일째다.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언론의 파업을 바라보며, 만절필동의 의지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언론인과 이들을 격려하는 한국 국민들의 인내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절규가 오늘도 굳건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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