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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법원의 개인청구권 판결과 한일관계
최영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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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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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 최영호 교수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이들을 고용한 일본 기업체들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5월 24일 김능환 대법관이 주심을 담당한 대법원 제1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 소송에서 이와 같이 판시했다. 고(故) 박창환 씨 등 5명이 부산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하여, 여운택(89) 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각각 부산고법,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인 징용피해자 개인청구권 관련 소송에서 처음으로 원고 승소가 이루어진 사례가 되었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하여 손해배상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같은 내용의 소(訴)를 기각한 사실이 있지만 그 이유에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통치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했다"며 "이러한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아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통해 원고들의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에 대한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의하여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률의 관점에서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은 옛 미쓰비시중공업㈜, 옛 일본제철㈜과 각각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평가되며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되었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 성실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금까지의 사법부 주장을 뒤엎는 것으로서 단기적으로 한일 양국에 불협화음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정부가 역사교과서에서 ‘강제연행’이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삭제하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오고 있는 것에 반하여, 한국정부는 이 문제를 더욱 추궁해야 하는 서로 다른 방향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위헌 판결 이후 한국정부가 외교교섭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하고 나선 한편 일본은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불쾌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제 징용노무 피해자들이 국내외에서 관련 일본기업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것이 분명해진 이상 한국정부로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다가 일본기업에 대한 징용노무자의 개인청구권 문제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일본 정부와 기업이 쉽사리 피해 보상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한일양국 사이의 상호 인식에도 부정적인 분위기가 강화 가능성이 크다. 5월 25일자 아사히신문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주장해 온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고 일본군위안부 등 일부 사안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일본과 협상해 왔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다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여 “한일 양국이 협정으로 해결한 피해보상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일본 입장에서 보면 밥상을 뒤엎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한국에 있는 관련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할 수도 있으며 관련 일본 기업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한국 정부는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로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어긋나는 대응을 해야 한다.

이처럼 징용노무자의 개인청구권 문제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가져오게 된 배경에는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의 소극적인 태도와 함께 한국정부의 방관적이고 무책임한 자세가 있었다.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이 문제를 그때그때 봉합해 왔고 양국의 사법부도 이러한 양국 정부의 태도를 용인해 온 것이다. 2010년 3월에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공탁금 자료 사본을 전달했을 때에도 개인청구권 문제는 양국에서 더 이상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사법부가 뒤늦게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고 공탁금 자료에 나타난 일본 기업들이 이제 모두 개인청구권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에 노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여 때늦기는 하지만 이제는 한일 양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피해자와 화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은 그간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가 부단하게 제기해 온 해법이다. 피해자 개개인의 소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양국 기업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방법이다. 피해자들로부터 위자료 청구 소송이 제기되어 온 포스코가 1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한 결정도 피해 보상 문제를 법률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피해자의 역사적 화해는 독일에서 2000년에 출범한 ‘기억·책임 및 미래 재단’이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미적미적 해 온 화해의 움직임에 기폭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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