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5.21 화 15:25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칼럼
재일동포 바이올린 명장 진창현 선생 타계
최영호 교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5.1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 최영호 교수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명장 진창현(陳昌鉉) 씨가 지난 5월 1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유족으로는 부인 이남이 여사와 2남 1녀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언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과 일부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15일 도쿄도 조후(調布)시에서 조촐한 가족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필자는 2004년 ‘한일시평’ 제26호를 통해 진창현 선생의 업적을 소개한 바 있는데, 금번 선생의 비보를 듣고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일본판(河出書房新社, 2007년)을 다시 집어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그의 생애를 간략히 반추해 본다.

1929년 경북 김천에서 부친 진재기 씨의 8자녀 가운데 6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천대선 씨는 후처로 들어가 진창현 씨와 그의 여동생을 출산했다. 남아 선호 분위기가 강한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왜소한 체구에 허약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반면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마을 어귀의 개천에서 잡은 은어 잡이를 하면서도 자신과 같이 몸이 약한 은어라서 잡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할 만큼, 그는 일찍부터 섬세한 감성을 보였다.

   
▲ 진창현 바이올린 명장

그는 14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석탄을 나르고 인력거를 끌면서 혼자 힘으로 천신만고 끝에 메이지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대학을 마쳤어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의 길이 막혔고 그는 우여곡절 끝에 산골에 들어가 독학으로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1961년 평생의 반려자 이남희 씨와 결혼하여 어려운 경제적 여건 가운데 더욱 바이올린 제작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렵사리 만든 작품을 도쿄에 나와 세일하러 다니는 가운데 일본의 바이올린 거장 시노자키 히로쓰구(篠崎弘嗣)를 만나게 된다. 결국 시노자키에게 그의 잠재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그의 작품에 판로가 마련되었다. 이를 계기로 도쿄로 이사하여 본격적인 현악기 제작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1976년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회 '국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총 6개 부문 가운데 5개 부문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1984년에는 미국의 바이올린 제작자 협회가 그에게 Master Maker 칭호를 부여했다. 검증이 필요 없는 명장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것은 세계 언론을 놀라게 했고 그 후로 그는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자서전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되는가 하면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한일 양국의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만화, 신문, 라디오 등을 통해서 그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수많은 음악인들이 그가 제작한 바이올린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일본의 고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판되고 있는 영어 교재 ‘COSMOS English Course 2’(三友社)도 그의 성공 스토리를 ‘The Mystery of the Violin’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그가 성공과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숱한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자연과 같은 맑은 소리의 바이올린을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꿈을 결코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고 나서도 그는 계속 시행착오를 감행하는 가운데 보다 나은 바이올린 제작을 하겠다고 하는 목표를 계속 고집했다. 예를 들어 그는 이상적인 니스의 색깔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징어 먹물이나 식물 염료, 지렁이, 매미, 심지어는 갓난아이의 변 등을 배합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자서전에 술회했다.

광주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그는 지난 2002년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광주시립미술관에 수백억대의 콜렉션을 기부한 사실을 알고 자신도 광주시립미술관에 악기 4점을 기증했다고 한다. 그가 기증한 제1 바이올린에는 광주호, 제2바이올린에는 대구호, 비올라에는 한라호, 첼로에는 백두호라는 이름을 붙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한 남북통일을 염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