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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꼼수에는 말보다 구체적 행동으로 대응해야한다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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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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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상임이사
2006년 1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높은 정치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총리직 사퇴 전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여 상·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여름에 방미 일정을 잡고서 총리실 내에 ‘고이즈미 방미준비위원회’를 꾸렸다. 목표는 양원합동회의 연설이다. 미국의 양원합동회의 연설자 결정은,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인정을 받는 국가원수 급을 하원의장이 양당의 상원대표들과 합의해서 의회로 초청을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국가원수(대통령)들이 욕심을 내는 이벤트다. 합동회의 연설이면 양 국가 관계의 절정을 상징한다.

재미한인 - 일본과의 전쟁 그 첫 번째

고이즈미 총리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본인이 이끌고 있는 자민당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선 이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자민당 권력은 미일관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2차 대전 직후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용서하고 미국에 복종토록 하기 위해 전범자들을 내세워 창당한 정당이 자민당이다)
2006년은 미국으로부터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고 그로 인하여 한미관계(부시와 노무현)가 심각하게 어려웠다. 역대총리 중에 가장 지독한 우파정치인인 고이즈미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밀착을 통해서 아시아의 맹주를 호언장담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일 신사참배를 하고, 아시아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라크전쟁에 들어가는 일본 돈을 생각하면 부시 대통령에게 고이즈미 총리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존재였다.
필자는 일본이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연방의회 연설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를 막아야겠다고 판단, 그 방도를 찾기 위해 연일 고민을 거듭했다. 그 때 어느 곳의 누구로부터 힌트를 받았다. 그는 헨리 하이드 하원외교위원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하원외교위의 보좌관을 만났고 서너 차례 시도 끝에 위원장을 만났다. 한인유권자센타(현, 시민참여센터)는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면 연방의회 연설을 환영 한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태평양전쟁을 경험한 헨리 하이드 위원장은 한술 더 떠서 같은 내용의 서한을 외교위원장 이름으로 일본의 총리실에 전달해 주었다. 외교위원장의 편지를 전달받은 ‘고이즈미 방미준비위원회’는 연방의회의 양원합동회의 연설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2006년 5월30일자 동경발 연합뉴스). 미주한인들이 정치력으로 워싱턴에서 일본을 꺾은 첫 번째의 사례다.

친한(親韓)의원 만들어 놓기 - 그 두 번째

연방의원들을 만나면 아주 답답한 문제에 봉착한다. 아시아문제에 관해서는 오직 중국과 일본만이 있다. 북한문제에 관해서도 일본과의 결합으로 중국에 전선을 친다. 한국문제를 언급하면 거의 대부분 친일본이다.
필자는 미국의 등에 무임승차해서 돈만 벌어들인 일본의 대미전략을 눈치 챘다. 그래서 일본계로 교육된 의원을 한국계로 끌어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석권해서 워싱턴정국이 여소야대가 되었다. 각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식하지만 소수당이 더 바쁘다. 소수당이 되었지만 상임위의 간사자리를 맡아야 다음번 다수당 때에 위원장이 될 수 있다. 유권자센터는 일본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의원을 사귀었다(지지하고 후원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운 좋게도 그 의원이 위원장이 되었다. 일본이 그 위원장을 접촉하려고 할 때에 먼저 필자가 그 위원장을 자주 찾아다니면서 한국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정책을 구상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연방의회의 어느 모임에서 일본 쪽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일본의 끈(돈 로비)으로 조직해 놓은 의원들을 [한인들이] 다 빼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했다. 워싱턴서 일본과 마주친 두 번째의 일이다.

‘위안부 결의안’의 쾌거 - 그 세 번째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어차피 일본 혼자로서는 안 되고, 한국과 결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을 한번 크게 눌러야 할 궁리를 했다. 우리에게 굴러 들어온 이슈가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다. 더 고마운 일은 캘리포니아에서 이와 같은 결의안을 만들어 낸 ‘마이크 혼다’란 일본계 의원이 하원의 대장인 ‘낸시 펠로시’의 오른팔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전국의 한인동포들이 들고 나왔다. 2007년 7월30일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역사적인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 시켰다. 더욱 고마운 일은 “한인들이 가장 모범적인 풀뿌리 운동으로 인권을 바로 잡았다”라고 목소리를 높여주었다. 거의 9백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써 가면서도 이를 막지 못한 일본은 드디어 60년 전범권력인 자민당이 무너졌다(2009년 한국의 강원대학교를 방문한 마이크 혼다 의원의 연설에서).
이때부터 일본이 미국 내 한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한국은 미주동포가 있고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라고 했다.
외교위내 아태소위원장이 필자에게 “미주한인동포(Korean American)들이 일본에게 강력한 어퍼컷을 날렸다”고 표현했다. 워싱턴서 일본과 맞붙은 세 번째의 일이다.

‘독도’ 표기를 바로잡다 - 그 네 번째

시도 때도 없이 ‘독도는 우리 땅’이란 신문광고를 접한 미국지명위의 직원이 ‘독도’의 표기문제를 고민 고민하다가 일본과 한국의 분쟁지역으로 오판해서 ’독도‘라고 되어 있는 명칭을 일본의 주장인 ’다케시마‘도 아닌 중간이름인 ‘리안쿠루트 락’이라고 하려고 했다. 이 정보를 접한 미주동포들이 전국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자기 지역 정치인들에게 전화하고 팩스 보내고 서명하고 결국엔 대형 버스로 워싱턴 의사당으로 몰려갔다. ‘독도’란 이름 그대로 놔두지 않으면 미국에 큰 손해가 된다는 논리를 갖고서 한인밀집지역구 의원들의 사무실 앞에서 거의 농성을 했다. 의원들이 백악관과 국무부에 한인들의 뜻을 강력하게 전달해 주었다, 결국 지명위원회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이 해소될 때까지 지금 있는 그대로 ‘독도’라고 칭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7월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한인들에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산케이신문이 썼다. 워싱턴서 일본과 맞붙은 네 번째 케이스다.

펠팍 ‘위안부 기림비’ 건립 - 그 다섯 번째

2010년 여름, 3년이 지났음에도 연방하원의 만장일치 결의안(일본군위안부결의안)에 일본정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뉴욕의 한인들이 결의안에 동의해 준 186명의 하원의원들에게 “일본이 미국의 하원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따졌다. 하원외교위원장은 직접 성명서를 내서 일본정부에 발송까지 했다. 뉴욕의 한인동포들은 내친김에 뉴저지 펠리세이즈파크 시에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 기림비”를 세웠다. 잊지 말도록 후대들에게 교육 시키자는 내용을 새긴 동판을 화강암에 박아서 땅을 파서 세웠다.
2010년 10월23일 토요일 오후였다. 미전역의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조형물을 보면서 아예 유태계의 홀로코스트에 위안부문제를 결합시켰다. 히틀러의 학살과 일본군의 강제종군 위안부의 범죄를 ‘하나로’ 묶어 버렸다. 유태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언급할 때마다 일본의 위안부문제가 자동으로 등장토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의 발톱에 대못을 튼튼하게 박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위안부 생존자를 뉴욕으로 초청했다. 90세에 가까운 동·서양 피해자 할머니들이 손에 손을 잡고서 일본 유엔대표부의 문을 열어젖혔다. 2011년 12월15일이었다. 후일담으로 전해 들었지만 이 일이 있고난 후에 일본외교관들은 “아! 일본이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이 되기는 틀렸구나!”라고 중얼거린다고 한다. 일본이 뉴욕의 한인동포들에게 이를 갈 것이 눈에 선하다. 일본과의 다섯 번째 케이스다.

일본, 미주동포의 힘 절감

한국정부가 미주한인동포들의 역할과 실력에 관심을 갖기도 전에 오히려 일본이 먼저 눈치(관심)를 챘다. 지난 만 5년 동안(위에서 열거한 내용들) 미국에서(워싱턴서) 일본은 한국에게 백전백패했다. 최근의 ‘동해병기’문제도 한인동포들의 결집력이 벌써 절반을 해 냈다. 미국 내 한인들을 그대로 뒀다가는 일본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을 예상한 반응이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다. 뉴저지 펠리세이즈팍(이하 펠팍) 시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울 때에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던 일부 여론에 쐐기가 박혔다. 인구가 겨우 1만정도 넘는 작은 동네에 일본의 고위 외교관이 찾아왔다. 일본은 펠팍이란 작은 동네와 외교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거액이라도 요구하면 줄 테니까 제발 그 기림비를 철거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역시 일본다운, 일본만이 할 수 있는 꼼수외교다.
이 사실은 제임스 로툰도 펠팍 시장의 즉각적인 폭로에 사방팔방 퍼져나갔다. 일본의 생각은 펠팍의 기림비만이 아니다. 풀뿌리 정치력으로 연방의원들을 움직이는 한인들의 전략을 방해하겠다는 속셈이다. 플러싱에 제2의 위안부 기림비 건립 추진을 눈치 챈 일본이 뉴욕시장실에 허가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은 장차 세워질 기림비에 대해서는 아주 은밀하게, 이미 세워진 것에 대해서는 아주 공개적으로 외교전(방해공작)을 펴고 있다.

팰팍 ‘기림비’ 찾아가보자

일본의 이 교활한 작전은 한인사회를 교란시키자는 의도이다. 벌써 한인사회는 흥분했다. 많은 한인과 단체들이 한인 미디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소리만 높이는 감정표현은 금물이다. 일본에 실제적으로 효율성 있게 맞서기 위해서는 목소리와 함께 행동을 해야 한다. 목소리 이전에 먼저 펠팍의 기림비를 찾아가 한 송이 꽃이라도 바치고 우리의 모진 역사를 상기하며, 그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정말로 분노하는 사람은 아주 조용히 묵묵하게 기림비를 건립하는 일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일본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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