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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인류사의 과제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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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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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위안부' 소녀상

93주년을 맞는 3.1절 날 집필을 하고 있을 때, 필자의 제자가 ‘오늘은 3.1 독립운동이 있었던 날’이라며 메일을 보내왔다. 세계 곳곳을 혼자 다니며 사회의식을 키워왔고, 필자와 사적지 답사도 같이 한 이 제자는 한국어도 꽤 능숙하게 구사를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역사를 더 전해주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제자의 연락을 받고나서 한국 뉴스를 체크하다 보니 애국가나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글로벌 시대라고 떠들면서 영어에 대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배우지만, 정작 외국에 나갔을 때는 자신들의 고향이나 자국에 대한 설명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도 모르는 한국인이 한국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설명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한류 문화나 IT 선진국이라는 정도의 이야기꺼리로 교류하면 그것만이라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필자는 적어도 중요한 한국의 시대적 전환기 정도는 초등학교 때부터 상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기초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숱한 동서양의 유학생들을 지도해 온 필자가 평소에 느껴온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나 정치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을 정도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과 교류를 하려면 상대적으로 기본적인 자신의 역사 정도는 알아야 하고, 나라에 대한 설명도 필요할 것이다.

한편, 앞의 뉴스와 더불어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태도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11번째 ‘수요 집회’에 관한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2월 23일, 필자는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소재한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보러 갔다.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의식을 해 온 터라 잠도 설치며, 친구가 출근하며 차려준 김치찌개를 먹고선 일본 대사관 앞으로 갔다.

   
▲ '일본군위안부 소녀상'을 방문한 필자(이수경 교수)

그런데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보다가 뒤에 걸린 글들을 읽고 있자니 경찰들이 와서 필자를 저지한다. 당혹스러웠다. 외국공관을 보호하는 차원이라면 일본대사관 앞의 도로를 경계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소녀상이 있는 곳은 대사관의 맞은편 도로 옆이었고, 그 옆에는 일반 호텔로 가는 통행길이다. 어떤 주의 경고도 붙어 있지 않고 설명문도 없다. 그런 곳에서 일반 시민들을 저지하며 우리는 경찰로서 이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게다가 필자가 그곳에서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건만 무조건 안 된다는 이유를 늘어놓는 경찰들의 설득력 없는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물론 화제가 되고 있는 상징적인 소녀상이기에 경찰들이 민감하게 대응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나라가 무력했기에 희생당했던 아픔의 흔적을 주장하는 그 소녀상을 양심 있는 일본인도 반성의 차원에서 일부러 방문하는 곳이건만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것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를 안고 있는 이 사회의 불행한 모습일까? 국가 위상을 드러내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듯하여 그곳에 모여들던 경찰들 모습이 아직도 서글프게 뇌리에 남아있다.

한편, 같은 날 소개된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인 구로다 씨의 다음 코멘트도 인상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위안부 출신의 나이 든 여인들이 지금은 매스컴으로부터 독립유공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이라고 하면서 이를 특이한 한국인의 역사관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면서 가해 측인 일본의 보수언론인으로서, 남성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코멘트이기 때문에 역사관이 피해자 측과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고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여기에는 한국사회가 자성해야 하고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몇 가지 내재되어 있기에 지적해두고 싶다.

1. 나이 든 여인들, 즉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보다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지 않은 그 분들이 그렇게 심신의 멍투성이 상흔과 트라우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요 집회를 계속 하려는 의지는 일제강점기 자신들의 삶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고, 그동안 훼손되어 온 명예를 회복하려는 인간 회복을 향한 투지이다.

2. 오랜 유교 사상으로 뿌리 깊게 박혀 온 여성들의 정조관념이 사회적 도덕으로 중요시 여겨졌던 시대,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만신창이 된 신심을 이끌고 고국에 돌아온 그녀들을 대변해 줄 매스컴도 없었고, 더군다나 남성 중심의 군부정권은 유린된 그녀들의 삶에 관심을 두거나 도울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또 속히 산업화와 공업화를 일궈서 한국사회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한일 양국의 무수한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에 한일협정을 맺었고, 민심을 무시한 채 폭압적으로 휘어잡으려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내팽개쳐졌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인간적 권리 및 ‘위안부’로 끌려 다녔던 일생에 대한 명예회복과, 여성으로서의 치욕적 삶의 내용을 윤정옥, 이효재 등의 여성 연구자들이 치밀하게 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요시미 요시아키 등 양심적 학자들은 자료 발굴 및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를 추궁하며 그때까지 일본정부가 은폐하려고 했던 내용들을 밝혀내기도 했다.

점차 그런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볼 시민들의 자각과 의식의 고양,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시되기 시작했고, 한국 언론 또한 민주화운동 이후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비중을 두고 취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색깔 논쟁 등으로 한국의 언론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으나 시민들의 고발문화(SNS 등의 발달) 및 옴부즈맨 같은 사회 책임 의식이 높아진 만큼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각을 하고, 사실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90%이상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왔던 그동안의 한국 언론의 무심함은 분명 자성하여야 할 부분이고, 대중영합주의에 휩쓸리는 것보다 자신들의 신념으로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언론의 사회적 시대적 책임에 대해서도 앞으로 중책을 느낀 행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구로다 씨로서는 그가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한국 역사문제에 공감하고 이해할 내용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한국 측과는 역사 인식이 절대 일치될 수 없는 가해자 측 시점으로 일본의 근대사를 옹호해 온 입장이기에 한국의 움직임이 불편한 것이다. 물론 그가 전쟁의 희생이 된 그 분들의 삶을 자신의 어머니나 누이, 혹은 아내의 입장으로 이해를 했다면 결코 그런 코멘트가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적인 대상으로 만들어 과거 일본군의 책임 회피를 도모하고, 한국을 배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 ‘창녀’ 등의 호칭으로 비하하며 일본의 미래까지 무책임한 나라로 몰고 가려는 어리석은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의 침략 전쟁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삶이 위안부로 전락되거나 그토록 매도당하며 굴욕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 발단이었으며, 과거 잘못 된 전쟁에서 파생된 행위에 대해 비열하게 변명하고 부정하는 태도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런 터전 위에 과거의 책임 문제를 하루 속히 씻고 글로벌 시대 동반자로써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숲을 보는 혜안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쟁을 모르고 태어난 차세대를 짊어질 우리의 후손들에게 응어리를 남기지 않는 책임 있는 행동이다.

격동하는 글로벌 시대의 일본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깔끔한 역사 청산과 더불어 신뢰받는 이웃나라와의 파트너십이 절대필요하다. 고위 정치가나 특권층의 조상들이 행했던 침략 전쟁이기에 그들 후손인 2~3세 의원들이 합리화하며 미화시키려 하는 행위는 되레 나라의 이미지를 망치는 무책임하고 수준 낮은 정치 놀이임을 자각해야 한다. 일본은 이제 책임질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보여 전쟁 없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선진 일본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일제강점기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한은 특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는 같은 여성으로서 가슴이 미어지는 증언을 들어야만 했었고, 1923년 9월의 관동대진재의 희생자 구조나 전쟁 중에 혼혈정책으로 한국인과 결혼하면 우생학적으로 우수한 인자가 배출된다는 정책으로, 한국인이 좋다며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버림을 받고 귀국하지 못한 ‘나자레원’의 여인들의 삶과 더불어 필자에겐 참으로 힘들게 마주해야 했던 근대사였다.

필자가 90년대 말에 박사 논문을 준비할 당시, 교토 리츠메이칸대학의 이케우치 야스코 교수(당시 필자를 많이 도와주셨던 이케우치 교수는 한국과 많은 인연을 맺었으나 아쉽게도 올해로 정년퇴임을 했다) 등의 초청으로 증언을 하러 오셨던 김순덕 할머니(지금은 고인)는 통역을 맡았던 필자에게 위안부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숨쉬기가 고통스러워 힘들다며 내 품에 안기셨던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그 후 당시 나눔의 집을 맡고 있었던 혜진 스님의 안내로 몇 번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가서 할머니들의 위안부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식사를 나누면서 가슴이 미어져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미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 필자는 오랫동안 1875년 이후의 일본과 얽혀진 우리 근대사를 다루며 희생이 되었던 많은 분들의 아픔이나 반복되는 불행의 구조, 그분들의 삶을 규명하여 왔으나 지금도 과연 필자가 어디까지 그분들의 아픔을 덜어드릴 수 있나하는 번민에 휩싸이곤 한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탄광촌 등의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시간만 나면 관계자의 무덤을 찾아 가서 그들의 영혼을 되새겨보는 시간도 가져보기도 했다.

세미나로 제자들을 데리고 대마도나 나가사키에 여행을 갔을 때 별칭 ‘무덤 투어’라고 불릴 정도로 묘지만 찾아 다녔던 기억도 있다. 당연히 1906년에 대마도에 유배되었던 항일투사 최익현의 순국비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였고, 그런 맥락에서 올1월 말 몇 년 걸린 왕산 허위의 항일 운동과 체포에 관련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여 학교 측에서 부탁받은 인권 교육 수업에 인류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교육적 사례로 소개를 시작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된 것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처에서 많은 민족의 여성들이 희생되었다.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이국땅에서의 전쟁에 염세적으로 된 군인들이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고, 젊은 나이의 성적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여 현지 민간인의 강간 행위가 속출하자 그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터의 성적 노리개로 여성들을 전쟁터로 불러들인 일본군 위안부 제도. 그것은 민간인 업자가 운영했다고 주장하며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나 근본적 원인은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 국가 규모로 행해진, 그래서 창녀니 매춘부 등의 모멸스런 용어로 치부하고 싶은 수치스런 근대사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다른 분쟁 지역에서 비인간적인 구조로 행해지고 있는 인류의 불행사로 되풀이 되고 있음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과 군인과 여성’이란 폭력적 구조는 일본의 패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내전 중인 아프리카 각지를 비롯한 지구촌에서 발발하는 무력 분쟁터에서 위협과 협박으로 절제력을 잃은 소년병들 혹은 강압에 견디지 못하고 마약을 취하게 된 비정상적인 상태의 병사들에 의한 집단강간 살해 구조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하루속히 군 위안부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지금도 사욕적인 무력 분쟁으로 인해 야만적인 행위가 횡행하는 지역에서 아비규환의 공포 속에 희생되는 수많은 인명을 구하는데 한일 사회가 협력하여 지구촌의 불행을 막는 선진 사회의 파트너십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전쟁을 경험하고 폐허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일사회가 세계에 보일 성숙한 모습이자 교육적 시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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