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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공태(吳公太) 신임 중앙민단단장(中央民團團長) 그의 귀추가 주목된다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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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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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 최영호 교수
지난 2월 23일 도쿄 민단중앙본부에서 열린 민단 중앙대회에서 임기 3년의 신임 단장으로 오공태(吳公太, 65) 부단장이 선출되었다. 민단 선거관리위원회에 단장 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오공태 부단장과 김창식(金昌植, 74) 감찰위원장 두 사람이었다. 투표 결과 대의원에 의한 직접 투표와 선거인에 의한 우편 투표를 합하여 총 524표가 나왔다. 이 가운데 2표가 무효 처리되었고 나머지 522표 가운데 오공태 후보가 381표를 얻어 많은 득표 차이로 상대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2월 11일부터 19일까지 이루어진 합동연설회를 비롯하여 선거 기간 동안 두 후보자는 민단의 활성화, 조직의 재정 확립, 민족교육의 진흥, 지방참정권 획득운동 지속 등을 내걸고 선거에 임했다. 선거 공약에서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그간의 민단에 대한 공헌도를 주로 고려하여 오공태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일본 나가노현(長野縣)에서 태어난 오공태 씨는 전형적인 재일동포 2세 기업인이다. 그의 일생에 관한 기록이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에 관한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여 그의 행적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는 지난 2010년 12월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영화 상영을 지원하기 위한 나가노 모임에서 대표 스피치를 하는 가운데 서두 부분에서 자신의 출생에 관하여 짧게 언급한 일이 있다.

   
▲ 당선발표에 환호하는 오공태 단장 당선자, ⓒ사진 민단신문

부산 근처에서 살던 그의 부친이 1927년 13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얼마동안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 징용령을 받고 아이치현(愛知縣) 한다시(半田市)에 징용 노무자로 차출되어 나카지마(中島) 비행기 공장에서 일했다. 전쟁 말기에는 비행기 공장에 대한 미군 공습이 심해지자 수많은 조선인 노무자와 함께 나가노현으로 옮겨져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나가노현 이나시(伊那市)에 가족이 정주하게 되었고 거기서 오공태 씨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나가노현 오카야시(岡谷市)에서 오공태 씨는 대형 파친코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재력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식 성명 구레모토 고타(吳本公太)로 통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New Asahi Group의 Sanko(三公)상사 홈페이지를 보면 1974년에 유한회사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06년 시점에 파친코 점포 26개를 운영하며 연간 904억 엔의 매출액을 기록했다고 되어 있다. 또한 정규 사원 261명을 포함하여 총 589명의 사원을 거느리고 있고 회사 설립 이래 착실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작년에 동북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자 그는 재난지역에 2만4천장의 마스크를 전달하는가 하면 1000만 엔 이상의 의연금을 기증하는 등, 일본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공헌활동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그는 골프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특기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에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 프로 골프선수를 지원하는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 2010년 4월부터 도쿄 한국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교실 증축 등 재일동포 자제의 교육을 위한 설비 개선에 노력해 오고 있기도 하다.

메이지(明治)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그는 파친코 사업을 기업화 하는 일과 함께 민단의 조직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1970년에 나가노현 스와시(諏訪市) 민단 지부에서 문교과장을 담당한 것이 민단 경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스와시 지부 조직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민단 나가노현 지방본부에서도 1974년부터 청년회장, 선전부장, 조직부장, 부단장, 부의장, 감찰위원장 등을 거쳤고 2005에는 이 지역의 단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어 2006년부터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재일동포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선임자로서 나가노현에서 민단을 이끌다가 중앙본부 단장이 된 정진(鄭進)씨가 그를 중앙본부의 부단장으로 발탁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정진과 오공태 두 단장 사이에는 동향의 선후배 사이라는 점과 함께 총련에 대한 섣부른 화합에 비판적이라는 점에서도 공감대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5월 당시 중앙본부의 하병옥(河丙鈺) 단장이 총련 중앙본부를 방문하여 전격적인 ‘화해’를 시도했을 때, 나가노 단장을 담당하고 있던 오공태 씨는 이러한 중앙의 움직임에 반대하고 독자적으로 탈북자 지원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비판 움직임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성급한 남북화해보다는 일본사회와의 화합을 우선시 하며 독자적으로 지방 조직을 주도했던 오 단장의 태도가 중앙본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하병옥 체제에 대한 반대 움직임과 방향성에서 일치하게 된 것이다.

2010년 1월의 한류 관련 잡지 기자와 대담하는 가운데, 오공태 씨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 동포 1세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말이 서툴 뿐 아니라 주변의 일본인으로부터 본명 ‘오공태’ 보다는 통명 ‘구레모토 고타’로 불리고 있는 점에서 분명 그는 동포 1세만큼의 민족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는 다년간의 민단이나 한국학교 조직 활동 등을 통해서 동포 2세로서는 비교적 강한 민족의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후세 다쓰지 영화 모임에서도 오공태 씨는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하며 일본제국이 식민지 조선에 취했던 비인도적인 만행에 대하여 하나하나 언급한 바 있다. 비록 후세 다쓰지라고 하는 역사적 인물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차분하게 그의 생각을 술회하는 모습에서 그의 역사인식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그는 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강렬하게 일본을 비판하는 일에는 신중함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민단을 둘러싼 내외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지도력이 앞으로 3년간 혹은 6년간 충분히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역사적 존재로서의 정주 세대가 쇠퇴하고 있고 반면에 뉴커머 세대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정주 세대 후손들의 민족의식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반면 재일동포의 역사성에 무감한 뉴커머 세대들이 증가하고 있어 총체적으로 재일동포 사회 구성원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민단은 중앙대회 하루 전에 정기 중앙위원회를 열고 조직 강령에 '일본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한편,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도 지부 조직의 단장 등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규약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포 1세대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조직원들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족의식이 희박해 지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아직 전반적으로 경제적 기반이 든든하지 않은 뉴커머에게 민단을 맡기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른 상황에서 조직의 재정 안정과 활성화를 위하여 고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일본의 정치권이나 사회 분위기가 외국 국적자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정부가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재외국민에게 올해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도 민단의 지방참정권 획득 운동에 있어서 순풍이 아니라 역풍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러한 대내외적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공태 신임 단장이 선거에서 내세운 조직 활성화 공약과 지방참정권 획득 노력 과제를 앞으로 어떻게 실현해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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