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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의 부활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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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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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15. 한겨레신문 <세계의 창> /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


세계화로 개별 국민국가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신화에서 벗어나자
지금 문제해결 주체는 국가뿐이다

   
▲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세계화로 개별 국민국가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게 우리 시대의 신화였다. 교통·통신 혁명으로 국경은 사라지고 세계는 좁아졌다. 국제 규제와 다자 기구들이 개별 국가의 법 체제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세계시장 앞에서 각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힘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는 이런 신화를 무너뜨렸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은행을 구제하고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고 실업자를 위한 안전망을 마련한 게 누구인가? 자본시장 규제 방안을 새로 마련한 건 누구인가? 항상 개별 국가 정부였다. 주요 20개국(G20)과 국제통화기금, 바젤은행감독위원회 등은 부수적인 역할에 그쳤다.

그럼에도 국민국가는 여전히 비난을 받고 있다. 첫째, 경제학자들은 각국 정부를 자유로운 상품·자본·노동력의 이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여긴다. 개별 정부의 규제를 없애면 세계 시장이 더 완전하고 효율적인 경제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별 국민국가가 아니라면 누가 그 세계시장의 규칙을 만들 것인가? 자유방임주의는 더 많은 금융위기를 부를 뿐이다. 결국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국제기구 관료들에게 경제 정책을 내맡기는 꼴이 될 텐데, 이는 국가를 대체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둘째, 세계시민주의적인 윤리학자들은 국경을 인위적인 것으로 폄훼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인 피터 싱어는 통신 혁명으로 태어난 ‘전지구적 청중’이 ‘전지구적 윤리’의 기반을 창출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을 개별 국가와 동일시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인식도 국가 범위를 넘지 않겠지만, 우리가 자신을 세계 전체와 연결시킨다면 우리의 충성심의 대상도 확장될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인종·종교·직업·정치적 ‘다중 정체성’이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얼마나 현실에 근거한 이론인지는 모르겠다. 여러 조사 결과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매우 강하게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몇해 전 수십개국 주민들을 상대로 △지역사회 △국가 △세계 전체 중 어디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지 설문조사한 ‘세계가치조사’ 결과, 자신을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라고 여긴 사람이 ‘세계시민’이라고 여긴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젊은층·고학력자·고소득층일수록 자신을 세계시민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긴 했지만, 어떤 계층에서도 이런 인식이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교통과 통신에 드는 비용은 줄어들었다지만, 지리적 거리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교역이 자유로워졌다지만, 지리적 거리는 지금도 반세기 이전만큼이나 그 주요한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조차 생각만큼 국경을 초월한 것은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한 연구 결과는 미국인들이 지리적으로 먼 나라보다 가까운 나라의 웹사이트를 훨씬 더 자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개별 국민국가는 쇠퇴하고 있다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무능을 토로하고, 지식인들은 허황된 전지구적 통치체제를 꿈꾸고, 실업자들은 정부 정책보다 이주노동자들을 비난한다. 국가에 다시 힘을 실어주자는 주장은 마치 전염병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주장처럼 숨을 곳을 찾기 바쁜 형국이다. 미래에 국제 정치공동체의 등장과 함께 진정한 세계시민화가 이뤄질 가능성마저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국제 통치기구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개별 국가 정부에 해법을 물어야 한다. 국민국가는 프랑스혁명이 남긴 고색창연한 유산이겠으나,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로선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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