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어제 2011년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일본의 NHK 가요제 (紅白歌合戰)에는 한국의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가 출연하여 TV 시청자들에게 한류의 파워를 실감하게 했다. 동방신기의 경우 작년에는 NHK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 3번째로 출연하면서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카라와 소녀시대는 이번에 처음으로 출연하여 뛰어난 스타일과 함께 현란하고 박력 넘치는 동작으로 일본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이제 일상화된 것과 함께 끊임없이 한류 문화가 일본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양국에서 문화 접촉의 심화 움직임이 쉽게 누그러지기 어렵다고 하는 전망을 갖게 한다. 그것은 역사인식의 차이로 인한 양국의 외교적 마찰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의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를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는 대통령과 외교통상부 장관이 변함없이 한 해를 담당해 온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일 년 사이에 내각 총리가 바뀌는가 하면 외상의 경우는 2차례나 교체되었다. 다만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자세에서 볼 때, 2011년 후반기에 들어서 한국이 일본에 비해 보다 강경한 자세로 변화를 보인 것은 인물의 변화가 곧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2011년 한일관계를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대체로 밝지 않은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교적 마찰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찰이 과도한 충돌로 이어지는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한편으로 양국 외교당국이 갈등 요인을 유연하게 관리한 결과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일 양국 국민들이 때로는 격렬한 언동을 나타내면서도 외교적 수습에 맡기는 전략적 행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년에 영유권 문제와 역사인식 차이로 인한 외교적 마찰은 매년 2월에 열리는 시마네현(島根縣)의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 3월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문부과학성 검정 최종 통과, 7월 자민당 의원 등의 울릉도 방문 시도로 인한 잡음, 8월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위백서 출간과 당시 재무상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의 A급전범 옹호발언, 12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 집회, 양국 정상회담에서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거론 등에서 나타났다. 그때그때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 유감 혹은 항의의 논평을 발표했으며 8월에 헌법재판소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사할린거주 피해자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에는 외교통상부 내부에 대책 마련을 위한 자문기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한국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정부는 특히 영유권 문제에 대해 변함없이 단호한 의지를 표명해 왔다.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거나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히 일본국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에 의한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점거이며 한국이 이러한 불법점거에 기초하여 행하는 어떠한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일본이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영유권을 확립했던 시기 이전에 한국 측이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점을 나타내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고 있지 않다고 강변해 왔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2011년 4월 한국의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계획 발표, 6월 대한항공이 새로운 기종을 독도 상공에 시범 비행시킨 일, 7월에 한국 국회의원들의 독도 상륙, 11월 독도 음악회 개최와 한국정부의 관광시설 건설계획 보도 등의 움직임에 대해서 즉각 공식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2월에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이 한국의 실효지배 강화 조치에 대해 비공식으로 항의했다고 하는 것을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2011년에 한일 양국정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하여 우호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임을 나타내는 외교적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3월에 들어 동일본 지역을 엄습한 대지진 피해는 양국의 협력관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지진 발생 직후 한국정부와 국회가 일본 측에 대해 위로와 함께 신속한 지원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구조대원과 수색견, 그리고 구조장비와 구호물품을 보내고 피해자 구조 활동에 적극 나섰다. 이와 함께 적십자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앞 다투어 일본의 피해자 지원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외교통상부는 모든 직원의 월급 가운데 0.4%를 일괄 공제하여 일본 측에 성금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관민일체가 되어 일본을 성원해 오던 움직임은 일본정부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강조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결과가 보도되면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 후 대지진 피해 복구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일본 피해자에 대한 긴밀한 지원을 지속하지 못했다. 이것은 작금의 한일관계에서 보이는 결정적인 한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일관계를 밝게 하는 소식으로 2010년에 일본 총리담화에서 발표한 문화재 도서 전달이 2011년에 이루어진 것을 들 수 있다. 2010년 8월 일본 총리담화 이후 그 해 11월에 한일 양국정부가 ‘도서협정’을 체결했고, 2011년에 들어서야 일본의 정치권이 비준 절차를 밟게 되었다. 자민당 의원들의 반대 가운데 비준안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1,200권에 달하는 궁내성 보관 도서가 2011년 12월에 들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의궤 대부분 고종과 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일부 황제 열람용 도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대산과 태백산 등 지방의 사고(史庫)에 보관되었던 분상용 도서들이다. 한국의 고궁박물관은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궤와 도서’라는 제목으로 지난 12월부터 2월까지 이들 문화재 가운데 일부를 공개 전시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수많은 문화재를 앞으로 찾아내어 반환받는 일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문화재들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걸맞게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1년에 보도된 외교적인 성과를 통하여 한일관계에서 큰 흐름으로서 다음 세 가지 변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 첫째 방향은 점차 다자간 정상회의가 많아지고 있고 따라서 다자간 회의 일정을 이용한 한일 양국의 정상회의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정상회의에는 매년 열리고 있는 G20, APEC, ASEAN+3,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있고 그 밖에도 격년제로 열리는 ASEM과 기타 특별 정상회의들이 있다. 2011년에는 5월 도쿄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9월 뉴욕의 유엔 총회 일정 기간에 한일간 정상회담이 따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뿐 아니라 11월에는 깐느의 G20회의, 호놀룰루의 APEC회의, 발리의 ASEAN+3회의에 양국 정상이 공동 참가했다. 올해 2012년에는 매년 열리는 회의 이외에도 3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와 11월에 라오스에서 열리는 ASEM회의에 한일양국 정상이 회동하게 된다. 이처럼 양국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면서 긴급한 외교 현안에 관한 신속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방향은 어떠한 형태로든 한일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03년 12월에 FTA 교섭을 시작했다가 이듬해 6월에 중단한 바 있다. 2008년과 2009년에 교섭 재개를 위한 실무회의가 4차례 열렸지만 더 이상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1년 11월 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일본 내각부 대신이 금후 경제통합을 향한 FTA 교섭을 촉진해 가자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기계부품 관련 산업의 기술적 열세에 놓인 한국 측으로서는 쉽사리 일본과의 단독FTA 타결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010년 5월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3국의 FTA 관련 산관학 공동연구 회의가 2011년에는 3월 제주, 6월 기타큐슈(北九州), 8월 창춘(長春), 12월 평창 등에서 4차례 열려 최종보고서를 2012년 3국 정상회의 전에 제출하기로 했다. 때마침 2011년 11월 발리에서 열린 ASEAN+3 회의에서 3국 정상은 2012년 초에 FTA 교섭을 시작하자는데 합의했다. 2011년 9월 서울에서 출범한 한중일 3국 사무국은 FTA 교섭을 추진하는데 효과적인 기구로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현 시점에서 볼 때 적어도 FTA 교섭에서는 한일 양국보다 한중일 3국간 교섭 전망이 더욱 밝아진 셈이다. 여기에다가 2011년 11월에 선언한 바와 같이 일본정부가 환태평양전략적경제제휴협정(TPP)에 교섭에 가담하고 2015년까지 역내 국가의 관세를 없애겠다는 교섭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이 이에 가담할 공산이 크다. TPP는 한일 양국에게 FTA에 접근하기 위한 또 하나의 루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방향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일본의 총리담화에서 인도적인 차원의 전후처리 문제로서 제기된 ‘사할린 한국인 지원’ 문제가 담화 이후 특히 1911년 중에 아무런 진척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8월의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아들인 한국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 대책팀’을 구성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필두로 하여 외교적 대책을 모색해 왔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와 한국인 피해자 단체를 상대로 하는 투 레벨 게임(Two-level Game)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자체적인 ‘지원’ 노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보이며, 이와 함께 1965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외교적 압박을 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