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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의 혁신을 추구하는 ‘벤스뷰티서플라이’ 임병주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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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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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한때 하늘도 지배할 수 있겠다할 정도로 야심차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일궈놓은 사업을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면서 지내고 있지요.”
여타 소수민족의 도전과 치열한 경쟁 속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업환경에 처한 미주 한인미용재료업계. 그 중심에 서서 새로운 변혁을 이끌고 있는 ‘벤스뷰티서플라이(Ben’s Beauty Supply)’ 임병주 회장이 던진 첫 마디이다.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성공’을 체인화 하는 새로운 유통시스템 구축 주창

지난 몇 년간 임병주 회장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청강연회나 뷰티 쇼, 타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입버릇처럼 강조해 온 것은 한상업계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임 회장은 한상 리딩CEO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의 성공을 이룬 한상들이 이제는 외부에서의 집단의 성공뿐만 아니라 모국의 동종업체와의 연대를 통해 집단의 성공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무역 등으로 ‘개인의 성공’을 이룬 분들과 수만 개에 이르는 약국이나 세탁업체, 8500여개 뷰티업체 등이 집단의 성공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국의 동종업체와의 체인화를 이룬다면 글로벌화와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비즈니스를 펼쳐왔던 이러한 한인업체들을 동종업체끼리 묶어 체인화 하는 운영시스템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유통방법을 강조한다. 동종업체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교환하고 비용을 최소화 하는 한편, 글로벌화 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유통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미용업체 중 품질이 높고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미주 한인뷰티업계와 연계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글로벌 마케팅을 펼칠 수 있고,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창한다.
임 회장은 이러한 유통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본국정부의 일정 몫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과 집단의 성공이 있었지만 이를 체인화 해야 구슬이 꿰어졌다 할 수 있는데, 체인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바코드시스템(전산화)이 필요합니다. 이 운영시스템 구축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죠.” 한국의 미용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형화와 글로벌화가 필수조건인 만큼, 8500여 개의 미주 뷰티서플라이업소와의 체인화를 통한 글로벌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일정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임 회장은 체인화가 이뤄지면, 업주들이 매장에서 물건을 직접 팔지 않고 제조업체에게 SPACE(공간)을 임대해 줌으로써 물품에 대한 투자 없이 장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형태의 매장 ‘CVS’(약, 화장품, 생필품을 파는 체인화 된 상점)나 ‘월그린(Wallgreen)’ 등은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직접 구매하기도 하지만 제조업체에 공간을 임대해주고 판매된 물건에 대한 커미션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고 했다.
“미국의 약국체인 CVS는 약을 파는 것이 아니라 SPACE(공간)를 파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SPACE만 디자인하면 되는 것이죠. 이 SPACE를 제조업체에 임대해 판매수수료를 받고, 카드회사 ‘Hallmark’나 ‘코카콜라’ 등을 입점 시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임 회장은 체인화의 또 하나의 장점으로 광고수입을 들었다. 임대해준 SPACE를 통해 수천 개의 업체가 광고되기 때문에 그 광고수입만 받아도 판매수수료 못지않은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한국 미용업계는 이미 자체적으로 바코드 화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정부가 나서서 해외 동종업계와 연대할 수 있도록 시스템구축 작업에 발동을 걸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대회는 동종업체를 하나로 묶는 유통시스템 구축이 핵심

임 회장의 이런 주장은 세계한상대회 방향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계한상대회는 앞으로 같은 업종에서만도 수십만 개에 이르는 한상업체들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체인화 또는 연대할 것인가에 따라 지금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한상대회가 개인의 성공만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동종업체간의 교류를 통한 집단의 성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 회장은 한상대회와 관련해 따끔한 충고도 있지 않았다. “이번 부산 한상대회 때 뷰티관련 부스 곳곳을 둘러봤습니다. 일일이 명함도 교환했고요. 그런데 해외에서 참가한 한상들의 면면을 보면 정부예산을 들여 대접해주니까 전시부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목적 없이 왔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런 한상대회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만 수천의 한상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 회장의 한상대회에 대한 이런 안타까움도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성공’을 이룬 해외 한상들이 있지만 동종 국내업체와의 체인화 된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한 것과 관련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늘 변화하는 시장에 맞는 발상전환과 동종업체간의 유기적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건축가에서 뷰티업계로 전환한 것은 운명이었다

1940년생(71세)인 임 회장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주택공사 공채 1기생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주택공사에서 3년간 근무하다 1968년 도미(渡美)했다. 평소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꿈이었던 임 회장은 그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며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 당시 같은 목적으로 미국에 와 있던 건축사였던 지금의 아내(윤명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의 아내는 평생 동지이자 든든한 후원자이다. 주경야독하듯 미국생활을 하면서 영주권을 취득했고, 임 회장보다 5년 먼저 미국에 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던 동서와 같이 일을 했다. 아내와 처남까지 5명이 근무하는 패밀리 건축사무실이었다.
임 회장은 건축사 일을 하면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업무와 까다롭기 그지없는 건축법규, 언어소통문제 등 업무상의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장기간 요양을 해야 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당시 담당의사가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갖지 마라’는 거예요. 미국은 건축규제가 까다로워 이를 다 맞춰 설계를 해야 하는데, 관련 재료나 건축 전 분야를 공부해 가면서 설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의사는 그런 신경 쓰는 일 하지 말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 물건 팔고 거스름돈 내주는 단순노동(cashier)이나 하라는 겁니다.”

   

건축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임 회장은 세차례의 수술을 하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아내와 실내장식, 인테리어 설계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재미도 있었지만 몸이 너무 쇠약해져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다시 터전을 옮긴 곳이 지금의 사업을 일군 텍사스 주이다.
“휴스턴(Houston)에는 당시 한인 300여명이 있었는데 이들이 뭘 하나 봤더니 반 이상이 캐셔(점원)를 하고 있었어요. 이것을 빨리 배워야겠구나 생각했죠. 한 편의점에서 캐셔 훈련을 1주일 받았는데, 매니저가 한 대리점에 혼자 나가서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1달째에는 2개 가게를 맡아 운영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편의점 종업원들이 물건을 훔치는 일들이 많아서 자주 해고하다보니 내가 한달 만에 2개 편의점을 맡게 된 것이죠. 할 수 없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해 운영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내에게 이런 일까지 시켜야 하나?’라고 생각하니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한심한 놈으로 비쳐지는 제 자신에 대해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좌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임 회장은 편의점의 작업이 3개대로, 점원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재고관리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재고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하루 2교대 12시간으로 조정하는 안을 제출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점차 임 회장은 편의점 매장별 리스트를 파악하게 되면서 매장을 보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임 회장은 지역 내 편의점 하나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월 매출이 3만5천 달러이던 이 편의점을 월 순수익만 3만5천 달러인 매장으로 탈바꿈 시켰다. 의사의 권유대로 본격적인 소매점을 운영하는 기회를 잡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소매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임 회장은 더 큰 비즈니스로의 전환을 위해 소매매장을 정리한 후 도매상(뷰티서플라이, Beauty Supply)을 설립했다.
30년 전 당시 휴스턴 지역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매장만도 100여개가 넘었다. 임 회장은 여러 종목을 조사한 결과 미용재료를 공급하는 업체가 없음을 보고, 흑인들의 인구 증가와 소득 수준의 향상, 기술의 발달로 좋은 제품이 만들어 질 경우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시장성이 크게 확장될 것이라 판단했다. ‘뷰티서플라이’ 도매업은 이렇게 해서 손댄 것이고 이 사업은 오늘날의 임 회장의 입지를 확고하게 해 준 터전이 되었다.

미용재료 도매상으로 대성하다

뷰티서플라이 도매업이 시작될 즈음 미국 전역에 흑인인구의 증가와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우수한 제품만 시장에 내놓는다면 도매업도 활성화 될 것이라는 전망을 믿고 시작했지만 웬일인지 석 달이 다 지나도록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매업을 시작한 사람이 소매상이 있어야 되는 줄 모르고 도매를 시작했으니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어 소매업을 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훈련받으면서 익혔던 매장위치를 고르는 안목 덕분에 목 좋은 3군데에 소매점을 동시에 열 수 있었다.
“이게 엄청난 대박을 친 겁니다. 오픈한지 1년 만에 한군데 소매점에서만 월 8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고 월 3~4만 달러이상의 수익을 남겼으니 단순하게 계산해도 3군데 소매점에서 월 약 10만 달러의 수익을 남긴 셈이죠.”
임 회장의 사업의 결과는 소매업을 희망하는 많은 한인들에게 실질적인 프로모션으로 작용했다. 입소문 때문이었는지 1년 만에 소매점이 50개로 늘어났다. 하루 주문 물량만 해도 1개 업소에 최소 5만 달러이상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하루 3~4개 매장을 오픈하는데 있어 많은 주문 물량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업이 번창해 나갔다. 그러나 한인 소매업체가 많이 생기게 되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임 회장은 ‘월수입이 보장된 소매업을 지속하면서 고객인 소매점들과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포기하고 도매업에 전념할 것인가를 두고 무척 고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임 회장이 소매업을 겸한 사업을 2년 만에 접고 다시 도매업에 전념하게 된 것은 사업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준 소매상들에게 보답하고, 좀 더 큰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도매업을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임 회장은 당시에는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고객(소매점)과 공생할 수 있었던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휴스턴을 기본 터전으로 해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3군데 사업장은 450명의 종업원에 연매출 7천만 달러의 매장으로 성장했다.

경영철학과 비즈니스 성공요인

임 회장은 그동안 유통업을 해오면서 재고관리, 마케팅, 물품구매 등의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편의점 점원에서 도매상 그리고 성공한 기업체의 CEO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 속에서 터득한 나름의 경영의 노하우를 소주잔을 돌리며 들려줬다.
“사업을 하는 데는 첫째 긍정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내 삶의 슬로건이기도 한데요… 사업하는 사고(궁리)에 따라 매장하나를 운영해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궁리에 있어 사고의 객관성과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한데 이런 사고 속에서 자신이 궁리했던 시나리오를 최선을 다해 완성해 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일단 마음이 결정된다면 던진 주사위에서 1이 나올지 6이 나올지 알 수 없어도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 한 아무숫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죠.” 임 회장은 주사위가 한번 던져졌으면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임 회장은 두 번째 경영노하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경쟁에 대해서도 두려움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글에는 사자나 호랑이도 있지만 토끼나 다람쥐처럼 큰 동물들 사이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갖추고 살아가는 작은 동물이 있듯이 약하다고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실패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 후회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세 번째 경영노하우로 그는 ‘자기 인격완성’을 비즈니스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임 회장은 물건을 파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파는 일과 마찬가지라면서 정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민족경제공동체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다

임 회장은 성공한 CEO로서 한인사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이제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성공을 넘어서 동종업체 한상 간 체인화 된 시스템 구축을 통한 한민족경제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글로벌 한상 시스템 작업을 꿈꾸고 있다. 미주 뷰티업계의 변화를 이끌고 한상들이 중심이 되는 유통혁명을 이끌 중심에 서있는 ‘벤스뷰티서플라이’가 그 출발점이다.
『Ben’s』라는 상호명은 임 회장의 이름 ‘Byeong(병)’자 이니셜 ‘B’로 시작하는 이름 중에서 미국에서 가장 파워풀(Powerful)한 이름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Ben’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가끔 벤스 자동차 회사와 관련돼 있는 회사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지금은 상호를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면서 활짝 웃는다.
미국 정계진출에 의향을 묻자 “정치가는 실제(實際)에서, 학자는 강단에서, 사업가는 장사를 해야 한다”며 정계진출에 대해서는 완강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치를 잘하는 분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임 회장은 슬하에 외동딸(임수지)을 두었다. 늦은 나이에 낳았기 때문에 어떻게 키울까 생각하다 학자나 교수로는 너무 오랜 세월이 걸릴 것 같아 운동을 시켰다”고 했다. 마침 휴스턴에 올림픽선수 트레이닝센터인 실내체육관이 있어 기계체조를 전공해 상위레벨까지 올랐으나 무릎통증으로 그만두고 스케이팅으로 전환했다. 스케이팅에 소질이 있어 미셀 콴 등과 같이 훈련받기도 했지만 스케이터로서는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중도에 꿈을 접었다고 했다. 임 회장은 미국에서 남달리 바쁘게 살다보니 여러 자식을 갖지 못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손주들로 인해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덧 붙였다.

임 회장은 한인사회를 위한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2011년 4월 ‘제3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한국경제 발전과 국위선양, 미주동포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휴스턴 한인사회는 임 회장의 한인사회를 위한 공로를 기억하고 있다. 임 회장은 휴스턴 발전기금과 한인학교 및 노인회 등을 지원했다. 또 휴스턴 한인회관건립에 1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뉴올리언스 미용재료상들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어려움을 겪을 때 상품을 무료로 지원하고 제조업을 설득해 상인들을 재활할 수 있도록 했다. 휴스턴 지역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한인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밑거름을 제공했다. 플로리다와 루지애나에 홍수가 났을 때 많은 상가들이 침수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임 회장은 이들을 돕는 일에 적극 앞장서기도 했다. 미국인들이 모인 한 모임에서 “미국시민으로서 이제 빚을 갚겠다. 내가 미국시민이 되기까지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그 은혜를 갚을 때가 되었다.”고 말해 모인 사람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임 회장은 그 지역에서 피해를 입은 업체에 한 업체당 2~3만 달러의 물품을 지원해 피해업체 54개중 27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도 했다.
이러한 임 회장의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과 발전을 위한 공로로 2008년에는 흑인들의 건강과 미용을 돕는 미국 최대 규모 단체인 AHBAI(The American Health & Beauty Aids Institute)가 수여하는 ‘산업선구자상(Industry Pioneer Award)’을 수상했다. 미용업계에서는 ‘노벨상’으로 여기는 상으로 아시아 최초이자 유통업계 종사자로는 최초로 받은 상이다. 이처럼 전례를 깨고 임 회장이 수상하게 된 이유는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그간의 공로로 1996년 상공부 장관상 수상과 2007년 ‘아시안 아메리칸 사업개발센터’가 선정하는 전미 50인 아시안 아메리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0년 휴스턴 상공회에서 수여하는 ‘제1회 우수 기업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 회장은 유통업계에서 전사(Fighter)로 불린다. 요즘 한인들 간의 과다경쟁으로 갈등이 야기되기도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일부도매상들이 인도나 파키스탄 소매상들에게 싼 값에 물품을 공급하는 바람에 한인 상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임 회장은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관할 지역 내 있는 이들 타민족 소매상들에게 물품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물품을 공급하면 한인업체들을 죽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며, 자신을 키워준 소매점들에 대한 보답차원이라고 했다.
근래 CVS나 월그린(Wallgreen), 월마트 등에서도 뷰티업종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뷰티업계도 무한경쟁체제로 들어갔다고 최근의 상황을 설명했다. 임 회장은 이런 경쟁상황을 뚫고 일어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민족경제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유통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내외 한상업체들 간의 유기적인 연대와 교류, 유통망 구축 일환으로 추진된 재외동포재단의 한상기업 디렉터리 제작에 협력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국내에 뷰티 쇼를 개최하며 국내외 한인뷰티업계를 체인화 하는 작업과 최근 설립된 ‘벤스코리아’를 통해 뷰티업계의 유통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임병주 회장. 그의 경영철학에서 새로운 비전을 엿볼 수 있었다.

“목표가 정해지면 좋든 싫든 끝까지 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임 회장에게는 아직도 열정과 청춘의 센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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