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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과 미스터 빈
경향신문 / 박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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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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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8.  박래용 / 경향신문 디지털뉴스 편집장 ]


   
국가 안보는 총구(銃口)가 아닌 정보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만큼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은 없다. 두 사례가 있다. 2004년 4월 남포로 향하는 북한 화물열차가 폭파됐다. 열차에는 밀봉된 화물칸이 있었고, 객차에는 시리아 과학자 12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 과학자는 앞서 이란 핵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핵물질을 인수하기 위해 방북 중이었다. 모사드는 이런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전원 사망했고 시신은 납으로 싼 관에 담겨 군용기편으로 시리아로 이송되었다. 화물열차가 폭파된 지역은 봉쇄되었고 북한 병사들이 오염 방지복을 입고 며칠 동안 잔해를 수거했다. 폭발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3년 뒤인 2007년 9월 1700t급 북한 화물선 한 척이 시리아 타르투스 항으로 들어섰다. 모사드 요원은 철제상자들이 군용트럭에 실리는 장면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했다. 사진은 한 시간도 안돼 모사드 본부로 전송되었다. 화물은 플루토늄과 관계된 물질이었다. 사흘 후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 공군기지를 이륙한 전투기는 시리아 해안을 따라 저공비행해 다마스쿠스 북동쪽 100마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트럭의 종착지를 폭파했다. 두 사건은 국제사회 모두 함구 중이다. 피해자 격인 시리아나 북한부터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훗날 모사드의 비밀을 파헤친 실화 <기드온의 스파이>란 책에서 공개됐다.

알아도 모른 척, 해도 안한 척 침묵을 지키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 정보기관의 불문율이고 철칙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 국가정보원은 안보·경제 등에서 일상적으로 저강도(低强度)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 할 수 있는지 민망할 뿐이다. 국정원은 김정일 사망을 까맣게 몰랐다고 비판받자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전용열차가 움직였느니 안 움직였느니 확실치도 않은 첩보를 떠들어대고, 심지어 그 정보를 미국 군사위성에서 제공받았다고 출처까지 까발렸다. 훈련 중인 부대에 즉시 복귀를 지시했다는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입수했노라며 감청 정보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그 바람에 북한군은 교신 주파수와 암호체계를 모두 바꿨다고 하니,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서울은 북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스파이들이 몰려드는 스파이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서울의 모사드 요원은 북한 재진 근처에 위치한 395공장 출신 탈북자를 발굴해 그로부터 공장에서 생산되는 무기는 물론 다른 공장에 대한 첩보도 제공받았다고 한다. 정보 수집에서 휴민트(Humint·인간 정보활동)는 핵심이다. 아무리 기술정보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밑바닥 현장 첩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99년 우리 휴민트가 영변에서 흙과 물 등 시료를 채취해 오는 데 성공, 북한의 핵개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한 사례다.

국정원은 정권의 내부 사정에 밝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휴민트 200여명이 이 정부 출범 후 반MB로 몰려 축출됐다”고 폭로하자 “대북 인적정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붕괴됐다”고 반박했다. 변명인지 자랑인지 모르겠다. 정권 출범 4년이 다 돼 임기말에 들어선 지금까지 전 정권 탓만 하는 염치도 기가 막히거니와 누구 말이 맞든 붕괴된 게 사실이라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서울시 상수도본부장 출신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명박 시장과의 인연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관계(官界)의 신데렐라’란 말까지 듣는 모양이다. 그의 재임 중 천안함 침몰에 연평도 포격 등 몇 번의 안보 위기 사태가 일어났지만 사전에 이상징후를 포착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 들통났고, 리비아에선 어설프게 국가원수 일가의 정보를 수집하다 국교 단절 일보 직전까지 갔다. 쉬쉬하며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여럿 있어 아직까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요원도 있다. 알아야 할 건 먹통이고, 손만 대면 주변이 소란스럽다. 영국의 코미디 배우 ‘미스터 빈’이 출연하는 첩보물도 이보다 황당할 수가 없다. 이 정부 내내 ‘박원순 사찰’이니 ‘박근혜 사찰팀’이니 민간인·정치인 사찰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본업보다 딴 데 한눈을 팔고 있었지 싶다.

북한에서 최고권력자가 사망하는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특별방송’을 예고한 날 아침 청와대에서는 직원 수백여명이 모여 고깔모자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대통령 생일 축하파티를 열었다. 입만 열면 ‘안보’를 외치는 이 정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볼 만큼 봤지만 이렇게 황당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우리 정보력이 걱정할 만큼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고 했다. 그게 더 걱정스럽다. 미스터 빈은 웃음이라도 주지만, 원세훈은 무엇을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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