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칼럼니스트, 본지 편집위원 ]


한나라호의 선장이 바뀌었다. 홍준표 의원이 선장으로 취임한지 5개월만이다.
차기총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한나라당호가 ‘디도스’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려 좌초되며 불거진 일이다.

한나라당의 관계자들은 박근혜 전 대표를 새로운 선장으로 모셨다. 그녀가 원하는 조건은 모두 들어주겠다는 백지 계약서까지 내밀면서 말이다.

우선 그녀를 신임 선장으로 모시기 위해 첫 번째로 착수한 작업이 당헌 개정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나라당의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당헌은 대선을 1년 6개월 남겨둔 시점에서는 대권주자가 당권에 도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를 한나라당호의 신임 선장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당헌 규정을 바꿔야만 한다.

문제는 당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규장을 만든 당사자가 박근혜 전 대표였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표시절 만든 당헌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만든 당헌을 자신을 위해 개정하고자 하는 꼴이다.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뜯어 고칠 수 있는 당규라면 힘들여가며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박 전대표의 입장에서는 좌초된 한나라호를 구하라는 당원들의 뜻에 따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각인 된 박근혜 전 대표의 이미지는 원칙주의자이다. 바로 이런 점이 그녀가 한나라당의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변칙이 판치는 한국 정치판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식상함을 느꼈다.
이런 판국에 박근혜 전 대표는 초지일관으로 원칙을 앞세우는 정치를 주장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세운 원칙을 허물고 당헌 개정이라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한나라호의 신임 선장으로 취임을 한다면 과연 국민들은 과거와 같은 시선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싶다.

또 한나라당 최고위의 기능을 대신할 비대위 구성권을 박 전표에게 전권위임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좌초된 한나라호를 구하는 일이 한나라호에 타고 있는 당원들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급선무일 것이다. 하지만 당의 권력을 박근혜 전 대표 한사람에게 모두 몰아준다는 것이 과연 민주 정당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일까 싶다.

독재자가 독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권력을 독재자 한 사람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정치판에서 공천은 정치인의 생명줄과 다름이 없다. 능력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정당의 공천 여부이니 말이다.

결국 한나라당에서 금배지를 달고 있는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표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해바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때문일까?지난 200회 한나라당의 의총에서는 볼썽사나운 관경들이 연출되었다는 언론의 보도이다. 너나할 것 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합창해 댔다고 하니 말이다.

국민을 사랑해야 할 국민의 대표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과 존경이 엉뚱하게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하며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심지어 그녀와 눈도장을 찍기 위해 박근혜 전 대표의 주변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니...

허긴 이 정도 수준의 인사들에게 지난 4년간 국정을 맡겨두었으니 민심이 한나라당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생각이다.
여하튼 비대위 구성원은 외부인사로 충원되고 차기총선에서 현직의원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물론 불량품으로 가득한 현재의 한나라당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꺼내 들어야만 할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파열음이 날것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한 지붕 두 가족의 동거형태로 살아온 것이 그동안 한나라당의 모습이니 말이다.

MB정권과의 관계설정 역시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가 연일 불거지며 국민들이 등을 돌린 MB정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가?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으려면 원칙을 앞세워 MB와 각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MB 정권의 관계자들도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그동안 공들인 그녀의 대권을 향한 꿈은 어떻게 될까?
총선과 대선을 향해 항해를 시작할 한나라호가 박근혜 신임 선장체제로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