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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가 말과 글을 버리고 있다
강효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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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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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효삼 / 중국동포 작가, 자유 기고가 ]


   

코리안 드림에 힘입어 한동안 위축받다시피 했던 우리 조선어(한국어)가 활기를 띠게 되였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족들이 조선어를 배우기시작하면서 중국의 250개 대학에 한국어과를 설치하여 5만여 명의 학생이 배우고 있고, 지금껏 한국어능력시험에 12만 명의 한족들이 참가를 했으며 중국 땅에서 조선족 외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50만 명은 될 것이라 하니 한국어 즉 조선어의 위상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한편 조선족사회현실을 눈여겨보면 기분에 들떠 자랑만을 냅다 할 정도로 그렇게 낙관적이지만 않다는 것이다.

근래 모 조선족중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지 운동장에 흰 코스가 그어지고 아침부터 방송나팔이 울렸다. 그런데 분명 이 학교는 조선족중학교이고 학생들도 조선족학생들이며 조선족중학생들 자체의 운동회 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중학교’라고 할 만한 표시의 조선 글은 없고 조선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럴 때 일수록 민족의 기개를 과시하듯 우리글이 크게 걸리고 아름답고 유창한 우리말이 운동장에 꽝! 꽝! 울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지난해도 이 중학교에서는 운동회를 하는데 하루 종일 한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민족 중학교의 운동회라는 표시를 알아볼만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참석한 학부모들로부터 ‘이게 어디 조선족학교의 운동대회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떤 학부모들은 ‘왜 민족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조선족중학교에서 대외에 자신을 알리는 가장 좋은 기회인 운동회석상에서까지 우리말을 하지 않고 우리글을 쓰지 않느냐’는 불만을 표출했고, ‘운동회 구경을 가고 싶어도 우리말이 없는 운동회는 꼴 보기 싫다.’며 가지 않았다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이유인즉 한족교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수적으로 보아도 수천 명의 조선족에 비해 단 몇 명에 불과한 한족 때문에 잘 되지도 않은 한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이 경우도 그에 못지않다. 한류의 열풍 속에 다른 한족들도 우리글과 말을 배우는데 하물며 조선중학교에서는 더 잘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얼이며 넋이다. 중국조선족의 경우 진정한 조선민족이 되려면 말과 글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모 조선족소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가운데 같은 민족끼리지만 한어로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이 셋에 한 명꼴쯤은 되는가 싶다. 분명 조선족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그들이 오며 가며 주고받은 말 거의가 한어여서 진정 저 학교가 조선족학교가 맞는가 의심할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요즘 들어 더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 같다.

어쩌면 조선족아이들의 도시화가 가져온 자연스런 결과인 것인가. 한 학생에게 내가 “왜 동무들과 놀 때도 한어를 쓰는가?” 물으니 한마디로 우리말은 힘이 들고 한어는 하기가 쉽기 때문이란다. 예전에는 타민족언어 배우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거꾸로 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학교교육에 있지 않나싶어 학교선생들을 찾아가 이런 문제점을 제기했더니 그들도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요구하지만 집에만 가면 거의 한어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 환경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선어문시간에도 조선어로 강의하면 뜻을 몰라 뜻풀이를 한어로 해주어야 비로소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족 학생들이 오히려 제 민족 언어는 낑낑대며 힘들어하지만 한어는 유창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어를 잘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 부모세대가 가장 근심했던 부분은 중국에 살면서 한어를 못해 출세에 영향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중국 땅에 살면서도 한어를 몰라 치이고 손해 보는 것이 많은 통절한 체험에서 자식들에게 그러하기를 요구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넘어가 아이들은 한어는 잘하는데 오히려 제 민족 언어를 못하는 괴상한 문맹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즈음 타민족 특히 주류민족과의 인적교류가 깊어지면서 그들의 행사에 우리민족이 많이 참석하게 되고 반대로 우리민족의 행사에 그들이 참석하게 되면서 모임의 참석자들을 보아도 순 우리민족행사가 적어지면서 부득이 한어를 사용하고 우리말을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타민족과의 혼인이 늘어나면서 예식장에 거의 우리말과 글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말을 책임지고 보급시키고 발전시켜주어야 할 학교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고, 우리민족끼리 행사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으며, 결혼이나 생일, 환갑잔치에서도 우리말 사용빈도가 줄어들고 있으니 과연 조선어의 설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우리가 바라던 진정한 부유이고 좋은 세상의 꿈이었을까?

필자의 생각에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정착할 때 민족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부유를 바란 것 같지 않다.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우리글과 말을 가르치는 학교를 따로 세웠을까? 조상들은 이 땅에 적응하여 살면서도 민족만은 조선 민족적으로 어느 때고 잊지 않고 지키려 했기에 민족교육을 그토록 중시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 조선어는 세종대왕이 창조한 이래 수백 년 동안에 거듭되는 투쟁을 거쳐 자리 잡은 글이며, 말과 글은 일제의 침략으로 송두리째 빼앗겼던 글이지만 민족혼을 지키는 문자 투사들이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목숨으로 지켜낸 글이며, 이 땅에 온 우리의 부형들이 피와 땀으로 공민권과 자치권을 얻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운 학교에서 부모들이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 글이며, 우리글이 정치적으로 위축받던 극좌적인 정치 년대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순수한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갈고 닦아온 글이다.
이런 정신과 문화가 중국의 민족정책의 깃발아래 발전하였고, 신문사 방송국 잡지사 출판사가 서면서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이며, 대학입시를 자기민족어로 치르면서 공고화된 우리글이다. 만일 이렇지 않았더라면 민족교육이 오늘같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민족교육이 발전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민족사회도 없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이처럼 고학력을 가진 인재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배우기 쉽고 편리한 우리글 때문인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헌데 남들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도 사용을 하는데 우리는 마음껏 사용하라고 제창하고 권고해도 스스로가 버리고 있으니 이것이 중국조선족인가? 그 누구의 강박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자와 언어를 포기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통분한 일인가!

한 민족이 자기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실은 그 민족의 사명감과는 떼여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사명감을 버리고도 양심의 가책이나 미안함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더 안타깝고 통분하다. 우리는 오늘 민족의 정체성을 살려 가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데 대하여 심사숙고 하며 깊이 있는 반성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남들은 얻은데 우리는 잃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우리민족의 근본적인 말과 글을 놓고도 타민족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스스로가 우리의 말과 글을 홀대한다면 머지않아 말과 글에서 조차 설자리 없어 타민족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국수나 찰떡, 개장국이 본래는 우리의 것이었으나 이젠 타민족이 우세가 되여 우리를 능가하듯이 말이다.
누군가 조선어는 조선족의 운명이자 바로 한민족의 운명이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자와 말을 버린다면, 우린 이 땅(중국)에서 어떤 민족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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