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기로 소문난 대표적인 인사동의 한식 음식점. ‘황후삼계탕’간판이 이내 눈앞에 들어왔다. 고즈넉한 기와집이 내려다보이는 3층 한 곳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최미경 회장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명함을 건네기가 무섭게 최미경 회장은 한국문화 알리기에 대한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교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 왔는데 한동안은 별로 할 일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우리 문화와 고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죠.”
며칠 전 열렸던 ‘한국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연합’(이하 한아연) 창립식 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매우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한아연 창립 취지와 활동포부를 밝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에게는 여느 교포와는 달리 우리문화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아연’ 설립과 성공한 휴머니스트로 남기

현재 ‘뉴욕핫도그&커피’와 ‘황후삼계탕’, ‘NY카페’ 등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궈낸 최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라기보다는 성공한 휴머니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우리문화 알리기에 앞장서고, 자녀들을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진 아이로서 키우는 것이 사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지난 8월 16일 ‘한국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연합’(이하 한아연)을 창립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 '한아연' 창립 총회 및 마을 선정 인증식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최미경 회장.

작은 농촌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알려 관광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1982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운동”이 이탈리아, 벨기에 , 캐나다 등으로 확산돼 2010년 국제조직인 「세계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먼저 이 연합회에 가입했다. 그녀가 이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운동의 방향이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닮아있고, 한국의 문화와 아름다움을 알리는 상생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일본이 2003년 인구의 고령화와 낙후한 농촌 마을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홋카이도 ‘비에이’ 마을을 중심으로 「일본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연합」을 결성, 2010년 「세계에서가장아름다운마을연합회」에 가맹한 후 한국과 협력하여 아시아 존을 만들자는 제의를 하자 이에 호응해 2011년 2월 창립준비위를 결성하고 비에이 마을과의 교류를 통해 한아연을 창립했다. 그녀는 한아연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관광공사 서포터즈 수석부회장으로도 활동했던 그녀는 한아연을 통해 전 세계에 아름다운 우리의 농촌을 알려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농촌마을을 잘 사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한아연이 이 운동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정부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사심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의 시간을 비워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들의 정체성 교육과 뉴욕한인회 활동 그리고 사업가의 길

최 회장은 국내에 들어와 그동안 음식 프랜차이즈 ‘뉴욕핫도그&커피’와 ‘황후삼계탕’ 등의 사업을 하면서 국내외 신문, 방송과의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홍보가 되었다며, 이제는 한국문화를 교포2~3세와 해외에 알리는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지난 2010년 12월 13일  '라마다 서울호텔'에서 열린 '2010 한국관광서포터즈 밤'에 참석해 이찬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미경 회장.

그녀의 입에선 인터뷰 내내 ‘애국’이란 단어가 떠날 줄 모른다. 미국으로 이민 간 후 한국을 알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활동했던 그간의 생활들이 몸에 배인 듯하다. “고국을 떠나면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더니 내가 실감하고 있습니다.”며 활짝 웃는다.
이민가기 전 한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던 여인이 이토록 애국자(?)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고등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선수를 거쳐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최 회장은 198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재미교포 한 남성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민을 간 것이다. 어떻게 교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묻자 “내가 예뻐서 데려간 것”이라며 미소 짓는 모습이 연륜과는 상관없이 예뻐 보인다.
최 회장은 결혼 후 미국에서 자녀들을 키우며 여느 교포들처럼 자녀들의 민족정체성 교육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제일 고민 됐었어요. 그냥 국적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녀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자연스럽게 한인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1992년 그녀는 뉴욕한인회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고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뉴욕한인회의 학부모모임인 ‘뉴욕한인학부모협회(NYKAPA)’ 회장을 맡아 한인회 여성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90년대 당시 미국 한인사회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 여성들이 활동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해외에 진출한 여성들이나 이민 간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뿐만 아니라 자녀를 위한 민족교육이나 정체성함양교육, 문화교육 등 할 일이 너무 많았음에도 주부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래서 늘 ‘한인여성들이여 나서라!’라는 구호를 가슴에 새기고 뛰어다녔다고 했다.
그녀는 그 시기의 여성회 활동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들이 자극제가 되고 기폭제가 되어서 한인사회 여성들의 참여가 본격화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포들은 애국자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교포들을 봐 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딜 가도 이방인 취급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라며 모국에 대한 서운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2009년 재외국민참정권을 획득한 것도 ‘우리 교포들을 이방인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하나의 외침 아니었겠냐.’고 되묻는다.

그녀는 1995년 미국・유럽을 방문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재미 교민리셉션에서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이 되라"고 훈시했던 것처럼 다른 국가에서 동화되어 살수도 있겠지만, 교포2~3세들이 우리말과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산다면 외국인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냐고 반문한다. “민족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교포2~3세들의 민족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최미경 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주)스티븐스’의 이름도 아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업체 경영을 하면서 아들에게 욕되지 않는 사업가로 우뚝 서겠다는 것이 그녀의 각오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니까 너희도 열심히 살라는 묵언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현재 최 회장의 아들은 조지타운대학에 재학 중이다. 한국말도 잘한다고 한다. 반기문 UN총장처럼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고 슬쩍 아들자랑을 늘어놓았다.

최 회장에게 사업성공의 비결, 그 요인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운동선수로 활약하며 끈기와 인내가 큰 바탕이 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 때 다졌던 국가관 애국심이 깊이 가슴에 박힌 것 같다고 했다. 육상 국가대표 시절 변변한 운동복과 운동기구 하나 없이 일본에 원정을 갔을 때 교포들의 도움으로 경기를 치른 경험도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우레탄 경기장이 생겼을 때 ‘성공해서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한아연' 1호 마을로 산정 된 산청 예담촌에서 이재근 산청군수와의 기념쵤영.

최 회장은 많은 교포들이 고국과 교류하며 사업하길 바란다고 했다. 거주국에서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고국과의 무역 또는 사업을 전개한다면 좋은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모국은 교포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지 말고 따뜻하게 맞이하며, 교포들은 모국에 이바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한다면 거주국에서의 정치력 향상도 저절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녀의 성공은 열심히 뛰고 달린 결과라고도 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교포들이 고국과 교류하고 사업을 전개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고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그녀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교포’라는 어느 교포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고국은 교포들이 숙명적으로 조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조국발전의 동반자로 인식해주는 것이 교포정책의 근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회장은 교포2~3세 인재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들 교포2~3세들은 거주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주류사회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하는 등 한인정치력향상에 힘쓰고 있으며, 자라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문화와 한국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는 한인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문화 알리기가 사업의 원동력

“처음부터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큰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의 점심을 위해 핫도그에 불고기와 김치볶음을 곁들어 만들었는데 딸과 딸의 친구들이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어요. 그때 ‘이런 메뉴의 사업을 전개하면 되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죠.”
최 회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다. 월드컵이 한국문화와 한국음식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이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프랜차이즈업체로 성장했다.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뉴욕핫도그&커피’는 국내 가맹점만 해도 250개에 이르고, 지난 4월에는 미국 JFK 국제공항에 입점했다. JFK 국제공항점은 공항청사 직원들과 공항이용객들이 매장 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핫도그를 주문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핫도그를 한국음식과 결합해 성공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녀는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핫도그에 한식 메뉴 토핑을 통해 보편화하면서도 차별화된 메뉴를 선보인 것이 주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의 음식에 한식의 맛을 곁들인 불고기 핫도그ㆍ김치불고기 핫도그는 미국으로 역수출 하는 대표적인 메뉴가 됐다. 그녀는 이제 미국전역 50개주에 신규점을 오픈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 회장은 JFK 국제공항 입점과정에서 철저한 사업에 대한 분석과 기획력,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한식세계화에 대한 경영철학으로 모든 직원들이 공감을 얻어 내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감 넘치는 열변과 함께 그녀의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패션과 세련된 모습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카리스마형 CEO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식세계화에 대한 열정과 한국문화를 알린다는 그녀의 옹골찬 의지와 집념이 하나씩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중이다. 작년 7월에 오픈한 ‘황후삼계탕’ 음식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황제에게 바치는 황후의 정성을 담은 프리미엄급 삼계탕’을 의미하는 이 음식점은 한국의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 음식인 삼계탕을 궁중음식의 대가 김수진 원장이 조리에 참여해 옛 조선시대 궁중 보양식을 재현해낸 정통 궁중음식이다.
최 회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최고의 한국음식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삼계탕을 통해 한국음식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산삼배양근과 동충하초, 장뇌삼, 활전복 등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황후삼계탕은 서울 인사동을 찾는 내외국인의 명소가 되고 있다. 한국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음식으로 삼계탕만한 아이템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특화된 이들 메뉴를 중심으로 국내에 프랜차이징 중이며, 향후 해외로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음식을 통한 한국문화 알리기의 결실이 하나둘씩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 회장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우리만 할 수 있는 노하우와 정신력’이라고 말한다. 그 이면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깔려있다. 그녀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외국적을 가진 교포로서의 차별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사업에 필요한 은행거래에 있어서의 불편함, 사업추진과정 중 이방인 대하듯 하는 시선 등 어려움 점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강신우 서울대 축구감독(대한축구협회 기술국장)을 영입하게 된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음식문화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한국적 이미지, 깊음 있는 맛을 보여줄 수 있는 음식메뉴인 삼계탕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태리의 최고 음식 파스타가 한국에서도 최고 음식으로 통하듯이, 한국에서 최고의 음식이 해외에서도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그녀만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황후삼계탕을 먼저 중국과 일본에 진출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동포들이 황후삼계탕 체인점 내기를 원한다면 조건 없이 최대한 도울 생각입니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세계 곳곳에 퍼져 한국문화를 알리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는 그녀의 소망에서 따뜻한 동포애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정계진출의 꿈이 있는지 슬쩍 물어봤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나는 교포임에도 내 고국을 바라볼 때 고국이 자랑스럽고, 가슴이 벅찹니다. 고국을 위한 일이라면 정치만 빼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최 회장의 당당한 모습에서 교포들의 조국애가 뜨겁게 전해져 왔다.

“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미국 한인회에서 마지막으로 교포를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한인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