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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여왕’과 참 나쁜 정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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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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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30. 경향신문 <칼럼> / 유종일|KDI 정책대학원 ]


   
미국의 부자 감세가 불러온 재정부실이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워런 버핏이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부자 증세를 주장해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미국의 부자 감세는 부시 대통령의 작품이지만, 부자 감세의 원조는 레이건 대통령이다.

레이건이 정치적으로 출세한 계기는 197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의 승리였다. 당시 레이건 선거운동의 주제는 ‘웰페어 퀸’ 혹은 ‘복지 여왕’에 대한 공격이었다. ‘복지 여왕’이란 수십 개의 가명을 이용해서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잔뜩 받아서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캐딜락을 몰고 다닌다는 한 흑인 여성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레이건은 복지가 얼마나 악용되고 세금이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강조하기 위해 ‘복지 여왕’의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안 그래도 세금 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복지 여왕’의 얘기를 들은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감세공약에 쉽게 현혹됐다. 레이건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4년 후에는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 선거마저 이겼다. 레이건의 정치적 성공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복지 여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임이 밝혀졌지만 이러한 사실은 레이건의 앞길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무려 70%에 달했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35%까지 낮추는 대대적인 부자 감세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감세를 하면 부자들이 신이 나서 일도 더 열심히 하고 투자도 더 많이 할 것이기 때문에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세는 당연히 세수 감소를 초래했다. 게다가 레이건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기 위해 군비지출을 늘렸다. 대규모 재정적자가 뒤따랐다. 당시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었던 하버드대학의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의장직 사임으로 무책임한 재정정책에 항의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갈고 닦은 연기력과 말솜씨 덕분에 인자하고 친근한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을 풍기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레이건은 겉보기와는 달리 교묘한 거짓에 의한 여론조작과 국론분열을 도모하고, 노골적인 탐욕과 살벌한 정쟁이 판을 치는 참 나쁜 정치로 미국 정치를 망친 장본인이다. ‘복지 여왕’ 같은 거짓 선전이나 공급중시 경제학 같은 사이비 이론을 동원해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후원세력인 부유층의 이익을 추구하고 강경보수 세력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레이건이 부자 감세와 군비지출 확대를 통해 재정적자를 만든 것도 고의적이었다.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복지지출 삭감에 나서지 못하는 의회를 재정건전성이라는 명분으로 압박해 복지 축소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대통령 시절 정보기술(IT) 붐과 부자 증세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부시 대통령은 부자 감세와 전쟁 놀음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야기했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더욱 첨예한 문제가 된 상황에서 공화당의 압박으로 복지지출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알고도 일부러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이명박 대통령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어서 걱정이다.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재정적자를 만들어내더니 이젠 재정건전성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그러니 함부로 복지지출을 계획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자기는 재정을 실컷 원하는 곳에 퍼붓고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균형재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염치없는 주장은 또 뭔가? 선진국 수준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형편없는 복지를 좀 확대하자는데 벌써 복지 포퓰리즘 타령이다. 도대체 부자 감세로 세수를 100조원이나 줄여놓은 게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최근에는 정부가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자들한테 돈 퍼주고 빈 곳간을 안 그래도 등골이 휘는 서민들에게 거두어서 채우겠다는 것이다. 이건 참 나쁜 정치다.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복지로 인해 재정이 파탄난다는 주장은 ‘복지 여왕’과도 같은 거짓 선전에 불과하다. 지금 재정부실이 문제되는 나라들 중에 복지선진국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복지가 부실한 대표적 사례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금융위기 이전에는 재정이 흑자였으나 금융위기 후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정이 급격하게 악화된 경우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정부의 부패와 지하경제가 만연한 것이 문제다. 반면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복지선진국들은 모두 재정이 매우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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