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석 / 한인유권자센터(KAVC) 상임이사 ]


미국이 일본에게 전쟁범죄를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했다. 그것도 미국을 대표하는 연방의회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다. 2007년 7월 30일 연방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바로 그것이다.

그날 저녁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 결의안을 주도한 한인유권자센터(KAVC)의 관계자들을 의장실로 초청했다. 마침, 결의안 통과를 지켜보기 위해서 워싱턴을 방문한 이용수 할머니도 함께 하원의장을 만났다. 낸시 펠로시는 워싱턴 내 일본의 영향력 때문에 의장인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이 순간을 학수고대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라면서 이용수 할머니를 부둥켜안고서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는 후손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전후

미 연방하원의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의 주무 상임위는 외교위원회였다. 외교위원장과 아태소위원장이 결정권자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탐 랜토스 위원장은 미국 연방의회 내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고, 전 세계의 ‘인권 챔피언’이고 유태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80세의 고령의원이었다. 결의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고 랜토스 위원장은 유권자센터의 (당시)대표인 필자를 불렀다. “인권의 문제는 마침표가 없다(Don't Stop). 시민교육을 약속해야 한다.” 라고 격려했다. 결의안 전문의 가장 핵심은 “후손에게 교육”이라고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통과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 준 일은 2007년 2월15일, 외교위원회의 피해자 초청 청문회였다. 외교위 내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회의 애니 팔레오마바에가 위원장이 미국 내 주류 미디어를 불러 놓고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취재하도록 했다. 피해자들 앞에서 가장 겸손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스스로 울먹이는 진정성을 보였다.

소수계와 약자에게 가장 겸허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애니 팔레오마바에가 아태소위원장(당시)은 그 후로 (여의도)한국정치인들이 찾는 단골이 되었다.

2009년 1월, 아태소위원장이 뉴욕의 필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호출했다. 경기도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할머니들과 의형제를 맺으려고 하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위원장을 방문한 한국의 (여의도)정치인과 면담하는 자리에 합석을 했다. 위원장은 ‘경기도 나눔의 집’을 언급하면서 한국정부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잘 모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일본을 직접 상대할 것이 아니고 정부가 그것을 앞장서 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듣고 있던 한국의 모 의원이 발언을 했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원칙적으론 동의하는데 동북아시아지역의 정세를 감안해서(미・일 관계를 설명해가면서…), 지금은 전략적으로 그 결의안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 했다. 듣고 있던 위원장이 얼굴을 붉히면서 벌떡 일어났다. “인권을 앞서는 전략이, 정치 아젠다가 있는가!?”라고 호통을 치면서 나가라고 했다.

위원장은 필자에게 “인권은 교육”이라고 설명하면서 어떻게 교육시킬 것 인지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다.


◆홀로코스트 라소스센터

외교위내 민주당 거물(30년)인 게리 애커맨(Gery Ackerman)의원은 상임위에서 결의안을 의결할 때 가장 극적인 예를 들었다. “미국-한국-일본은 서로서로 친구다. 그런데 과거에 친구가 친구를 강간을 했다. 그것을 정리하지 않고 어떻게 친구가 되겠는가?” 라고 증언하면서 한국인들을 감동시켰다.

게리 애커맨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 뉴욕의 한인 타운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유권자센터가 그의 지역구에 있다. 그는 가장 대표적인 리버럴 유태계 정치인이며 필자와 같은 AIPAC 회원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의 통과를 위해서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필자를 가장 먼저 신뢰해 준 의원이기도 하다.

결의안이 통과되고 만2년이 지난 2009년 AIPAC총회에서 그는 필자에게 “인권은 교육이다. 홀로코스트의 예를 공부해 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애커맨 의원은 교육시키지 않으면 결의안은 잊히는 종이쪽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 유태인들의 교육은 ‘홀로코스트 교육’이 시작이고 끝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역구에 그 교육의 본부가 있다고 ‘홀로코스트 리소스센터(Holocaust Resource Center)’를 소개해 주었다.

미국 주류사회에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태인 커뮤니티의 심장부인 뉴욕 홀로코스트센터에서 일본군위안부 추모전시회가 11일부터 열리고 있다. 홀로코스트센터는 독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고발하기 위해 유태인 커뮤니티가 세계 곳곳에 세운 기념관이다. 광복 66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맞춘 이 전시회는 뉴욕의 한인유권자센터가 지난 만3년 동안 홀로코스트 관계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해서 이룬 쾌거이다.

위안부 문제는 나치 하의 유태인 학살과 동시대에 아시아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사례이고 미국 연방의회의 결의안이 있는 것이 주효했다.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에서 일본의 전쟁범죄, 그것도 한국인들이 주도한 인권이슈를 받아들인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이다. 이것은 미국의 주류사회가 일본군의 반인륜 범죄를 인정하고 규탄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홀로코스트 리소스센터가 미국의 시민들에게, 특히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일본군위안부관련 인권교육을 시키기로 결정한 것을 기념하는 전시회다.


◆위안부 추모전시회 의의

그동안 유권자센터는 10여 박스 분량의 자료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그리고 인권정치인들을 통한 로비를 집요하게 벌여왔다. 서울의 ‘정신대대책협의회’와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서 날라 온 수많은 자료들을 번역하고 정리해서 홀로코스트 리소스센터를 수십 번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우리의 끈질긴 설득에 반응이 왔다. 지난해엔 뉴저지 주 한인 타운인 팰리세이즈파크시 공공도서관 앞뜰에 동판에 새긴 연방의회의 결의안을 화강암에 박아 영구적인 ‘기림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서구국가에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한 달 동안의 이번 추모전시회는 미국 주류사회에 일본의 (숨겨진)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일 간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임을 명확하게 하는 의미에서 ‘스티브 까발로’라는 백인 화가를 비롯해서 한인화가 7명.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작품들도 전시했다.

워싱턴DC에서 일본을 경험한 사람은 그들의 영향력에 거의 주눅이 든다. 주류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좌절감만 경험하게 된다. 일본에 대해서 유일한 경쟁력은 미주동포의 풀뿌리(Grassroots)참여다. 일본은 없는데 한국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Grassroots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한국(재미동포)이 일본과 맞선다는 것은 아니다. 미주동포가 ‘미국의 모자’를 써야 일본에 승산이 있다. 그래서 일단은 미-일 간의 전선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나, 2008년 의회도서관과 지리위원회의 독도명칭문제에 있어서 유권자센터는 철저하게 미국시민의 입장과 미국 국익의 논리로 미 정치권을 설득했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 간의 분쟁에선 철저하게 국익논리란 잣대를 갖고 있다. 핏대를 올리면서 역사적 진실이나 정의를 주장하는 아마추어들에게 눈길을 줄 미국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워싱턴 정치 작동 방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소수가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다.

유권자센터는 일본을 상대한 일이 없다. 오직 미국을 움직일 뿐이다. 미국의 손을 빌려서 일본의 뺨을 치는 전략이 이번에도 성과를 냈다. 이 정도면, 한인동포들이 (미국)유태인들과 함께 일본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그야말로 인권과 정의를 위해서 일하는 가장 모범적인 시민이 아니겠는가ㆍ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