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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유산’ 귀속문제
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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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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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영춘 / 연변주위 선전부 부부장, 연변대학 겸직교수 ]


 

 

▲ 채영춘 교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저명한 작가 고골리(1809년—1852년)의 나라귀속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고골리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했으니 당연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입장이고, 고골리는 러시아어로 집필하고 러시아로 사고하였으니 100% 러시아 작가라는 게 러시아의 입장이다.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에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던 이슈이다. 고골리가 살아있다면 의중을 묻겠으나 이미 ‘죽은 넋’이 되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제재판에 상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결국은 두 나라에서 각자 자기 “유산”으로 표기하는 방법밖에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하다.

다시 한 번 명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영국의 역사학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영국이 인도를 잃을망정 셰익스피어는 잃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식민지였던 인도를 내놓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잃을 수 없다고 공언할 정도로 영국 사람들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숭배는 대단하다.

오늘날 이 세상에 자국의 명인을 초개처럼 대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국명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국의 운명에 적극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결코 방치하지 않고 자기 역사 “유산”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 통례로 되고 있는 것 같다.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한 적이 있다. 조선항일무장투쟁역사전시홀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연변의 항일전적지 사진과 유물들, 동북항일연군 명장들의 사진이 우리 민족 반일, 항일지사들 사진과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것이 돋보였다. 여기에 전시된 유물과 사진들은 조선항일무장투쟁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유산의 한 부분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제식민지통치 36년이 결과로 조선반도 우리민족의 대이동 그리고 반일항일투쟁 테라스의 특수성은 연변 전역을 망라한 장백산지구와 두만강, 압록강 연안, 관내의 많은 지역이 일제와의 치열한 항쟁현장으로 부상되게 하였다. 이 시기의 반일, 항일 지사와 명인들의 출현은 세계반파쇼투쟁의 산물로서 어느 한 나라에만 국한시켜 설명할 수 없는 특수성과 광범성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조선, 한국, 나아가 아시아지역이 항일투쟁의 역사를 조명함에 있어서 연변을 떠날 수 없다면 연변의 항일투쟁역사에서 조선반도와 중국대륙, 구소련 연해주를 넘나들며 일제와의 지속적인 투쟁을 기획하고 벌려온 반일, 항일 지사와 명인들의 업적을 결코 망각해서도 안 되는 부분이다. 이들의 업적이 오늘날 관련국은 물론 평화애호 모든 나라의 공동한 유산으로 된다고 하여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귀속돼 있거나 우리 자신이 챙겨야 할 ‘유산’의 상속권을 두고 갈팡질팡했거나 우물쭈물하면서 남의 눈치 보기에 신경을 쏟아붓다보니 우리 유산이 길가의 노숙자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하였다. 우리의 혁명유산은 대체로 혁명유적지를 통해 살려야 하는데 이런 유적지들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외면당하는 불운을 맞고 있으니 안타깝다.

최근 우리의 사회과학계와 연변대학의 노력으로 뒤늦게나마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중국조선족통사>와 같은 경전급 도서에 지난 반일, 항일투쟁 시기 연변지역에서 활약했던 반일항일투사들과 그들에 의해 주도됐던 유명한 사건들의 성격이 명명백백하게 정립되면서 베일에 가려져있던 중국조선족반일무장투쟁의 전모를 객관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교과서화, 통사화하는 장거가 이뤄져 마음이 후련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정립된 이 빛나는 역사를 사료(史料)나 문자기재상태에서 장엄한 고차원의 혁명박물관문화, 혁명유적지문화로 승화시키려면 또 얼마마한 시간이 걸릴지 안타깝다.

대표적인 실례가 봉오동대첩과 청산리대첩 기념비다. 올해로 91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봉오동, 청산리 대첩을 우리는 “조선족반일부대들이 일본침략자들을 물리치고 국가의 영토주권을 수호한 반침략전쟁”(<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길림인민출판사 2007년 판)으로 확실히 규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혁명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두 곳의 유적지건설이 우리가 정립시킨 위대한 반침략전쟁의 성격과 맞물리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민간단체에서만 주도하고 정부차원에서는 적당히 지원하는 선에서 추진하다보니 유적지건설이 그 규모나 영향력에서 상당히 문제시되고 있다. 하여 해외의 단체에서 자금을 내고 새롭게 신축할 의향까지 내비치는 형국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청산리대첩유적지와 봉오동대첩유적지를 잘 살려낼 의무가 있다. 이 또한 우리가 후세에 완벽하게 전해야 할 혁명유산이기도 하다. 금년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돌이 되는 해이다. 이 나라 강산을 지키고자 목숨 걸고 일제침략자와 피어린 투쟁을 벌이다가 저세상으로 간 영령들이야말로 자치주 60돌 기념의 주요공신들이 아닌가?

우리는 연변자치주 60돌을 계기로 청산리, 봉오동은 물론 연변 전역의 우리 혁명유산들을 철저히 점검해보면서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의 의미를 21세기 새 연변 건설의 전략적 높이에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변의 선도구 국가전략, 연용도일체화 대상프로젝트에 우리의 혁명유적지건설을 포함시키는 것은 현명한 선택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제공 : 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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