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올해 5월 15일에 뉴스레터를 통해 부산에 강제동원 자료관 건물을 올해 안에 착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지 선정과 예산 확보 등으로 수많은 정책적 난관을 거치면서 7년간에 걸쳐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던 사업이 이제 계획 단계를 지나 추진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총 547억 원의 예산으로 추진되는 사업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자료관 건물은 지상 3층 규모로 올해 착공되어 2012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 일제강제동원자료관 조감도 >

 
이 사업은 지난 2004년 9월에 발효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기인하고 있다. 특별법에는 ‘추도공간 및 사료관 조성에 관한 사항’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애초부터 기념관은 추도·교육·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일본제국의 강제동원 정책에 의한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위로는 현재 진행 중인 일시적인 지원금 지급만으로는 마무리되지 않는다. 상징 시설과 전시물을 통해 매몰되기 쉬운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다시는 국권을 빼앗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 궁극적인 위로가 될 것이다.

한편 이 사업은 우리 정부가 지난 1965년에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맺으면서 경제개발에 주력한 나머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전후처리 문제를 소홀히 해 왔던 것을 반성하고 희생자들의 유족들을 위로할 국가차원의 추도공간과 강제동원의 역사를 후세에 널리 알릴 시설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잃고 이리저리 휘둘려야 했던 식민지 백성의 역사를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과거 수난의 역사를 국민통합의 에너지로 승화시키자고 하는 메시지야 말로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피해자 지원 업무나 자료관 건립 사업을 관통하는 기본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정부 위원회의 전반적인 활동 중심이 피해자 지원 문제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역사자료관 건립에 대해 집중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나 생각된다. 여기에는 피해자 단체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피해자 지원금 문제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자료관 건립에 힘이 실리지 못한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난 4월 하순 한국 언론을 일시 떠들썩하게 하게 한 것과 같이 일부 피해자 단체의 보상금 사기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나마 자료관 건립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며 앞으로 자료관 운영 방안을 둘러싸고 강제동원 역사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관이 건립될 예정인 부산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잇는 대표적인 민간 이동 접점 지역이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연락선이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운행되었는데 40년 동안에 걸쳐 3천만 명 이상의 승객이 이러한 정기연락선을 이용했다. 이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말기 강제로 동원된 수십만의 한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해방 직후 2년간에 걸쳐 정규적인 선박이나 비정규적인 선박으로 이용하여 부산항에 들어온 강제동원 노무자를 포함한 한인 귀환자가 100만 명 이상 되었다.

위원회에서 나온 구술 자료 등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해외 강제동원 피해자가 부산항을 통해 나갔다가 부산항으로 귀환했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부산은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있어서 조국의 상실감과 해방감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했던 곳이 아닌가 한다. 암울한 전쟁 상황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불투명한 전망을 가지고 배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는 전쟁 중에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어렵사리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부산에 상륙하는 일이 조국에 도착한 것을 상징했다. 장기간의 전시체제로 인하여 사회적 혼란과 빈곤으로 가득한 공간이기는 했지만 부산에 들어오면서 그들은 모두 이제 살아남았다고 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2007년 부산광역시가 지역 개발 차원에서 부지 제공에 적극 나서면서 자료관 건립 움직임이 탄력을 받았다. 건물이 들어설 당곡근린공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역사와 평화를 상징하는 설비를 갖추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유도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도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다가 대중교통 수단이 다양하고 보행으로 접근하기에도 양호한 편이다. 차후에 공원 진입로를 조성하게 되면 보다 더 접근성이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료관 부지 인근에는 문화예술회관과 유엔기념공원이 있고 5km 반경 이내에 4개의 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이 산재해 있기도 하여 주변 지역 전체가 문화와 교육의 색깔을 강하게 띠고 있다.

강제동원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기록물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역사교육을 수행하는 일은 자료관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징용·징병 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지역별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일본정부와 군부, 그리고 재계의 자료를 조사하고 규명해 가야 한다. 이와 함께 각 지역이나 사업장별로 어떠한 피해가 발생했고 그것이 전후에 어떻게 보상이 되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부 위원회의 신고·조사 자료를 포함하여 각종 사료에 관한 정리와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검증 작업을 거친 후 교육과 전시가 이루어져야만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자료관 설립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재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사업이 한일청구권협정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다보니 해외동원 피해자에게만 그 대상이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에서 징용영장과 관계없이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진 국내동원 문제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비역사적인 태도와 한국정부의 허술한 대책으로 국내동원 피해자를 논의에서 제외시켰으며 결과적으로 협정 조항에 청구권에 관한 모든 사항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하는 포괄적인 규정을 하고 말았다. 앞으로 자료관을 통해 식민통치 아래에서 거의 대부분의 한반도 주민들이 국내외적으로 인적·물적인 강제동원 피해를 겪은 것에 관하여 이를 후세에 전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일은 바로 역사 기억을 통한 국민통합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으로 일본열도와 중국대륙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쟁동원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관련 자료나 피해 흔적이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으며 각 지역에서 일본정부에 대해 전후처리를 요구하는 피해자 단체와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네트워크 형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자료관이 순조롭게 건립되어 국내외 관련 연구와 교육활동을 연결하는 중심 허브(hub)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