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1.05.23. 한겨레신문 <칼럼> / 김효순 대기자 ]
공영방송 한국방송공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 특집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역사교과서가 현대사를 편향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해온 사람들은 새 단체를 띄워 공세를 벌이고 있다. 지난주에는 5·16 쿠데타 50주년을 맞아 구국의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분들이 보수신문의 지면을 일제히 장식했다.
어지럽다. 겉으로는 주체가 달리 보이지만 거의 한통속으로 움직인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분들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비분강개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었다가 다시 나라를 세울 때 기본 뼈대가 되는 것은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이다. 어려울 것이 없다. 정통성은 독립운동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사 편찬에 줄곧 간여한 원로학자로 조동걸 명예교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시골 오지를 찾아다니며 증언과 자료를 모았다. 옛날 얘기를 꼬치꼬치 캐물으니 누군가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하는 바람에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해방 직후가 아니고 몇십년이나 지난 뒤에야 기초자료를 수집하게 된 것인가? 조 교수는 그렇게 지연된 책임을 기본적으로 이승만에게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중앙일보>는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2년째 백선엽 장군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지면을 대대적으로 할애해 새로운 사실을 발굴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지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게 인간의 속성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내용은 1980년대 후반에 나온 그의 회고록과 별로 다르지도 않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복수의 회고록 번역본이 나와 관계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일본 인터넷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진짜 영웅’ ‘슈퍼스타’라고 묘사한 글들이 바로 나온다. 읽어보면 어떤 생각에서 영웅이라고 생각하는지가 절로 드러난다. 평소 조선인 헐뜯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필자는 이 사람만은 격이 다르다고 추어올린다. 대체로 싫은 조선인이기는 하지만 이 사람만은 존경한다고 했다. 백 장군이다. 그러면서 그의 처지를 걱정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 친일파 낙인이 찍혀 ‘악법’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한국이 세계를 향해 자랑해도 좋을 유일한 인물을 낮게 평가하는 나라는 조만간에 망할 게 틀림없다고 말한다. 이 사람도 일본 역사교과서에 불만이 많다. 그가 그나마 평가하는 것은 우익 수구세력이 결집해 낸 후소사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뿐이다.
일본정책연구센터 소장이라는 오카다 구니히로는 백 장군의 업적에 감탄하는 이유를 더 솔직하게 썼다. 지난해 ‘한국 병합 백년’을 맞아 백 장군의 회고록을 다시 읽어봤다는 그는 다부동 전투에서 백 장군이 앞장서 이끈 ‘사단장의 돌격’을 찬양한다. 그러고는 이 ‘사단장의 돌격’이 어딘가 옛 일본군을 방불하게 하는 게 있다고 쓴다. 백 장군의 회고록에 다수의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오카다는 무엇을 느꼈을까? 일본이 한반도에 남긴 것은 눈에 보이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인적 자산도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가 낸 책에는 <혼신의 용기와 충성과> <전후보상론은 틀렸다> <조선인 강제연행은 있었나> <참정권과 이민이 나라를 망친다> 등이 있다.
이런 논평 평가는 내가 일부러 골라낸 것이 아니다. 물론 백 장군이 이들의 활동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백 장군 스스로 이런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마도 어처구니없거나 달갑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해석을 하는지 반드시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년에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백 장군을 군의 원수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방부가 여러 경로로 여론을 듣다가 결국 하지 못한 것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최종편집 : 2024.4.16 화 16:19 
재외선거, 의료보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