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지난 5월 9일 한국의 언론은 지난달 말에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1990년대 도난당한 문화재 2점이 한국에 밀반입되어 있다고 하여 재조사를 요청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미 외교적으로 일단락 된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과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 그림을 재조사 하도록 요청했는 것이다. 조만간 조선왕실의궤 등을 한국에 전달하기로 되어있는 시점에 일본정부가 다소 생뚱맞은 제안을 한 데에는 일본의 국내 정치 움직임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은 이키시(?岐市) 소재의 사찰 안코쿠지(安國寺)가 소장하고 있던 고려시대 불교경전으로, 총 591점 가운데 493점이 1994년 9월 도난을 당했다. 그런데 얼룩과 보존상태, 권말 서명 등에서 도난당한 것과 흡사한 경전 3점이 한국에서 발견되고 이듬해 국보 284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현재 코리아나 화장품 회사 회장이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8년 일본정부는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정부에 조사를 의뢰했지만 한국정부는 개인소장품에 대한 조사는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일본의 요청을 거부했었다.

한편 ‘아미타삼존상’은 일본 가코가와시(加古川市) 소재의 사찰 가쿠린지(加古川市)가 보관하던 고려시대 불화 가운데 하나로, 2002년 7월에 도난을 당한 바 있다. 그런데 대구시 소재의 사찰에서 이 그림이 발견되면서 한국 검찰은 2005년 1월 이 문화재 절도범 2명을 혐의자로 체포하여 기소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해당 문화재에 대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사찰측이 도난품인 것을 알지 못하고 기증을 받은 것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사찰측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에 불법으로 약탈되어 간 문화재가 돌아오고 있지 않다”고 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한 상황 가운데서, 사찰측이 해당 문화재를 일본에 넘기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정부가 한국측에 대해 과거 일단락 된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자민당을 비롯한 ‘문화재 인도 반대파’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예상하면서도 재조사를 제안한 것은 일본의 국내 정치가들의 의사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한국의 외교당국에 대해 이번에 한국에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의 ‘무게’를 확인하게 하는 제스처가 아닐까 한다. 일본 국내에 뿌리 깊은 반대 움직임을 무릅쓰고 민주당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적 합의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을 국내외에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 8월에 일본 총리담화를 통하여 문화재 반환 문제가 거론된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성향의 정치가들이 지속적으로 민주당 정부의 ‘퍼주기 외교’를 비판해 왔다. 작년 11월에 “6개월 이내에 인도하겠다”는 기한을 명시하면서까지 한일 양국이 도서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자, 일본내 반대파 정치가들은 한국에도 일본에서 유래하는 도서가 존재할 것이고 이에 대한 외교적 반환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질의서를 정부측에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12월 10일 각료회의 결정을 통해 “조사를 하지 않았고 그런 도서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한국에 현존하는 문화재에 대해 한국측에 인도하라고 하는 외교 교섭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답변서를 내놓았다. (産經新聞, 2010.12.11)

올해 4월에 들어 도서협정의 중의원 통과를 앞두고 자민당 외교 분과 모임에서 외무성의 재한 도서에 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기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쓰시마 소케(對馬宗家) 문서 약 2만 8천 권,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일본 관련 도서 수십만 권,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도서 약 5천 권과 총독부 공문서 4만 점, 85만 점의 도면, 개인정보 기록, 토지 대장 등이 거론되었다. 이밖에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한 궁내성 직할기관 도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한 경성제국대학 문서도 거론되었다. 이때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의원은 “일본에 있는 것만 한국에 건네주고 한국에 있는 것은 어째서 건네받지 않는가, 이런 문서가 있다는 것이 판명된 이상 양국이 상호 인도를 위한 교섭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産經新聞, 2010.4.20)

4월 22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오노데라 미쓰노리(小野寺五典) 자민당 의원이 위와 비슷한 논지로 재한 문화재 반환을 거론하자,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외상은 "조선왕실의궤 등을 한국에 인도하는 것은 작년 총리 담화에 근거한 자발적인 조치"라고 하고, "한국에 있는 일본 도서를 이것과 동렬에 놓고 말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도 한국에 있는 일본 도서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만 일본 도서가 한국에 있는 것은 양국의 오랜 교류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때 오노데라 의원은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때문에 반환을 요구하기 어렵다면 국회 결의를 해서라도 돌려받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대론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일본 외무성은 한국정부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유래 도서에 관하여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도록 한국에 요청하는데 그쳤다. (연합뉴스, 2011.4.22)

결국 지난 4월 27일 외무위원회에서 한일 도서협정에 대한 승인안이 가결되었고 이튿날 중의원 본회의도 통과되었다. 협정이나 조약의 경우 참의원보다는 중의원의 가결이 우선하기 때문에 이로써 사실상 도서협정에 대한 비준 절차가 끝난 셈이다. 그런데 이때 여당 민주당과 야당 공명당 소속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데 반하여,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자민당은 당초 한국측이 반환을 요구한 것은 궁내청 소장의 조선왕실의궤 167권 뿐인데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인도할 문화재가 1,205권으로 늘었다고 비판하고,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들어 도서협정 승인을 반대했다. (産經新聞, 2010.4.30)

이 협정은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에서 이미 해결이 끝난 문제를 다시 문제 삼는 일이며 끝없는 보상을 향해 길을 열어놓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 기본조약은 한국에 대한 일본 전후처리의 틀을 결정한 것이다. 부속문서에서 일본은 무상공여 3억 달러, 정부차관 2억 달러, 합계 5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하고 쌍방의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다. 한국의 청구에 응하여 일본에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을 인도하는 것은 상호 청구권을 포기한 기본조약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 의견에 맞서 민주당 정부는 외교적 약속 이행 의지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달 21일과 22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 총리로부터 직접 도서를 전달받는 세리모니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도서협정 체결 때 양국이 약정한 6개월의 시한에서 보면 이러한 양국 정상의 세리모니가 약간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국회 승인으로 일본에서 실질적인 문화재 반환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볼 때, 한국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일본정부가 약속한 사항 하나가 어렵사리 시한을 넘기지 않고 실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전후처리 문제를 비롯하여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서 일본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 문제에 있어서만은 이번에 일본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로 바람직한 외교적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대지진 관련 피해와 원전 방사능 유출 문제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감성을 내세워 문화재 인도에 반대하는 야당의 움직임이 강렬한 가운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적 약속 가운데 하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