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일본 동북부 지방에 대규모 강진과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한지 거의 한 달 반이 지났다. 대지진과 함께 14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원전을 덮쳐 원자로 냉각에 필요한 전원 공급 장치가 파괴되거나 무용지물이 되면서 시작된 원전 사고는 아직까지 내부의 손상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갖가지 억측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의 여파는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도 파급되어 방사능 피해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인적 물적 교류에서 중단 사태가 여러 부분에서 발생하고 있다.

애초 일본정부는 원자력 사고 정도에 대해 ‘4단계’로서 애써 낮게 평가했으나 사고가 터진지 한 달이 지난 4월 12일에 뒤늦게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을 통해 최악의 수준인 ‘7단계’라고 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것은 일본정부가 뒤늦게 과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수준임을 인정한 것으로 방사능 유출 규모에서는 체르노빌의 10분에 1에 불과하다고 방어했지만 그동안 심각한 방사능 사고 실태를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오늘 새벽부터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지역을 ‘경계구역’으로 지정하고 지역주민의 출입을 강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일본정부의 원전사고에 대한 소극적이고 뒤늦은 대응이 일본사회와 주변국에게 불안과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정부는 일찍이 3월 12일 원전사고에 대해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했다. IAEA 사무국장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彌)는 이튿날 이례적으로 일본어로 VTR에 의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일본정부 당국과 필요한 정보 수집과 안전 확보를 행하고 있다고 하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고 바닷물을 주입하여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작업 등에 긍정적인 기대를 표명했다. 그러나 3월 15일이 되자 그는 일본정부로부터 상세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IAEA로서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IAEA는 독자적으로 일본에서 사고 상황을 조사하고 3월 30일 방사능 검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본정부가 피난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을 포함하여 피난지역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IAEA의 권고를 부정했다.

한편 주변국 여론에서도 대지진 발생 직후 전반적으로 일본의 재해 피해자들을 성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3월 하순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훨씬 강해졌다. 3월 23일 도쿄도(東京都)가 수돗물 샘플에서 요오드가 검출되었다고 하고 유아에 대한 수돗물 섭취를 삼가도록 발표하면서 방사능 유출 문제가 재난 지역 이외에서도 현실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 국가원자력사고 응급대책위원회가 3월 26일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대기 중 극소량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으며 그 다음날인 3월 27일에는 한국의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캄차카반도를 통과하여 남하한 것으로 보이는 제논(xenon)이 나흘간 강원도에서 관측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윽고 기술원은 28일 오전에 한국 전역 12곳에서 대기 중에 지극히 적은 양에 불과하지만 방사성 요오드가 함유되어 있는 것이 관측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사회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뀐 배경에는 역사인식의 격차라고 하는 뿌리 깊은 문제점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3월 30일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18종의 검정결과를 발표함으로써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때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 내용 가운데는 종래의 영유권 주장에다가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국회는 비록 일본이 난리를 겪고 있는 어려운 처지에 있기는 하지만 영토 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는 입장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더 중대한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 간 외교관계까지 소원해졌다는데 있다. 근래에 들어 전반적으로 한일관계가 양호해졌다고 평가하는데 이견이 없다. 덕분에 양국 정부는 작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상황에서도 대체로 원활한 외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호한 관계는 정작 원전사고로 인한 주변국 피해가 우려되는 비상 상황에서 양국 정부 사이에 외교적인 긴밀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본 측이 4월에 들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면서 미국에만 통보하고 주변국에는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4월 6일 외교통상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을 불러 유감을 표시하고 정보 제공을 요청하면서 이 문제는 무마되었다. 한일 양국의 원자력 전문가 회의가 도쿄에서 열린 것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난 4월 12일에서였다. 그것도 오염수 무단 방출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일본 측이 먼저 제의하여 갑자기 열리게 된 것이다.

이미 3월 하순부터 원전사고 문제가 양국의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상황 가운데 양국의 외교 당국이 기존의 채널을 가동하여 사전 정보 교환을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곤란하다. 만약 일본정부의 답변대로 오염수 방출로 인한 방사능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면 정정당당하게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알려서 주변국의 의구심을 미리 차단해야 했다. 의구심을 억측을 낳고 상대국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8일 홍콩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수상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핵실험 은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궁을 받았다고 한다.